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으로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꼭 "나 한국 가봤는데 이렇던데?", "나 이런 거 봤는데 왜 그런 거야?" 라며 한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은 아니지만 소수의 몇몇 사람들은 짧은 기간 동안 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마치 그들이 한국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말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는 척하고 싶은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으니까. 한국에 대해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뉘앙스로 말하는 사람들에 대해 한국인으로서 적대심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비록 누가 나에게 '너는 여기 왜 왔어?'라고 물으면 쉬지 않고 내가 떠난 이유에 대해 밤새도록 열변을 토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반대의 상황에서도 적잖이 기분이 상했다. 친구의 초대로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그 친구의 친구들과 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어떤 남자가 유독 반가워했다. 본인은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2년 정도 살았는데 너무 좋아서 다음 달에 다시 간다며 나에게 왜 한국에 살지 않고 여기서 사냐고 물었다. 답변 대신 한국의 어떤 점이 좋냐고 되물었더니 물가도 싸고, 음식도 맛있고, 재밌는 것도 많고, 여자들도 예쁘단다. 물론 나도 동감하는 부분이지만 정말 그게 한국의 전부인가?
"맞아. 나도 그래서 가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라고 대답하고 자연스럽게 다른 주제로 넘어가려고 했는데 그 남자는 또 "정말 이해가 안 간다. 너는 한국인이니까 말도 통하고 더 좋을 거 같은데." 라며 다시 그 얘기를 꺼냈다. 한국이 좋아 한국에 가서 살겠다는 외국인에게 한국이 싫어 한국을 떠난 한국인인 내가 무슨 말을 해줄 게 있겠는가? 어찌 됐던 나는 한국 국적을 가진 한국사람인데 한국이 좋다는 외국인에게 굳이 내 입으로 한국의 단점들에 대해 떠들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옆에 있던 백인 여자가 "그래이스는 한국인이니까 우리가 모르는 한국의 모습을 알겠지. 우리는 외국인이라 다 안다고 할 수 없잖아"라고 나 대신 대답해 주었고 자연스럽게 대화는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나 또한 이곳에 꽤 오래 살고 있지만 나 스스로 캐나다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하지 않는다. 우선 캐나다라는 나라 자체가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이민국 가이다 보니 딱 한마디로 문화를, 사회를 정의할 수 없을뿐더러 나는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진정한 모습까지 다 봤다고 하는데 무리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잘 안다는 건 무엇일까? 우리는 어떤 것에 대해, 어떤 곳에 대해, 어떤 사람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잘 안다고 생각했던 어떤 사람이 알고 보니 내가 생각했던 그런 사람이 전혀 아니었던 경우가 있었다. 그냥 그런 사람이 아니었던 정도가 아니라 훨씬 더 충격적이고 추악한 진짜 모습을 철저하게 잘 숨기고 사는 사람이었고, 나는 이 이야기를 들을 때 너무 놀라 입을 벌리고 있다가 턱이 아플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다시는 그 사람을 마주하지 않았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가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 뱃속에서 나온 내 자식인데도 하나도 모르겠어!" 또는 대상을 바꿔 "저 양반이랑 40년을 같이 살았는데 아직도 모르겠어!". 가끔은 나 자신에 대해 스스로도 놀랄 때가 있을 만큼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데 어찌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무언가를 잘 알 수 있겠는가.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모르는 게 더 많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 알아가고 친해지는 과정이 재밌고, 의미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