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77)
(사진 = ebs '사선에서' 캡처)
열악했던 소방관들의 처우가 개선된 것은 2001년 홍제동 사건 이후이다. 그리고 소방관들의 장비나 복지가 눈에 띄게 강화된 것은 박근혜 정부에서 시행한 '소방안전교부세' 덕분이었다. 그리고 소방관들의 인원이 획기적으로 늘어나게 된 것은 문재인 정부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는 한해 소방관의 정원이 약 3700명에서 4800명 수준으로 늘었었다. 그때 들어온 신입들 덕분에 소방관들은 꿈에도 그리던 3교대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꿈에도 그리던 '국가직'이 된 것도 아마 그 시절이었던 것 같다.
사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3교대 전에 했던 24시간 근무하고 24시간 쉬는 맞교대가 제대로 된 인간의 삶인가 싶다. 일하는 그 24시간 동안 온갖 출동을 다하고 연기와 불꽃 속을 오가며 생사의 고락을 넘나들고, 환자들의 핏물과 고름을 닦아내고 다음날 24시간 동안 좀 쉬려고 하면 또 비번활동으로 불려 와서 훈련이나 교육, 비상소집등을 받았으니 그때 그 시절은 인간의 삶이라기보단 그저 하나의 노예생활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러고도 돈은 제대로 다 받지 못했으니 말 다했지 뭐~ 그 생활을 10년 넘게 해 온 나로서는 지금 24시간 근무하고 36시간을 쉬는 이 3교대라는 근무체계가 정말 꿈만 같다. 이제야 그 시절의 ptsd를 벗어버리고 인간으로서의 정당한 휴식을 보장받은 것 같아 정말 대한민국과 우리 국민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윤석열 정부 들어 '작은 정부'의 기조 속에서 소방관들의 증원규모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시절처럼 소방조직은 여전히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내가 근무하는 부산만 해도 소방서에 여러 개의 새로운 계와 과(**과, **계)가 생겼고 없던 곳에 119 안전센터가 새로 생기고 아예 새로운 소방서가 들어서기도 했다. 새롭게 충원된 인원은 많지 않은데 이렇게 조직의 외형은 계속 커지다 보니 기존의 119 안전센터의 인원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119 안전센터의 필수요원들은 부족해지고 두 명이 하던 일을 한명이 하고 네 명이 하던 일을 세 명이 하는 일도 많아졌다.
내가 지금 근무하고 있는 119 안전센터만 해도 그렇다. 여기서 내가 타는 차는 펌프차 -불을 끌 때 주력이 되는 소방차-인데 보통 5명이 탄다. 운전하는 기관사를 제외하고 팀장님 포함 4명이다. 그 4명이 2인 1조, 2개 조가 되어서 현장활동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몇 달 전에 사다리차를 운전하고 있는 대원이 육아휴직을 했다. 그 바람에 펌프차 대원중에 한 명이 사다리차 운전원으로 보직변경 되어서 펌프차에는 4명이 타게 된 것이다. 2인 1조의 룰이 깨져버린 것이다. 펌프차를 운전하는 기관사는 현장에 들어가지 않고 소방차에 남아 물을 보내주는 등의 일을 해야 하니까 실제로 현장에 투입되는 인원은 3명밖에 안 되는 것이다. 소방관들은 서로의 안전을 위해 언제나 2인 1조로 활동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이 원칙이 깨지면 현장활동에서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아무래도 소방력이 약해져 현장활동에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인원보충을 받지 못하고 경방(불끄는 대원) 3명으로 일한 지가 몇 달 되었다.
그 와중에 구급차에 타는 3명의 구급대원중에 한 명이 무릎에 부상을 입어 질병휴직을 내 버렸다. 구급차에 2명이 타고서는 현장활동이 안되어 한 명을 다른 팀에서 지원받고 있다. 말이 좋아서 지원이지, 지원하는 대원은 24시간을 근무하고 다시 12시간을 더 근무해야 한다. 72시간인 삼일동안 36시간 동안 근무하게 되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그 대원에게는 수당을 많이 받아 조금 도움이 되겠지만 이렇게 되면 그전에 근무하던 2교대 근무와 다를 바가 없다.
소방서에 왜 이렇게 인원이 없게 되었을까? 누군가가 휴직을 해도 대신 근무할 사람이 없어서 한 명 부족한 상태로 현장 활동을 하거나 다른 팀에서 지원을 받게 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의 '그 많던 신입들은 도대체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앞서 말했던 것처럼 새로운 과와 계가 생기는 등 소방조직이 비대해진 영향이 크다. 그 계와 과가 생김으로서 과장님과 계장님은 물론이고 그 밑에 소방사, 소방교, 소방장, 소방위까지 인원들이 그리로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소방서의 과와 계가 머리(브레인)이라면 그 밑에 있는 하위 119 안전센터는 소방서의 손과 발이다. 불을 끄고 사람을 구하는 것을 주 임무로 하는 소방조직이 손과 발의 역할을 하는 직원들을 빼서 머리의 역할을 하는 내근업무를 맡긴 셈이다. 머리만 비대하고 손과 발이 약한 조직이 과연 그 본연의 업무인 화재, 구조, 구급업무를 잘 해낼지 의문이다. 뒤뚱거리다 혼자 넘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 센터의 펌프차 대원들의 평균 연령은 상당히 높다. 젊은 피가 수혈되어야 조직에 활기도 돌고 현장활동도 원활해질 텐데 이런 노땅들만 펌프차를 차지하고 있으니 좀 아쉬운 면이 있다. 젊은 피가 들어오면 이런저런 소방의 노하우도 전수하고 그들의 젊은 힘도 현장에서 좀 빌릴 수 있을 텐데 그 많은 신입들은 도대체 다 어디로 갔을까? 그들은 아마도 소방서 내근에서 문서를 작성하며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나 이러려고 소방서 들어온 거 아닌데... 불 끄고 사람 구하려고 들어온 건데, 지금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지?"
일개 119 안전센터의 소방대원으로서 이런 넋두리나 하는 것을 듣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건 위의 높은 분들이 다 생각하고 있으니 당신은 당신이 맡은 자리에서 당신의 임무에나 힘쓰세요!"
물론 그 말이 맞다. 내가 그런 조직의 인사 문제를 가지고서 왈가왈부하는 것이 가당치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라도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소방서는 결국 발로 뛰어 손으로 불을 끄고 사람을 구하는 조직이라는 것을!, 물론 행정적인 일을 담당하는 조직의 브레인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는 손과 발을 더욱 든든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왜 그와는 반대로 소방조직은 머리만 커지고 손과 발은 점점 더 야위어져 가는 것일까? 우리 소방조직이 손과 발을 튼실히 해서 본연의 임무인 현장활동을 잘할 수 있는 조직이 되길 마음속으로 빌 뿐이다. 그리고 나의 이런 걱정들이 정말 기우(杞憂)로 끝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