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76)
(사진=jtbc)
며칠 전 실종됐던 한 젊은 소방관이 주검으로 돌아왔다. 다리 교각 아래서 발견된 그는 약 10일 동안 실종상태였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지인과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남긴 그는 왜 혼자서 거기서 그렇게 극단적 선택을 해야 했을까?
그리고 약 한 달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한 40대 소방관이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된 것이다. 이렇게 한 달 동안 두 명의 소방관이 우리 곁을 떠나갔다. 그 한 달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문제는 그 한 달 동안이 아니었다. 이 두 소방관의 공통점은 둘 다 2022년 이태원 참사 때 거기서 현장활동을 했던 대원들이라는 것이다. 이제 퍼즐 조각들이 서서히 맞춰지는 느낌이 든다. 그때 현장활동을 하면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입은 소방관들이 몇 년 동안이나 그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괴로워하다 결국에는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의 직업이 소방관뿐이야?, 다른 직업들도 많은데 옷 벗고 나가서 다른 일 하면 되지, 왜 극단적 선택을?'
그런데 막상 소방관으로 일을 하다 그런 ptsd를 얻으면 그렇게 정상적인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다. 그런 악몽 속에서 어떻게 정상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든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그런데 막상 그러자니 경제적인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몇십 년 동안 일을 한 이곳을 벗어나서 다른 곳에서 다른 일을 할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실종되었던 그 소방관처럼 코인이나 주식 등을 무리하게 할 수도 있다. 한방으로 인생 역전을 해서 이곳을 당당히(?) 빠져나가기를 꿈꾸는 것이다. 하지만 평생 불구덩이와 피범벅 속을 오간 소방관이 고래와 큰손들이 노는 그런 게임에서 이기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그런 것들을 하면 할수록 점점 손실을 쌓이고 그 손실은 복구되지 않고 더 많은 부담으로 돌아온다.
그러면 이 소방관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현장 활동은 하자니 ptsd가 떠오르고 일상생활에서는 무리한 부채와 마이너스 자산이 날마다 자신을 억눌러 온다. 그럼 선택지는 한 가지다. 저세상으로 탈출하는 것뿐이다. 이런 일련의 소방관의 자살 요인들을 그전에도 한번 쓴 적이 있다.
https://brunch.co.kr/@@4HG2/199
바로 이 글이다. 이 글을 쓸 때만 해도 앞으로는 더 이상 소방관들의 자살이 일어나지 않기를,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가지고 사람들을 살리는 소방관이 많아지기를 기대하며 이 글을 썼었다. 하지만 이번 두건의 소방관 자살을 보니 그동안 아무것도 변한 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첫 번째 소방관의 자살원인이 그가 이태원 참사 때 얻은 ptsd가 아니라 '코인투자 실패'라는 댓글들을 보니 더욱 답답함을 느낀다. 왜?
그렇다!, 나는 이 게임을 해봤기 때문이다. 그것도 무려 25년 동안이나...
나도 현장에서 사실 볼꼴, 못볼꼴을 많이 봤다. 교통사고로 사람이 누더기가 되어 온데간데 없어진 것부터 칼부림이 나서 사지가 피범벅이 되어 여기저기 널부러진 것까지, 다리가 잘려 담배 한 모금만 달라던 공장노동자로부터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머리와 몸체가 뭉개진 여고생의 주검까지... 그런 시신들을 수습하고 돌아오면 잠을 이루기가 어려웠고 가끔 술의 힘을 빌린 적도 있었다. 일요일에는 매주 교회에 갔지만 토요일에는 늘 로또를 샀었다. 한방을 꿈꾸며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그 한방만 되면 뒤돌아보지도 않고 떠나겠다며 농담하던 동료들도 많았다. 하지만 다음날 일요일이 되면 모두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빨간 옷을 입고 또 소방서로 모여들었었다. 물론 나도 코인 투자 실패를 했다던 그 소방관처럼 코인과 주식 부동산에 손을 댄 적도 있았다. 하지만 결과는 늘 시원찮았다. 여우 같은 마누라(?)가 옆에서 지도편달(?)을 해주지 않았더라면 나도 아마 그 소방관처럼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에 몰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한 달 동안 극단적 선택을 했다던 그 두 명의 소방관이 정말 남일 같지 않다. 사실 남도 아니지 않은가? 두 번째 소방관 역시 이태원 참사 이후로 불안장애를 겪었으며 그래서 계속 질병휴직, 장기재직휴가등을 쓰고 공무상 요양을 신청했으나 업무 연관성을 인정받지 못해 국가로부터 불승인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끔찍한 곳에서 현장활동을 하다 마음의 병을 얻은 것도 서러운데 국가로부터 그것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에게는 과연 어떤 선택이 남아있었을까? 그는 마지막 선택지를 선택한 것이다. 물론 모든 소방관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런 끔찍한 곳에서 일을 하다가도 일상으로 돌아와 스스로 회복하고 이겨내는 소방관이 더 많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이렇게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힘들게 버텨내는 소방관들에게 손가락질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더운 여름, 올해는 유난히 더 무더운 것 같다. 그 무더위 속에서도 두꺼운 방화복을 입고 불과의 사투를 벌이고 구급 현장에서 고생하는 소방관들에게 시원한 소식이 들려와야 하는데 더욱 무거워지는 소식을 듣게 되어 내 마음도 무겁다. 이런 힘든 날일수록 소방관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국가가 나서서 조금이라도 소방관들에게 시원한 여름을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