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75)
몇 년 전 목욕탕 화재로 부상을 입은 소방관 선배가 뜬금없이 오늘 아침, 우리 센터에 찾아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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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를 들어보니 그때 부상으로 몸에 무리가 와서 현장 활동은 도저히 할 수가 없을 것 같다고 하셨다. 그래서 정년퇴직도 얼마 남지 않고 해서 이번 10월에 명퇴를 신청해 놓으셨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까지 어차피 병가를 쓰셔서 소방서에는 나오지 않지만 어떤 특별한 마지막을 준비할까 하다가 지난 30여 년의 소방관 생활을 되돌아보며 그동안 같이 근무했던 동료와 후배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만나보기로 했단다. 그래서 오늘 나를 만나기 위해 우리 센터로 찾아오신 것이라고 했다!
아, 내가 먼저 찾아갔어야 하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한 번도 찾아뵙지 못하고 먼저 발걸음을 하신 선배님의 마음 씀씀이가 나의 얼굴을 '화끈' 달아오르게 했다.
거기다가 아픈 몸을 이끌고 이 델*트라는 과일주스까지 사 오신 게 아닌가!,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쥐구멍이 있으면 숨고 싶을 정도였으나 그래도 선배님의 얘기를 잘 들어드리는 것이 도리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선배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때 목욕탕 폭발사고로 비장 파열등 많은 부상을 당했지만 가장 심한 것은 오른쪽 눈이 거의 실명상태가 되어 한쪽 눈으로만 생활해야 하는 것이 가장 불편하다고 했다. 서울에서는 수술하자고 했는데 정상 눈으로 돌아올 확률이 20% 정도밖에 안 된다는 말을 듣고서 당신이 하지 않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운전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성치 않은 걸음으로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타며 부산 시내에 있는 소방서와 119 안전센터를 찾아다니며 그동안 같이 했던 동료와 후배들을 만나는 것으로 요즘 낙을 삼고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몸이 아픈 것도 문제지만 그때의 후유증으로 ptsd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생겨서 화재 현장에 가기도 두렵고 일상생활을 하는데도 심적으로 불편하다고 하셨다.
그분은 내가 처음 소방서에 발령받던 2000년에 처음 만났는데 병아리 같은 나를 지도해 주시고 현장에서 몸소 실전으로 가르쳐주신 나의 멘토였다. 그렇게 항상 듬직해 보이기만 하던 선배였는데 한 번의 폭발사고가 30년 이상 화재 현장을 누빈 베테랑 소방관을 이렇게 쇠약하게 만들어 버렸구나 하는 아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퇴직하면 뭘 하실 거냐고 뻔한 질문을 하니 선배는
"이제 뭘 하겠노, 자연과 더불어 걷다가 힘들면 택시 타고 와야지, 그리고 집사람도 나 케어한다고 명퇴한다고 하니 같이 차 타고 다니면서 좋은 데 있으면 걷고 그래야지, 애들도 다 키웠고 하니..."
라며 말끝을 흐리셨다. 그리고 짧았던 머리를 왜 기르셨냐고 물어보니
"내가 30년 동안 스포츠머리만 하고 다녔잖아, 그게 현장에서도 편하고 해서, 그런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아 머리 한번 길러 볼라고, 이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야지~"
하며 너털웃음을 웃으셨다. 그 웃음을 보니 근 30년 동안 당신이 하고 싶은 것도 못하면서 소방이라는 족쇄에 매여있던 당신의 자유가 풀린 느낌이었다.
"그래요, 지금부터라도 선배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세요, 연금 나오니까, 그거 꼬박꼬박 받아가면서 건강하게..."
내가 이렇게 말하자 선배는 웃음을 그치며 말했다.
"이제 더 이상 건강해지기는 하겠나, 이 상태 그대로 유지만 해도 잘하는 거지."
그랬다. 당신은 더 이상 몸이 좋아지기를 기대하지 않고 더 나빠지지만 않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좋아진 거야, 그동안 침대에만 누워 있었는데 나 누워있는 동안 와이프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고생을 많이 했어"
"아니, 선배님 다치셨는데 국가에서 모든 걸 알아서 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니야, 우리가 개인이 다 알아보고, 찾아다니고, 치료받고, 우리 돈으로 치료비 부담하고 그걸 모아서 위에 올리면 그만큼 나라에서 돈을 주는 구조야, 그러니 우리 집사람이 얼마나 힘들었겠어, 나 병수발 해야지, 그런 거 처리해야지, 거기다 직장생활까지 병행했으니..."
"정말 형수님이 고생 많으셨네요."
"그래도 항상 내 걱정이 돼서 맘 놓고 어딜 못 가"
그 때마침 선배님의 휴대폰이 울렸다. 형수님이 선배 걱정이 되어서 한 전화였다.
"응, 나 여기 소방서 와서 후배 만나고 있다. 끊자고..."
선배는 그렇게 형수님의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우리는 몇 분 더 이야기하다 일어섰다. 그분은 절뚝이며 다른 센터에 가봐야겠다며 다른 과일주스 선물세트를 들고 일어섰다. 그러자 우리 센터의 한 직원이 그분을 위해 카*오 택시를 불러드렸다. 마지막 가는 선배님을 위해 해 드릴 수 있는 우리 후배들의 마지막 선물 같은 것이었다.
택시를 타면서 그분은 내 손을 꼭 붙잡았다. 나도 그분의 손을 꼭 붙잡았다.
"선배님, 앞으로도 종종 건강한 모습 보여주세요..."
"그럴께, 너도 다치지 말고 소방서 생활 무사히 제대해라."
그렇게 택시가 떠났다. 가는 택시를 보고 20년 전 작은 삐약이 었던 후배는 계속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우람하고 듬직하게 현장을 지키던 선배는 흰머리를 휘날리며 가셨다. 후배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작은 흐느낌이 들렸다.
'선배님,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잘 가세요, 그리고 앞으로는 꽃길만 걸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