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으로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두려움은 극복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나는 내가 모르는 상황이나 사람들에 대해 생각보다 굉장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이런 얘기를 종종 친구들에게 하면 그들은 항상 콧방귀를 뀐다. 친한 사람들과 있을 때 나는 굉장히 수다스럽고, 활발하고, 적극적이기 때문인데 그들은 모른다. 내가 그들을 처음 만났을 때도 사실은 속으로 엄청 떨고 있었다는 것을...
예를 들어 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다면 비행기표를 살 때는 마냥 신나고 설레지만 출국 날짜가 다가올수록 점점 두려워진다. 심지어 여행 전날 밤엔 너무도 가기가 싫어서 이걸 왜 계획했는지에 대해 나 자신을 원망한다.
나는 캐나다에 살면서 바쁜 삶 속에서도 일정을 쪼개 여행을 많이 다녔기 때문에 남들은 내가 마냥 여행을 좋아하는 줄로만 아는데 물론 여행을 매우 좋아하긴 하지만 여행 전 두려움은 다른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어마어마하다. 만약 그들이 나의 이런 감정을 느낀다면 "대체 여행을 왜 가는 거야?"라고 물을 것이다.
이런 나에게 공항은 언제나 공포다. 출국할 때는 그나마 내 도시이기 때문에 덜하지만 낯선 도시에 입국하여 짐을 찾자마자 나는 일명 '멘붕상태'가 된다. 이 때는 설렘보다 두려움이 내 감정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두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정도이다. 여기서 말하는 두려움은 막연히 '걱정이 많이 된다.' 혹은 '긴장된다.' 정도가 아닌 철저하게 나를 패닉 상태로 만드는 공포로서 눈앞이 캄캄해지고 엄청 크게 써 놓은 사인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으며,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 상황 일 땐 가끔 식은땀이 흐르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한다.
이 공포는 숙소에 도착하고 체크인을 하자마자, 내가 지낼 방과 침대를 보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싹 사라진다. 그리고 나는 다시 새로운 도시를 탐험하고 즐길 자세가 된 원래의 나로 돌아간다. 낯선 도시로의 여행도 항상 이렇지만, 낯선 상황,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 공간으로 들어서는 순간까지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혀 손을 덜덜 떨지만, 조금 시간이 흐르고 적응이 되면 점점 긴장이 풀리면서 내 실제 성격이 서서히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공포 수준의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내가 계속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한 모임에 나가려고 하고 새로운 환경에 나 자신을 놓으려고 했던 이유는 숙소 체크인 이후의 행복했던 여행의 기억처럼 모든 그 두려움과 공포가 지나고 나면 결과는 매우 좋았기 때문이었다. 어떤 행동을 했다는 것 자체에 후회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왜 진작 하지 않았을까?', '더 먼저 시도해보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만 있었다.
머릿속에 생각이 들면 무조건 행동하는 마음가짐으로 혼자 낯선 땅에 와서 워킹홀리데이를 시작하고, 유학을 하고, 취업해서 일을 하고, 결국은 영주권까지 따게 되었지만 아직도 여행을 갈 때마다, 면접을 볼 때마다, 모임을 나갈 때마다 똑같은 두려움을 느낀다. 마치 이중인격자처럼 이런 일을 벌여 놓은 또 다른 나 자신에게 욕을 한다. 이제는 내가 느끼는 그 두려움이란 감정과 신체 반응이 일종의 불안 장애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없애겠다고 쉽게 없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괜찮아질 거라는 것은 분명하게 안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두려움은 극복할 수 없다고...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두려움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다. 여전히 두렵고 무섭지만, 견딜만하다.
그 두려움 뒤엔 언제나 더 큰 만족감과 행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