나의 어린 시절은 엄마와의 정이 별로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엄마의 빈자리를친할머니와 고모 그리고 든든한 아빠가 채워주었다. 나와 동생의 끼니는 함께 살던 할머니가 주로 챙겨주셨다. 그러다가 며칠씩은 고모네 집에 가서 먹고 자고 했는데 그 생활이 오히려 마음이 더 편했다. 나는 고모가 엄마보다 더 좋았다. 할머니는 나와 동생에게 늘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이 "얼른 커라.. 얼른 커서 너네가 엄마를 이겨야 하는데..."라고 하셨다.
엄마는 나에게 정서적 학대는 물론이고 가끔 신체적으로도 때렸는데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다만 한 장면처럼 기억나는 게 잔뜩 화가 난 엄마에게 머리를 얻어맞고 서럽게 울고 있는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다.
티브이에서 나오는 엄마는 자식을 위해 모든지 양보하고 본인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는 존재라는데.. 나의 엄마는 본인의 아이스크림을 먼저 다 먹고 어린 나와 동생에게 한 입만 달라고 하는 사람이었다. 나의 엄마는 모성애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엄마의 사랑 같은걸 별로 느낀 적이 없었는데 그런 엄마가 그래도 나를 사랑하긴 하나보다 라고 처음 느껴본 게 초등학생 시절에 밤에 엄마와 함께 걸어가는데 비가 내렸다. 그때에 추울까 봐 엄마가 나에게 겉옷을 벗어준 적이 있는데 그때 처음으로 엄마의 따스함을 느낀 게 기억난다.
나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늘 콤플렉스였다. 학창 시절 멀쩡한 엄마가 있는 아이들이 늘 부러웠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중학교 시절 제일 친해져서 지금까지 절친이 된 친구들은 다 엄마가 없거나 이혼한 가정의 자녀들이다. 그 친구들과 마음을 나누며 학창 시절을 버티었는데 친구들은 그래도 엄마가 있는 나를 부러워했고, 나는 차라리 그런 엄마가 없는 친구들이 더 낫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런 내가 어느덧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아이를 낳고 그 작은 아이를 키워 내면서 나는 내 아이를 보며 오묘한 감정이 들기도 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부러움'이다.
'너는 좋겠다. 나 같은 엄마가 있어서.... '
'나는 나 같은 엄마가 없어서 참 슬프고 외롭고 많이 힘들었는데.... '
아이들을 키우는 일이 많이 힘들지만 그만큼 사랑스럽고 귀한 아이를 보며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지.. 그때 그 어린 나에게 가서 꼭 안아주고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런 마음 한편으로는 나의 엄마에 대한 분노가 일렁였다.
'나한테 뭐 제대로 해준 것도 없고 본인이 키우지도 않았으면서 나한테 뭘 자꾸 바라는 거지?'
'도대체 우리 엄마는 언제 엄마다워지는 거지?? 평생 나는 왜 내 엄마한테까지 엄마 노릇을 해야 하는 거지?'
라는 억울한 마음이 씨앗이 되어서 이제는 엄마만 보면 화가 난다. 아이들이 커가고 내가 아이들을 많이 사랑하면 할수록 나의 결핍은 아직도 나를 괴롭히고 있다.
'엄마'라는 존재가 한 아이에게 한 인간에게 이토록 위대하고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걸 그동안 티브이나 책 속에서 느꼈다면 이제는 내가 내 아이를 직접 길러내면서 온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모습에서 나의 엄마 같은 모습이 나올 때면 마음이 많이 힘들고 그 모습을 닮아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행위도 그 노력 중에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