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한 입, 달콤 쌉쌀한 한 줄의 문장
새해가 되면서 책방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동안 저녁 7시까지만 열던 책방을 밤 12시까지 열어두기로 한 것이다. 이것은 초콜릿 책방의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책방지기에게 큰 변화가 일어났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말하자면 그동안 적당히 감추어왔던 책방지기의 본색을 드러내기로 한 것이다. 그동안 주장해왔던, 책과 초콜릿과 커피를 사랑하는 책방지기라는 설명에 한 가지 더 추가하기로 했다. 사실 이것은 추가가 아니라 본질을 더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그동안 새침하게 감춰왔던 책방지기의 본질은, 술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술꾼의 본색을 드러내면서 책방 영업시간을 12시까지 연장하고 본격적으로 술을 판매하기 위해(혹은 내가 마시기 위해서) 좀 더 다양한 술을 책방에 들여놓기 시작한 것이다.
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시작되어 스무 해 넘게 꾸준히, 열심히, 지치지 않고 해온 것 중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쉬지 않고 즐겁게 술을 마셔왔다는 것이다. (아, 이런 것을 자랑이랍시고 내세운다는 것이 진심으로 별 볼 일 없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아무튼 그렇다는 것이고, 나와 비슷하게 약간의 수줍음을 느끼며 술꾼임을 자랑하고 싶은 사람들을 주변에서 찾기 어렵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자, 저와 같은 분들 일어서서 크로스!!
술이 왜 좋은 것이냐고 물어본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한참 동안 고민을 해봐야 한다. 어떤 대상을 사랑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는 사람에게 즉시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껏 사랑의 이유를 분명하고 확실하게 대답해본 적이 없다. 그것은 몇 마디 말로 정리해서 설명할 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술을 좋아하는 이유에 관해서 대답하는 것이 그와 동일하지는 않겠지만, 어찌 되었건 한두 마디로 설명하기는 쉽지가 않다. 다양한 술의 종류와 맛뿐 아니라 술자리의 변화무쌍함, 술을 마시다 보면 취기가 오르면서 느껴지는 무아의 상태 혹은 극도로 감각적이며 예민해지는 것 등등, 그것은 한 번의 술자리에 대한 설명을 해도 부족함이 있다. 그러니까 제대로 된 설명이 곤란할 정도로, 나는 술을 좋아하는 술꾼이다.
그런데 책방을 하면서 이런 사실을 억지로 감춰온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드러낸 적은 별로 없었다. 책방 영업이 끝나면 부리나케 집이나 술집으로 숨어 들어가서 조용히 술을 마시곤 했다. 그러다 보니 술과 관련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것은 무척 제한적이었다. 그런 것들이 때로는 조금 아쉽기도 했다. 이제 책방에서 술까지 취급하기 시작하니까 심심찮게 술에 관해서도 대화를 나누게 되고, 함께 마실 계획도 세우게 되었다. 물론 나는 술을 마셔도 새침한 본성을 잃지 않기 때문에 조금은 쌀쌀맞게 술자리를 끝내버리기도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공통점이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해도 중독성이 있다는 점이다. 술이든 책이든 초콜릿과 커피든, 각각이 가지는 묘한 매력이 너무 진하고 풍부해서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나는 아무래도 중독에 취약한 인간이었다보다. (그나마 대상들이 사회적으로 용인되어 있는 것들이라 얼마나 다행인가!)
** 알코올 남용에 대해서 우려하시는 분들이 어떤 말씀을 해주고 싶으시다면 그런 걱정은 감사하게 받아들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