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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자>

영화 '해피투게더'의 확장판처럼 느껴지는 소설

by 초콜릿책방지기 Mar 21. 2025

   달에 처음 발을 딛던 시절, 타이베이시 관첸로 신공원으로 집을 잃은 소년들이 모여든다. 각자 사정은 다 다르겠지만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버림받았다는 사실은 똑같다. 떳떳하게 활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환한 대낮에는 숨어있다가 주로 밤이 되면 공원에 모인다. 소년들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혹은 성적으로도 약자들이라서 그들의 성에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나이 많은 어른들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 


   “낮에 우리는 동면하는 독사처럼 여기저기 자신의 동굴 속에 잠복해 있었다. 그리고 검은 밤이 오면 비로소 깨어나서 어둠의 보호 아래 박쥐 떼처럼 타이베이의 밤하늘을 어지러이 날아다니기 시작했다.”(61)


    소설의 화자인 아칭 또한 집에서 쫓겨나서 공원에 자리를 잡는다. 학교에서 화학 선생님과 불미스러운 일을 벌이다가 제적당하고, 그 사실 때문에 아버지에게 쫓겨나게 된 것이다. 난산으로 태어난 아칭이 자기 목숨을 빼앗아가려던 아이라고 생각한 어머니는 애정이 별로 없고, 전쟁에 나갔던 과거의 영광으로만 위안을 삼으며 살아가는 아버지는 아칭의 성적 정체성을 용납할 수가 없다. 그나마 서로 의지하며 가족의 정을 느끼던 동생이 병으로 죽고 나서 아칭은 마음을 둘 곳이 없다. 그래서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처지에 본인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를 데리고 와서 돌보기도 한다. 


   공원에는 아칭과 같은 아이들을 거두는 어른들이 있다. 젊고 아름다운 아이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어른도 있고, 애인으로 삼는 사람도 있고, 문제가 생겼을 때 돌보아주는 어르신도 있다. 그런 어른들에게 기대어 살기는 하지만 아이들에게 삶의 목표나 희망을 제시해주지는 않는다. 아칭의 친구 샤오위도 어른들에게 인기는 많지만 언제나 결핍을 느낀다. “저우 사장은 샤오위의 수양아비였고 두 사람은 일 년 넘게 헤어졌다 만났다 했다. 그는 중허향에서 염직 공장을 운영했으며 주머니 사정이 좋아서 툭하면 샤오위에게 선물을 사줬다.”(34) 샤오위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자신의 아버지를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함께 어울리는 쥐는 까마귀에게 얻어맞으면서도 그 집에서 기생하면서 소소한 물건들을 훔쳐서 소장하는 것을 낙으로 하며 산다. 도박 때문에 감옥에 간 아버지를 뒷바라지하면서 장선생에게 의리를 지키는 우민도 공원에서 만난 친구다. 이들과 어울리며 돕는 양사부와 성 회장, 푸 어르신은 이들에게 힘이 되는 어른들이다.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아들 푸웨이가 군에서 동성애 행위를 하다가 걸린 후 자살하자 공원에 있는 아이들을 돕는 푸 어르신을 보면서 아칭은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린다.


   “그렇지만 나는 사람의 마음을 꺾는, 아버지의 그 서글픈 얼굴을 다시 볼 자신이 없었다. 별안간 왜 어머니가 생전에 바깥을 떠돌고 타락하면서도 감히 집에 돌아오지 못했는지 깨달았다. 여러 차례 절망적인 상태에 빠져 분명 돌아오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텐데도 말이다. 아마도 그녀 역시 아버지의 그 어둡고 서글픈 얼굴을 보기가 두려웠을 것이다.”(298)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돕던 푸 어르신이 죽자 공원의 아이들은 예를 다해서 장례를 치러준다. 양사부는 아이들이 몸을 팔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일을 하면서 살게 하기 위해서 안락향이라는 술집을 차렸지만 악랄한 기자의 공격 때문에 결국 폐업하고 만다. 아이들은 다시 뿔뿔이 흩어지게 되어서 샤오위는 아버지를 찾으러 일본으로 가고, 쥐는 좀도둑질을 계속하다가 결국 감옥에 들어간다. 아칭은 다른 술집에 취직해서 자기 앞가림은 하고 살아간다. 공원의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은 팍팍하더라도 사랑을 꿈꾸는 일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 왕쿠이룽과 아펑의 사랑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오는 것이다. 


   일본으로 간 샤오위는 음식점에서 일하는데 아무리 힘들어도 아버지를 찾기 위해 견디기로 한다. 쥐는 감옥에서 염색 기술을 배우면서 미래를 꿈꾼다. 그리고 아칭은 섣달 그믐날 밤에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공원으로 갔다가 공원을 배회하는 열네댓 살쯤 된 뤄핑을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간다. 아칭이 뤄핑을 거두는 것은 다음 세대를 위한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하고, 사랑의 대물림이기도 하다. 자신을 쫓아낸 아버지를 원망하던 아칭은 이제 조금씩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사실 나는 아버지의 고통이 얼마나 깊은지 알고 있었다. 특히나 집을 나온 요 몇 달 동안 갈수록 아버지의 태산처럼 무거운 고통이 느껴져 시시때때로 가슴이 답답했다. ... 내가 아버지를 피하려는 것은 고통에 시달리는 그의 어둡고 늙은 얼굴을 감히 똑바로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455)


   집도 없이 공원을 떠도는 성소수자 아이들의 이야기가 너무 심각한 필체로 쓰였다면 읽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가독성이 매우 좋을 뿐 아니라, 대책은 없지만 삶의 에너지가 넘치는 젊은 아이들의 기운이 느껴져서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회적 차별과 소수자의 설움을 생생하게 살아있는 인물들을 통해서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그들끼리의 연대와 사랑을 보여주면서 희망을 엿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이 소설이 가진 큰 의미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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