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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곰씨 오만가치 May 13. 2024

계란 후라이

일상의 작은 행복

  기숙사 생활을 하던 시절. 매일 아워홈이라는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옛말로 하면 함바집이라고 할 수 있다(너무 현장의 말을 썼나?). 하루는 콩나물 비빔밥이 나왔다. 비빔밥이 나올 때면 꼭 계란 프라이를 올려 준다. 나는 흰 밥에 올려진 갓 구운 뜨거운 것을 좋아한다. 


  사람이 많지 않은 저녁 시간 내적 갈등을 느낀다.


 '하나 더 달라고 할까?'


  깊은 시름에 휩싸인 것은 점심때 시원찮은 냉면을 먹어서 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당이 모질라 식탐이 솟구치고 있는 건지도. 그리고 얼마 전, "냉면 사리 좀 더 주세요"를 성공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내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는 식당 아주머니께 조금 더 주세요 하면 한가득 주셨고 먹고 나서 리필도 가능했는데, 이런 외부 식당은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게 조금 서글프기도 하다. 계란을 노려 보며 깊은 상실감에 빠지는 나의 차례를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출처 : 나무위키>


 "계란이 작아서 하나 더 드릴게요"


  종업원의 밝은 목소리에 깜짝 놀란다. 사실 다른 계란 프라이와 그렇게 차이나 보이질 않았는데. 나는 내적 환호성을 지르며 기쁜 발걸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프라이 가장자리에 탄 자국이 생기지 않을 만큼 기름을 듬뿍 부어 구운 약간은 덜 익은 듯한 프라이가 좋다. 흰밥에 그대로 올려 먹는 그 느낌이 좋다. 소금간이 되어 있지 않아도 그 맛은 일품이다. 밥이 흰쌀밥이었다면 금상첨화였겠지만 콩나물 밥이라도 그 뜨거운 것을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소비는 확실한 행복'

  아.. 아니지

  '작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을 찾자던 분위기는 언젠가부터 '대박행'으로 바뀐 듯하다. 코로나가 터져 여기저기서 양적완화를 한다며 돈을 푸는 바람에 부동산이 들썩들썩, 코인은 달까지 갈 모양이었다(지금은 다 도로아미타불이 되었지만). 너도 나도 대박을 꿈꾸니 작은 것들이 눈에 보일리가 없고 어쩌나 터진 대박에 부러움만 생기니 괜히 더 서글퍼지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A Small, Good Thing>에서 나온 소확행이라는 신조어. 부담스럽지 않은 작은 사치이기도 하고 자신을 위한 작은 선물일 수도 있다. 내가 태어나기 한 참 전 유럽에서도 그런 분위기는 있었던 것 같다. 나폴레옹 시대가 끝날 것 같은 시대, 사람들의 희망과는 달리 왕권이 복권되고 전제정치로 돌아가려는 반동의 시대가 열렸다. 그 시대를 비더마이어 시대(Biedemeier)라고 한다. 


  그 시대를 유시민 작가의 인터뷰를 빌려 표현하자면,


  그러니까 그렇게 아기자기한 작지만 확실한 어떤 즐거움, 이런 것들을 추구하면서 그때 가구, 그림, 무슨 모든 것이 다 아기자기합니다. 그 사람들이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면, 그렇게 하면서 견딘 거예요. 그 시대를.

  작은 성공, 작은 몰입. 큰 일을 해내기 위해 그것을 잘게 쪼개는 것은 최근의 트렌드이기도 하다. 한 번에 긴 문장은 읽기도 이해하기도 힘들지만 짧은 문장은 편하다. 매일매일 느끼는 행복은 무뎌지기 쉽지만 가끔 만나는 소확행은 잠깐의 행복을 가져다준다. 대박행을 노리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작지만 꾸준한 행복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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