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으로
캐나다에 와서 가장 놀랐던 거 한 가지만 꼽으라고 한다면, 길을 조금만 걷다 보면 언제나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그분들이 아닐까 싶다. 대놓고 다가와 돈을 달라고 하는 사람들, 건물의 움푹 들어간 공간에서 큰 개와 함께 자고 있는 사람들, 돌아다니면서 소리를 지르거나 크게 혼잣말을 하는 정신 이상이 있으신 분들 까지..
'캐나다는 선진국인 줄 알았는데 뭐 이러냐'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던 어느 날, 출근길 지하철에서 우크라이나에서 온 동료를 우연히 만났다. 함께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가고 있던 중에 갑자기 어떤 남자가 나타나서 큰 소리로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다른 사람들은 별일 아니라는 듯 각자 제 할 일을 할 뿐 그 남자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이런 사람들이 나타나면 쳐다보지 않고 무시하는 것이 답이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나타나면 신경을 곤두 세우고, 쳐다보진 않지만 계속 예의 주시하며 상황을 살핀다. 갑자기 나한테 와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이 내 눈에서 사라질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실제로 지하철 역에서 소리를 지르던 남자가 갑자기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나를 세게 밀쳐버린 일이 있었다. 최근에 토론토 지하철 역에서 칼로 사람을 찔러 죽게 하는 범죄가 종종 일어나 뉴스에 자주 나오는 만큼 더욱 주의를 요했다. 다행히도 혼잣말을 하던 그 남자는 내가 그동안 종종 봤던 욕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깔끔하고 착해 보였으며 나이도 꽤 어려 보였다.
'무서운 사람이 아니라 그냥 아픈 사람이구나.' 란 생각이 들어 내심 안심하던 차에 갑자기 동료가 "여긴 저런 사람들이 참 자주 보인다, 그렇지?"라고 물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러게나 말이야. 우리나라엔 저런 사람들 별로 없는데"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동료는 "우리나라에도 저런 사람들이 있는데 이렇게 혼자 밖에 돌아다니지 못해. 그들은 자유가 없어. 캐나다는 참 좋은 나라야. 저런 사람들도 이렇게 밖에 나올 수 있잖아. 위험하지도 않고."라고 말했다.
나는 문득 방망이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릴 적부터 장애인들의 인권과 그들의 더 나은 삶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스스로 자부했던 나였는데... 내가 그들을 자주 보지 않았고 내 주변에 없다는 이유로 너무나도 쉽게 "우리나라엔 저런 사람들 별로 없어."라고 단정하고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낸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민망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아있었고, 혼잣말을 하던 그 남자는 곧 지하철에서 내리며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끝이 났지만 나는 여전히 같은 상황에 대해 이렇게 정반대로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 있었다.
우리가 동시에 목격한 상황에 대해 나는 '여긴 왜 이런 사람들이 이렇게 많지?'라고 생각했고, 동료는 '여긴 어떻게 이런 사람들도 자유롭게 다닐 수 있지?'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에 대해 나는 '선진국이라더니 이게 뭐야!'라고 생각했고, 내 동료는 '역시 캐나다는 좋은 나라구나!'라고 생각했다.
사람의 생각과 의견은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때의 나는 틀렸다. 설사 캐나다가 한국보다 정신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들이 혼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다른 사람들도 그들을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지 않는 모습을 보고서 '여긴 왜 이렇게 저런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지'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도로 곳곳의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시설들과 건물 곳곳 휠체어를 위한 시설들과 연관 지어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똑같이 생활할 수 있는 곳이구나.'라고 생각했어야 한다.
최근에 잠깐 한국에 돌아가 살면서 장애인 단체의 시위로 인한 지하철 운행 정체 뉴스를 자주 접했다. 서울에서 본가인 경기도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30분 넘게 기다린 적도 있었다. 누군가는 "장애인들이 뭐 얼마나 힘들게 산다고 이렇게 비장애인들에게 피해를 주는 거야!"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당신이 이 나라 도시 곳곳에 있는 장애인 시설을 보고, 길거리에서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서 돌아다니는 장애인들을 본다면 "우리나라는 아직 한참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 것이다.
한국이 좀 더 도시 곳곳에 휠체어를 위한 시설들이 많아지고 더 많은 장애인들이 차별받지 않고 생활하며 '그들은 우리와 다르다'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거리에서, 일터에서 그들을 더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약 265만 명의 장애인과 함께 살고 있다. 내 눈앞에 많이 안 보인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무시하고 살아가지 말고 조금 더 관심을 갖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 노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