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65)
(사진 출처-국민 일보)
며칠 전, 부산의 한 119 안전센터에서 구급대원이 목을 매 자살 시도를 했다는 풍문(?)이 들려왔다. 그 센터에서 일하는 한 구급대원이 24시간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기 몇 시간 전, 오전 7시쯤에 자신이 일하던 119 안전센터 내 어딘가에서 목을 매달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구급차로 옮겨져 어느 병원 중환자실에서 자발 호흡이 있는 식물인간 상태로 가늘디 가는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여기까지가 내가 들은 전부다.) 한 아이의 아버지이자 한 여자의 남편이며 가장인 그 구급대원이 말이다. 그런 소문을 들으면 처음엔 깜짝 놀라기는 하지만, 또 한편으론
'또?, 이번이 몇 번째야?, 얼마나 말 못 할 사정이 있었으면...'
하고 속으로 혀를 차고 만다. 내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소방관이지만 거기서 목을 매달은 그를 여기서 어떻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소문을 들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에, 그때마다 우리 소방조직에서는 소방관의 정신 건강을 위해 어떤 시도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소문들이 계속 이어지는 것을 볼 때, 같은 소방관으로서, 또 한 때 구급대원이었던 사람으로서 어떻게라도 이런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는 노력에서 이런 문제에 관해 글을 쓰게 되었다. 11월 9일 소방의 날을 하루 앞둔 이 시간에 이런 우울한 주제로 글을 써야 하는지 좀 고민되긴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소방관의 자살의 원인과 또 완벽하진 않지만 그런 일들을 조금 줄여 볼 순 없는지에 관해 생각해 보았다.
1. 24시간 갇혀 지내는 출동 대기의 삶
요즘 동물원은 점점 없어지는 추세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우리에 갇힌 동물들을 보면서 좋아했지만 그렇게 갇힌 시간들이 정작 동물들에겐 좋지 않다는 사실이 점점 알려지면서부터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처음 지어질 때부터, 혹은 몇억 년 동안의 진화의 과정 동안 해가 뜨면 일어나서 움직이고 자연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신체 활동을 하고 해가 지면 보금자리에서 휴식을 취하는 일련의 사이클을 반복해 왔다. 그렇게 해야만 생체 리듬과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은 현대 의학으로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하지만 동물원에 갇힌 동물이나 소방서에서 24시간 생활하는 소방관은 그런 생체 리듬을 지킬 수가 없게 되었다. 쉽게 말해 '자유'라는 동물에게 꼭 필요한 요소를 박탈당한 삶이 바로 소방관과 우리에 갇힌 동물들의 공통점이란 것이다. 이런 '갇힌 삶'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 되는 것 같다. 여기서부터 우울증 등 정신 질환과 각종 신체 질환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물론 언제 불이 나고 환자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출동 대기의 삶은 이어질 수밖에 없겠지만 한정된 공간에서 다수가 갇혀 지내다 보니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2. 밖으로 나가는 유일한 시간, 출동
그러다 밖으로 나가는 유일한 시간이 생기는데 안타깝게도 그것이 바로 출동 시간이다. 출동대기 시간에 느슨해져 있던 맥박이 빠르게 뛰고 아드레날린이 솟구쳐 오른다. 치솟는 불길을 보면 심장박동이 고막을 울릴 듯 두드려 댄다. 소방차는 사이렌을 켜고 미친 듯이 달려가고 그 안에서 소방복을 입고 공기호흡기를 차다 보면 어느샌가 벌써 화재 현장에 도착한다. 그때부턴 정말 정신없이, 그야말로 불나방처럼 불길을 향해 뛰어든다. 구급차도 마찬가지다. 심정지 환자가 있다는 무전을 받으면 구급차는 정신없이 교통 신호를 무시하고 사이렌을 켜고 달린다. 현장에 도착하면 환자가 있는 곳까지 전력으로 달려야 한다. 한 생명이, 한 가정이 내 손에 달려있다는 생각이 들면 결코 걸음을 늦출 수가 없다. 의식이 없는 환자 가슴에 손을 얹고 심장 압박을 실시한다. AED를 붙이고 전기 충격을 줄 때도 있다. 반응이 있으면 다시 구급차로 데리고 와서 병원까지 환자를 싣고 달린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급박한 순간에 일어나고 가장 신속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불을 끄고 나서, 혹은 환자를 이송하고 나서 소방관과 구급대원은 자신이 그 일을 어떻게 그렇게 해내었는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그야말로 그 화재와 환자에 집중하느라 주위는 까맣게 안 보이는 것이다. 24시간 갇혀 지내는 시간과 극단적으로 정신없이 달리는 출동시간의 간극은 너무나 멀다. 그 자체로 사람의 진을 빼놓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소방관의 심장과 신체에 가해지는 압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3.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화재 현장과 구급현장에서 돌아온 소방관이 그렇다고 마음 편히 휴식에 빠져드는 것이 아니다. 화재 현장과 구급현장에서 만난 PTSD와 싸워야 한다. 자신의 몸을 감싸 돌던 화염과 검은 연기의 기억이 코 속에서 검은 콧물로 나온다. 머리를 며칠 동안 감아도 계속 나는 '탄 내'에서 그 화재 현장의 기억이 떠오른다. 내가 살릴 수 있었던 누군가, 내가 죽을 뻔한 그 현장에 대한 기억이 계속 사람을 한쪽 구석으로 몰아간다. 구급대원도 마찬가지다. 게거품을 물고 늘어져 있었던 그 환자, 음독을 했다는 그 환자, 프레스 기계에 손이 말려들어가 손가락이 잘렸던 그 환자, 교통사고로 온몸이 형체도 없이 바스러져 버렸던 그 환자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다. 언제까지 이 화재현장과 구급현장에서 견뎌낼 재간이 없다고 느껴질 때 그들은 자살을 생각하는 건 아닐까?
4. 질병 혹은 불편함.
소방관 생활을 좀 하다 보면 몸 이곳 저곳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무리한 출동과 화재 현장에서 부상을 당하는 경우도 많다. 그 부상을 안고 계속 소방관 생활을 하다보면 통증은 이미 만성이 되어 몸 한구석이 질병 혹은 불편함으로 남는다. 그런 몸을 안고 지속하는 현장 활동은 쉬울 리가 없다. 그런 몸을 이끌고 현장 활동을 하다보면 어서 이 일을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만 든다. 하지만 일반인들처럼 쉽사리 이 일을 그만둘 수가 없다.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 문제일 때가 많다. 소방관 경력을 가지고 사회 어느곳에서도 이만한 월급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아직 정년 퇴직 연령이 아니라면 연금이나 퇴직금을 가지고 생활하기도 버겁다. 다시 아픈 몸을 이끌고 현장에 간다. 자신이 후배나 동료에게 짐이 되는 건 아닐까 생각하면서...
5. 갑질, 을질, 왕따
그렇게 PTSD와 아픈 몸을 이끌고 현장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그 소방관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은 가장 가까이 있는 소방관 동료일 것이다.
"그래도 잘했어, 힘 내!"
"그럴 수밖에 없었어, 잊어버려!"
"우리는 최선을 다했어, 그러면 된 거야!"
그렇게 말해주는 동료가 있다면 그는 아픈 몸이지만 PTSD에서 벗어나 소방서와 가정의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비난과 질책의 말, 경멸과 힐난의 말은 그를 다시 그런 굴레로 숨어 들어가게 만든다.
"그게 뭐야?, 그렇게 밖에 못해?"
"할 줄 아는 게 뭐야?, 니가 그러니까 안되잖아!"
"으이구, 비켜, 내가 할께!"
지금은 많이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몇 주 전 내가 쓴 글과 같이 소방서에서의 갑질이 '족구 못한다고 귀를 물어뜯는 수준'이라면 현장에서의 실수나 실책에 대해서는 아마 그의 목을 물어뜯지 않을까? 그런 분위기의 소방서라면 후임들에게 '을질'을 당하는 분위기도 있을 수 있다. 아예 선임과 후임, 동료들에게서 모두 '왕따'를 당하는 분위기라면 어떨까? 그 소방관은 현장에 가서도 '자살'이라는 단어를 계속 떠올리지 않을까?
6. 가족과의 불화
그렇게 소방서에서 실수와 실패를 연달아 해 온 소방관이라도 가정에 돌아가면 자신의 편이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지해 줄 가족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아직은 희망이 있을 수 있다. 자신을 이해해 주는 아내와 자신을 믿어주는 자식들이 있다면 가정으로 돌아가 이렇게 말할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아, **, 나 참, 드러워서 못해 먹겠어, 나 이제 소방서 그만둬야겠어, 이제 정말 탄내 맡기 싫고 불 끄기 싫어, 답도 없는 환자들 데리고 병원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도 지겨워, 그동안 좀 힘들겠지만 참아 줘, 당신이 몇 달만 고생하면 그동안 내가 자격증을 따서 이런저런 곳에 취직할게, 미안해!"
그렇게 얘기하면 사이좋은 아내라면 이렇게 이해해 줄 것이다.
"여보, 당신이 소방서에서 그렇게 힘든 줄 몰랐어, 내가 그동안 조금 일해볼께, 당신은 일단 좀 쉬어, 그리고 나서 우리 다시 생각해 보자!"
하지만 만약, 아내나 아이들과 그렇게 좋은 관계가 아니라면 어떨까?, 소방서에서 돌아와 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반겨주는 것은 휑한 거실뿐이라면?, 소방서와 마찬가지로 가정에서도 역시 왕따를 당하고 있다면 어떨까? 그는 가만히 자신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 편의점에서 사 온 소주로 혼술을 하며 오지 않는 잠을 청할지도 모른다. 머릿속에 다시 '자살'이란 두 글자를 떠올리며...
7. 경제적 어려움
내가 들었던 자살한 소방관들의 상황 중에서 빠지지 않았던 것이 바로 경제적 어려움이었다. 그들 대부분 어떤 방식으로든 경제적 어려움을 안고 있었다. 요즘 소방관 처우도 개선되고 월급도 많이 올랐다던데 왜 그들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나?, 물론 표면적으로 보면 그렇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사정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여기서는 물론 일반인처럼 투자 실패, 가족의 오랜 간병, 사기... 등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다. 그런 경제적 어려움이 밑바닥까지 닿아 있으면 소방관도 물론 일반인처럼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8. 수면 부족
24시간 3교대근무는 '갇힌 삶'의 부작용을 드러내면서도 또 다른 부작용을 잉태하고 있다. 바로 '수면 부족'이그것이다. 24시간 출동대기는 항상 소방관을 긴장하게 만든다. 언제 어디서 출동이 걸릴지 모르는 것이다. 일단 출동이 걸리면 격렬한 아드레날린의 분출과 심장박동이 반복될지 알고 있기 때문에 두뇌의 수면을 관장하는 '시상하부'는 소방관의 숙면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소방관의 우울증은 점점 심해지고 현장에서 얻었던 PTSD의 기억은 점점 뚜렷해진다. 내가 들었던 대부분의 소방관 자살이 새벽이나 이른 아침에 일어났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밤새도록 수면 부족에 시달리던 소방관은 뿌옃게 동이 터오는 그 시간에 극단적 선택을 했던 것이다.
내 생각에는 이런 8가지 원인에 의해서(이 7가지 도미노가 순서대로 넘어지진 않겠지만 하나 혹은 두세 개의 원인들로도 소방관의 자살이라는 마지막 도미노가 쓰러질 수 있다.) 소방관 자살이라는 안타까운 결과가 도출되는 것이다. 물론 소방관서에서도 소방관의 순직보다도 더 많다는 소방관의 자살을 막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근무 체계도 바꿔 보고, 소방관의 인원과 장비도 늘려보고, 갑질이나 을질, 혹은 왕따도 미연에 막으려고 노력을 하고, 소방관의 정신건강을 위해 정기적으로 상담시간도 갖게 하고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전보다는 줄은 것 같지만 소방관의 자살 소식은 계속, 끊일 듯 끊이지 않고 우리 귀에 들리고 있다. 같은 소방관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직장의 어쩔 수 없는 이런 환경과 상황 때문에 자살자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내가 알던 사람이나, 같이 근무해 본 사람 중에서는 이런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이 아직 없긴 하지만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이 애초에 이런 일곱 가지의 도미노 중에 하나, 혹은 두세 개를 치워서 마지막 극단적 선택에 이르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 위해 내가 먼저 그를 격려하고 다독여 줄 수 있는 동료가 되어서 그런 도미노 중의 하나를 치워 줄 수 있기를, 그리고 사회에 있는 일반 사람들도 소방관의 이런 어려움을 알고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소방의 날을 하루 앞두고 아쉽지만 이런 글을 써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