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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곰씨 오만가치 Jun 09. 2023

일기와 수필

네가 누군지 나는 알고 있다?

"느곰씨. 글에 신상 정보가 너무 많아"

"응?"

"나는 이런 거에 조금 민감한 편이니까. 느곰씨 글에는 등장인물도 많고 모든 게 명확하게 드러나니까"

"아. 그렇네. 내가 겁이 없네"

"나는 쫄보라 이런 거 신경 쓰여. 캐릭터만 가져오고 사생활은 본인이 간직하는 게 좋지 않을까?"

"걱정 감사~"


SNS가 범행의 대상을 검색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쏟아내다 보면 나와 가족의 이야기는 세상에 뿌려진다. 아름답고 좋은 사람들만 사는 세상이라면 좋으련만. 얼마 전엔 아르바이트 앱으로 상대를 살인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친구는 그런 걸 걱정했다.


"에세이라고 자신을 다 드러내진 않아. 다른 에세이 봐봐 등장 인물도 거의 없고 어디 누군지 전혀 알 수 없다니까"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읽은 에세이도 그저 글쓴이의 생각만 가득 담겨 있을 뿐 자신의 신변에 대해서는 그다지 언급하지 않았다. 글 쓰는 사람이 세간의 주목을 받는 아이콘이 아니고서야 이런 시시콜콜한 얘기를 굳이 읽고 싶진 않을 테니까. 경험은 편집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출판사의 많은 투고 글 중에는 에세이의 가면을 쓴 일기가 많다고 한다. 테마가 없이 그저 뒤죽박죽의 글들이 출판사의 막내 직원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나도 지금껏 글을 쓰는 연습을 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신변을 마구 쏟아내고 있었던 게 아니었나 잠시 생각을 해보게 된다.

얼마 전에 들었던 강의에서도 지나가며 댓글을 남긴 작가님의 글에서도 책은 '기획'이라는 말을 들었다. 어떤 메시지(혹은 정보)를 누구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비로소 팔리는 글로서 가치가 생긴다. 독자에게 선택받지 못하는 책은 그저 자위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그런 팔리는 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이번을 계기로 조금 더 진지하게 접근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의 캐릭터만 가져다 쓴다는 말이 좋았다. 허구의 장소에 내가 만든 캐릭터를 놓아두면 자연스레 스토리를 만들어 갈 것 같다. 그건 나의 이야기면서도 나의 이야기가 아니게 된다. 메시지는 전하면서 나는 그다지 드러내지 않는 방법이랄까. 생동감을 더하려면 일인칭으로 쓰면 될 것 같단 생각도 든다.

에세이는 진솔함이 중요하다지만 그 마음만 진솔하면 되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해 본다. 그리고 작가의 여러 면이 드러나는 건 캐릭터 전환이 일어나는 작품에서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을 것 같단 생각도 해본다. 신비주의는 이런 면에서 이점을 가져다줄 수 있겠단 생각도 해본다.


"내가 오늘 잔소리가 좀 심했네"

"그냥 브런치를 접을까?"

"에세이를 닫아. 그리고 소설을 써"

"우리나라에 신상 안 털린 사람은 신생아뿐이라고 생각하는데"

"뭐 일단,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야. 그래도 글은 많이 촉촉해졌어. 브런치에서 굴러서 그런가"

"그거야. 장르 따라 다른 거지"

"나는 촉촉하다 못해 축축한데. 가습기라도 틀까"

"덕분에 나는 또 사막 같은 글을 쓰게 되겠네. 아주 고맙다"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동안 연습한다고 썼던 글을 다 내렸다. 브런치 글도 전부 거두었다. 다시 쓸 생각이다. 리라이팅. 우선 기획을 하고 기존 책들을 검색하고 누구를 위한 글을 어떻게 쓸 건지 고민을 해 볼 요량이다. 글을 토해내는 연습은 충분히 했다. 이제는 읽히는 글을 써야 하니까. 일기 말고 글을 써야 하니까.


그래도 힘든 회사생활. 글로 토해내면서 참 많이 위로받았던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안네>는 아니니까. 일기 말고 글을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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