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으로
캐나다에서 1년간의 워킹홀리데이 기간을 마친 나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미국 여행을 하게 되었다. 밴쿠버에서의 일주일을 제외하고 정확히 3주의 기간 동안 '캐나다나 미국이나 같은 북미고 같은 문화권이니 사실 뭐 그게 그거려니'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로 미국은 캐나다와 전혀 다른 나라였다. 어쩌면 내가 돈을 버는 나라와 돈을 쓰는 나라에 대해 다른 이미지를 갖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으나 실제로 미국과 캐나다는 많이 달랐다.
미국에 가자마자 바로 느껴지는 다른 점은 미국은 아직 1센트를 쓴다는 점과 캐나다에 비해 동양인이 적고 흑인들이 많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나의 첫 미국 여행의 세 번째 도시이자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에서 놀랍도록 많은 아프리칸 아메리칸 사람들을 보았다. 내가 묵었던 숙소는 중심부가 아닌 살짝 외곽에 위치해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분위기도 으스스하고 오래된, 그러나 재건축을 하지 않은 집들 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 동네에 머문 짧은 시간 동안 젊은 사람이나 다른 인종의 사람을 마주치는 일은 전혀 없었다.
워싱턴 DC에서 맞이하는 첫 아침에 나갈 준비를 마치고 집 현관을 나왔는데 바로 옆집에 한 흑인 할아버지가 앞뜰에 나와 앉아 계셨다. 정말 무섭게 생기신 그 할아버지는 마치 "쟤는 뭐야"라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거의 노려보듯이, 노골적으로 쳐다봤고 나는 그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순간적으로 몸이 굳은 것처럼 느껴지며 무서움에 휩싸였다.
나는 어릴 적부터 흑인 배우나 운동선수를 좋아했고 흑인들의 음악에 대한 경외심으로 인해 그들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더군다나 이미 캐나다에서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과 살았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저 모두가 '모국어가 통하지 않는,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일 뿐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할아버지가 흑인이라 같은 상황도 더 무섭게 느껴졌던 게 사실인 것 같다. 근데 그 흑인 할아버지의 무표정은 정말 공포 그 자체였다.
1초 정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어차피 눈이 마주쳤으니 어쩔 수 없이 용기를 내어 덜덜 떨며 "굿모닝"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 할아버지가 당연히 나의 인사를 철저하게 무시할 것이고 그럼 어색해하며 빨리 지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내 인사를 듣자마자 세상에서 가장 환한 표정으로 "굿모닝"이라고 답 해주시는 게 아닌가. 그토록 무서운 얼굴을 했던 사람이 그렇게 환하게, 활짝 웃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당연히 이런 전개를 예상하지 못했는데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으시는 할아버지를 보자 무서웠던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리며 이내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어느새 큰 눈으로 인해 나를 노려보는 것만 같았던 눈빛은 굉장히 따뜻한 눈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할아버지의 눈빛이 바뀐 게 아니라 같은 눈빛을 바라본 나의 시선이 바뀐 것이었다. 그 할아버지의 표정을 보고 단순하게 무서운 사람일 거라고 속단했지만 절대로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었다. 책의 표지만 보고 책을 판단하지 말라는 영어 속담처럼...
무서웠지만 용기 내어 "굿모닝"이라고 인사를 건넨 나 자신도 칭찬해주고 싶다. 만약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도망치듯 그 할아버지를 지나쳤다면 나는 그 할아버지를 무서운 사람으로 기억했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저 길에서 스쳐 지나간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일 뿐이지만 말이다. 그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건넨 덕에 그 할아버지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이제 안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고 보면 다 착한 사람들'이라고 믿는다. 그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나 상황에 의해 그들의 단편적인 모습만 보기 때문에 그들을 오해하는 것일 뿐. 그러니 겉모습만 보고 혹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의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겉모습이 완전히 깍쟁이라 친해지기 힘들거라 생각했던 한 언니는 우연히 친해져서 나에게 참 잘해주었고, 쓸데없이 말만 번지르르한 줄 알았던 그분은 실제로 내게 굉장히 의미 있는 조언과 평가를 해주었고, 무섭게 못 생겨서 대화 나누기 싫었던 남자애는 나의 베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