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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곰씨 오만가치 May 27. 2024

나의 세월은 조금 긴 편이다.

시골에서 살았어서 참 다행이다

  나는 정말 깡촌이라고 불릴 만한 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하루에 버스 네 대 정도 다녔던 것 같다. 그마저도 비가 내리면 오질 못했다. 조금 더 자라 길이 포장되고 나서야 버스는 매일 비슷한 시간에 도착했다. 버스가 얼마나 귀했냐면 같이 흙놀이를 하던 동네 꼬마가 버스 소리만 나면 달려가 구경할 정도였다(아이들은 다 그랬던가?). 몇 해 전에 가봤을 때, 도로는 시멘트에서 아스팔트로 바뀌었지만 버스가 다니는 횟수는 여전한 것 같았다.


  아내는 내가 종종 TV를 보려고 산 중턱에 있는 안테나를 조절하러 갔다고 하면 딴 세상 얘기 듣는 기분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VHS와 UHS가 있었는데 내 기억으로는 VHS는 큰 안테나 UHS는 작은 안테나를 썼던 기억이다. 안테나를 직접 사 와서 대나무에 끼워 긴 선을 연결해 산 높은 곳에 설치해 두곤 했다. TV가 잘 안 나오면 고함을 치며 방향을 맞추곤 했다.


  나는 회사 대표님이나 장모님과 얘기할 때다 전혀 위화감이 없다. 지식이 아닌 경험으로 이미 그분들과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다. 젊은 사람과 있으면 할 얘기가 없을 수 있을 텐데 나는 그분들과 정확히 같은 시대를 얘기할 수 있다.


  봄이 오면 삐삐라고 불렀던 풀을 뜯어먹고 하굣길에 이제 막 올라온 찔레 순을 따서 먹었다. 목이 마르면 산속으로 들어가 물을 떠 마셨다. 동네에 창호지를 만드는 집이 있었는지, 내 기억에는 그 집에서 종이 만드는 것을 해본 기억이 있다. 딱나무(경남 방언)라고 불리는 나무껍질을 벗겨 속에 부드러운 부분을 물에 띄어 슥슥 저어 넓게 펴 말렸던 기억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딱나무가 소중한 이유는 팽이 돌리는 채의 재료가 되기 때문이었다. 운동화 끈은 부르주아의 상징이었다.


  게임이나 TV는 애초부터 즐길 수 없는 것이었고 산과 들이 놀이터였다. 산에 파놓은 방공호는 아지트였고 무덤 옆 잔디에서 타는 잔디 썰매는 눈썰매보다 재밌었다(춥지도 않고). 여름에는 개울에서 물장구를 치고 물고기를 잡곤 했다. 겨울에는 썰매를 만들어 타고 팽이도 직접 만들어 가지고 놀았다. 바를 거라곤 안티푸라민 밖에 없어 손은 늘 터서 갈라져 피가 나곤 했다.


  시골에서의 추억은 셀 수 없다. 낚싯대를 손수 만들어 지렁이로 미끼낚시를 했다. 땅을 파서 지렁이를 손수 구했다. 어른들은 깨밭에 사는 커다란 깨벌레로 큰 고기 낚시를 하곤 했다. 정월 대보름에는 대나무 밭에서 대를 끊어 동네 논 한가운데 달집을 만들었다. 그날만은 어른들도 야단치지 않았다. 산을 누비며 난을 캐러 다니기도 했고 유적을 찾는다며 깨진 도자기 같은 건 죄다 주어 왔다. 한때는 돌이 꼽혀 그럴싸 해 보이는 돌은 죄다 주워 오기도 했다(시골집이라 다행이다). 어머니께서는 몇 해 전 시골집을 정리하면서 그때 내가 주워온 돌을 가져오셨다. 아직까지 가지고 계시다니 조금 감동이다.


  아들은 나를 닮아 그런지 동네 빨간 열매는 죄다 따서 오고 도토리를 주워 온다. 바다에 가면 조개며 돌이며 마구 줍는다. 집이 돌로 가득해지면 아내는 스트레스를 받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 어머니는 그런 적이 없다고 얘기하면 잠깐 생각이 잠긴다. 아들이 주워 온 돌은 화분에 하나씩 잘 쓰고 있다.


  요즘 아이들이 놀게 많다지만 내가 보기엔 그다지 놀게 없어 보인다. 그리고 조금만 크면 공부하기 바쁘다. 그런 아이들을 보살펴야 하는 부모도 힘들다. 물론 나 역시 공부의 중요성을 열심히 설파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어릴 때의 좋은 기억이 생각나면 괜히 아이들이 안되어 보인다. 세상이 변한 것을 어쩌리오.


  시골에 살았다는 건 내겐 행운이다. 나이가 들수록 나는 할 얘기가 많고 추억이 많다. 남들과 같은 시간을 살았지만 더 넓은 세월을 경험한 느낌이다. 생태 교육이 따로 없는데.. 조금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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