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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곰씨 오만가치 May 29. 2024

생각의 길이

글을 쓰고 생각하려는 이유

  20년 정도를 일해 오면서 나는 늘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고민했다. 시중에 쏟아지는 자기 계발서들을 보더라도 커리어에 대한 고민은 모두의 것임을 알 수 있다. 정신없이 업무를 하다 보면 어느새 성장한 자신을 발견하던 시절도 있었다. 팀장이 되면서 시야가 조금 넓어진 느낌도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회사는 팀장이 실적에 늘 민감해하길 바라고 있을 거다. 그게 또 팀장이라는 사람의 몫이기도 하다. 팀원들 잘 굴려 돈 벌어오는 지장 없게 만들어야 유능한 팀장이다. 하지만 팀장을 하면서 관리의 어려움을 아프도록 느낀다. 경영이라는 학문이 왜 존재하는지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계발서에서도 리드쉽 교육에서도 팀장의 중요함을 끊임없이 얘기했다. 하지만 매일매일이 무력함의 연속이었다.


  고민 끝에 내려진 결론과 수많은 스케쥴링은 상사라는 이유만으로 산산조각 내길 일쑤였다. 계획에도 없던 일들이 넘쳐나고 현장에서는 아우성이다. 발버둥 치는 것 같은데 나아지지 않는 많은 것들에 죄책감마저 든다. 하지만 팀장은 생각보다 힘이 없다. 되려 팀원들의 도움으로 견뎌낼 수 있는 자리다.


  그렇다고 잃은 것만 있었던 건 아니다. 세상을 조금 더 넓게 보게 된 것 같고 매너리즘에서도 벗어나게 된 것 같다. 나는 여전히 많이 모자라고 세상엔 배울 것이 넘쳐나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관리 기술에 대한 책도 사보고 MZ세대라는 친구들에 대해서도 공부했다. 하지만 천성이 기술자여서 그런지 관리라는 것으로 남은 인생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라고 질문했을 때 그 답은 'NO' 일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정점에 서길 원하는 건 아닐 거다. 그래도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지 않을까. 그게 아니라면 좋은 옷, 좋은 집, 좋은 차 그리고 가지고 싶은 물건들로 채우고 싶은 마음. 그것도 아니라면 더 건강한 신체, 더 해박한 지식은 어떨까. 상승 욕구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심인 것 같다.


  어느 정도까지 잘해야 할까? 기준이라는 건 개개인의 몫이겠지만, 불행하게도 나는 내가 정한 목표의 높이가 쌓여가는 연차와 변해가는 세상의 속도에 맞춰져 있어 꽤나 높은 듯하다. 나의 목표는 생물처럼 시시각각 변하고 있고 손에 잡힐 듯하다 다시 멀어져 자주 지치게 된다.


  혹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 모두가 김연아 같은 사람이 될 순 없어.

  최고가 되는 것보다 두루 적당히 잘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그런데 그 적당히라는 것도 가늠이 되지 않는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것이 쏟아져 나온다. 유행은 시시각각 바뀌어 간다고 내가 가진 것이 쓸모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그것들이 나를 기다려 주지 않을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트렌드를 제쳐두고서라도 나는 익히는 것이 좋고 관심사도 넓다. 무엇보다도 아는 척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넓은 지식이 필요해 독서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만나고 말았다.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은 나에게 충격이었다. 토플러가 대단하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40년에 쓰인 이 책이 나보다 현재를 더 잘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무질서하고 어지러운 일련의 과정들을 이 책을 통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두어 줄로 요약하고 느낌을 적어두고 "나 이런 책 읽었어"라고 자랑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요즘은 정보를 곱씹어 이해할 만큼 여유가 있는 시대는 아닌 것 같다. 상상하고 생각하며 이런저런 글귀를 채집하여 다시 엮어 내 보이는 일은 지겨운 일이 되어 버린 듯하다. 순식간에 톡이나 DM을 보내고 망가진 글자를 신경 쓰지 않는다. 모든 것이 즉흥적이다. 짧아진 문장만큼 생각의 길이도 짧아진다. 세상은 점점 더 빨라질 것이고 나는 여전히 그 속을 살아가야 한다. 쏟아지는 정보 속에 조건 반사하듯 살아가고 싶진 않다. 그 속에도 나는 단단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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