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래이스 Jan 14. 2019

2. 콤플렉스가 장점으로

지구 반대편으로 

어릴 적 나는 꿈도, 하고 싶은 일도, 목표하는 것도 많았지만 그만큼이나 콤플렉스도 많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신체 콤플렉스는 바로 엉덩이였는데, 학창 시절 교복을 입고 걸어가면 뒤에서 친구들이 엉덩이밖에 안 보인다고 놀랄 정도였다. 언제나 엉덩이가 가려지는 긴 티셔츠를 입고 다녔는데 다행히도 그때 즈음 짧은 반바지에도 긴 티셔츠를 입는 '하의실종' 패션이 유행이어서 여름에도 자연스럽게 엉덩이를 가리고 다닐 수 있었다. 아빠를 닮아 일명 '오리궁둥이'인 나는 지금도 바지를 살 때 항상 허리 사이즈가 아닌 엉덩이에 맞춰 산다. 


중학교 시절, 나라마다 문화마다 미의 기준이 다르다며 쌍꺼풀 없는 가늘고 긴 눈을 가진 동양 여성이 서구문화권인 나라에서 인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쩌면 나 같은 사람도 어딘가에선 매력 있는 사람일 수 있겠다는 막연한 상상은 해봤지만 살면서 단 한 번도 나의 가장 큰 신체 콤플렉스가 가장 큰 매력포인트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내 인생 최고의 반전이 생겼다. 엉덩이가 큰 것이 매력적인 몸매로 인정받는 북미에 온 것이다. 이곳에서 한평생 콤플렉스라고 생각하고 가리는데 급급했던 나의 신체 부위는 친구들이 부러워하고, 심지어 모르는 사람이 칭찬해 주기까지 하는 나의 장점이 되었다. 동양인으로서 흔하지 않은 데다 워낙 동양 여성들이 마르고 가냘프기 때문에 건강미를 중시하는 이곳에선 의도치 않게 당당할 수 있었다. 이곳은 레깅스를 입어도 굳이 상의로 엉덩이 부분을 가리지 않고 다니기 때문에 나 역시 점점 엉덩이를 가리지 않는데 익숙해졌고 내 몸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커졌다. 


한 번은 동료와 대화를 하다가 "나 살 빼야 되는데 큰일 났네"라고 말하자 옆에 앉아 있던, 누가 봐도 날씬한 동료가 정색을 하며 나를 보고는 "너 진짜 웃긴다. 뺄 살이 어디 있어?"라고 말하는게 아닌가! 그 동료의 표정이 조금만 덜 진지했어도 '얘 나 놀리나?' 싶었을 텐데 그 눈빛과 말투는 진심이었다. '할리우드 영화처럼 무슨 마법이라도 걸려서 다른 사람들 눈에 내 살이 안 보이나?' 하는 황당한 생각마저 했을 정도로 나는 이곳에 와서 갑자기 날씬이가 되었다. 뼈를 깎는 고통이라는 다이어트를 한 적도 없는데 (물론 처음 세 달 동안 누룽지와 김만 먹어서 5킬로가 빠지긴 했다.) 13시간 비행기만 탔을 뿐인데 나를 바라보는 세상의 눈이 달라져 있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번도 날씬한 아이였던 적이 없었고 언제나 큰 덩치 때문에, 살집 때문에, 몸무게 때문에 스트레스 받았고 그만큼 자존감이 낮았던 '나'였는데... '만약 학창 시절에 이곳에 왔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한창 외모에 예민한 학창 시기에 나를 괴롭혔던 가장 큰 콤플렉스가 이곳에서 가장 큰 장점이 됐다고 생각하니 아직 그렇게 오래 산 것도 아니지만 '세상 오래 살고 볼일이네' 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단순히 엉덩이 때문이 아니라 정형화된 미의 기준이 없고 외면의 아름다움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의 사회에서 사춘기를 보냈다면 나를 더 사랑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못내 아쉬워졌다. 


또 다른 반전은 사촌 동생이 3개월 정도 놀러 왔을 때 생겼다. 어릴 적부터 처음 보는 어른들이 항상 예쁘다고 한 마디씩 하고 지나갈 만큼 작은 얼굴에 진한 쌍꺼풀과 긴 속눈썹의 큰 눈,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였던 사촌동생은 성인이 되어 약간의 투자를 통한 업그레이드를 거친 후, 어딜 가도 빠지지 않는 외모를 갖게 되었다. 게다가 나에겐 마치 친동생처럼 각별하고 애틋한 사촌 동생인지라 내 눈엔 한없이 예쁘고 귀엽기만 했는데, 어느 날 동생이 나에게 한 말은 너무 충격이었다.


자신은 엘리베이터를 타 거울을 볼 때마다 왜 이렇게 못생겼는지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동생의 이 말이 더욱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예쁜 동생이 거울을 볼 때마다 못생긴 부분을 찾아 거기에 집중한다는 데에도 있었지만 정작 지극히 평범한 외모인 나는 거울을 볼 때마다 예쁜 부분만 집중해서 보고 내 외모에 대해 나름 만족한다는데 있었다. "어? 나는 내 얼굴 좋은데? 예쁜데? 이 정도면 매력 넘치지!"라는 나의 대답에 사촌동생은 놀라며 몇 번을 진심이냐 되물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왜 동의 안 해주고 되물었냐...)


내가 태어나고 자라며 사춘기를 보낸 곳은 외모지상주의인 사회에서 많은 여성들이 365일 다이어트를 꿈꾸고, 성형을 하고, 더 예뻐지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외모를 가꾸고 자기 자신을 꾸미고, 자기 계발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한데 그럴수록 더욱 자존감이 낮아지고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한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물론 나도 가끔은 '얼굴형이 더 갸름했으면', '볼살이 좀 없었으면'이란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나는 내 얼굴이 좋다. 물론 나도 한국에 있을 때는 엉덩이를 포함 신체의 모든 부분이 콤플렉스였다. '나는 왜 이렇게 생겼을까' 생각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 뻔한 말이지만 외면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 주변 친구들이 모두 날씬하다고 해서 내가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한 때 친하게 지냈던 한국인 언니가 항상 하던 말은 '이 세상 모든 여자는 여자라서 일단 무조건 아름답다'였다. 놀랍게도 그 이후로 나 자신을 포함한 여성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 바뀌었다. 나는 지금도 '쟤는 저래서 예쁘고, 얘는 이래서 예쁘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라에 살면서 더군다나 많은 나라에서 온 국제 학생들이 공부하는 데서 일하면서 정말 많은, 다른 외모를 가진 사람들을 만났고 미의 기준은 절대 정형화될 수 없다는 놀랍도록 당연한 진리를 새삼 깨달았다. 더불어 점점 나이를 먹으며 더 이상 적지 않은 나이가 되자 진심으로 모든 여자들은 다 예뻐 보인다. 


지구 반대편에서 나의 사촌동생을 포함한 내 친구들과 모든 여성들에게 '우리는 모두 아름답고 나는 나고, 너는 너라서 무척이나 매력 있고 소중하다.'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