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78)
지난 9월 26일 대전에 있는 '국가정보 자원관리원'이라는 곳에서 불이 났다. 우리나라의 중요한 정보가 대부분 모여 있는 곳인데 이곳에 있는 데이터 센터에 불이 남으로서 중요한 국가 정보가 훼손되고 온라인으로 처리하던 국가 업무들이 일시적(?)으로 멈추게 되었다.
https://youtu.be/w_HPHzXKyl4?si=qJIHmExXWmBNBK7h
처음 이 뉴스를 접했을 때, 나는 간단하게 복구가 될 줄 알았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정보가 모여 있는 곳인데 얼마나 철저히(?) 이중 삼중으로 보안을 튼튼하게 했을 텐데 조그만 불로 그렇게까지 피해가 크리라곤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10월로 접어들어 추석연휴가 끝나버린 오늘까지도 그 여파는 아직 우리 사회에 미치고 있다. 일단 우리 직장에서 사용하던 정보포털 사이트가 마비되어 수작업으로 일지를 작성하고 있고 온라인 메신저도 먹통이 되어 직원들간의 정보 전달도 원활하지 않다. 공무원 사회가 이러니 일반 국민들이 느끼는 피로감도 상당할 것 같다. 요즘이 어떤 시댄데 수기로 일지를 작성하고 온라인으로 일을 처리하지 못해 전화나 내방으로 해야 한단 말인가? 우리는 이미 온라인 시대에 너무 깊이 스며들어 이런 상황을 참을 수 없는 것이다.
롯데 카드나 KT같은 사기업체에서 해킹이 발생해서 회원들의 개인정보가 털리고 그걸 이용해서 소액결재로 자신도 모르게 돈이 빠져나가고 한 것이 바로 얼마전인데 그 때만 해도 공직사회에 이런 판박이 사고가 일어날 줄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저런 큰 기업들이 전산망 정비도 안하고 해커에 뚫려서 이런 피해를 회원들에게 주면 어떡해?!"
하고 그들을 비난했지만 이번에 공직사회에서 일어난 사건의 여파는 더욱 더 큰 것이었다. 사기업체들은 그 회원들의 피해만 감당하면 됐었지만 이번에는 공공의 데이터가 피해를 입고 온 국민들의 불편으로 이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번 사건은 일반 사기업들의 그것처럼 누군가의 해킹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고 단지 정보이관 과정에서 리튬이온 배터리의 과열로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관리하던 공무원의 실수밖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기 떄문이다.(화재의 정확한 원인에 대해서는 차후의 정밀한 조사가 이루어진 뒤에 알 수 있긴 하지만...)
그래서 그런 것일까? 그 화재후에 또 한명의 소중한 시민, 아니 공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국가 전산망 장애 복구 업무를 총괄하던 공무원이 세종청사 건물에서 투신한 것이다.
이 뉴스를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그 전에 일어났던 롯데카드라든가, kt의 해킹사고와 관련하여 이렇게 투신자살했던 사람이 있었던가? 그냥 그 회사의 임원들쯤 되는 사람들이 몇명 뉴스에 나와 고개를 숙이고 나서 그렇게 유야무야 넘어갔던 것 같은데 공직사회에서는 이렇게 투신자살을 하는 공무원이 나오다니...
정말 소위 말하는 나랏밥(?)을 먹는 공무원으로서 공적 업무의 지엄함(?)이 뼈저리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는 과거 일본의 사무라이가 했던 대로 죽음으로서 자신의 과오를 통렬히 반성하는 이른바 '할복'의 심정으로 그 건물에서 뛰어내린 것이었을까? 아니면 국가의 중요한 정보들이 모두 날아갔는데 그걸 복구하기에는 너무 불가능해 보여 자신이 근무하던 건물에서 뛰어내린 것일까?
어느쪽이 되었던 간에 그 공무원이 감당해야 했을 공적 업무의 부담감이 고스란히 몰려오는 순간이었다.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것,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것이 그에게는 이토록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 중차대한 것이었던 것이다. 나도 물론 나랏밥을 먹는 한 사람의 공무원으로서 이런 압박감이 몰려올 때가 있다. 대형 화재가 나서 시민이 그 건물속에 갇혀 있다거나 옥상에서 애타게 손을 흔들고 있다는 무전을 들을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노란 방화복을 입고 공기호흡기를 차고 분연히 그 불속을 향해 뛰어드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의 안위는 생각하지 않은 채...
비록 성격은 다르겠지만 오늘 이같이 공적 업무의 부담감을 못이겨 스스로 생을 마감한 한 공무원의 소식을 들으니 내 마음도 좋지 않다. 애초에 이런 화재가 일어나지 않고, 데이터 이관 작업이 잘 마무리가 됐더라면 그분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긴 추석 연휴를 여유있게 보내고 오늘 기분좋게 출근하지 않았을까? 비록 불이 났더라도 이왕 난 불과 날아간 데이터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할 수 있는대로 그 복구에 최선을 다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래도 손가락질하는 국민들이 그의 꿈에 나타났을까?
소방 공무원이든, 경찰 공무원이든, 일반직 공무원이든, 우리는 모두 공무원이기 이전에 한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때가 있다. 물론 그것이 로봇으로 대체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로봇은 정해진 명령에 의해 짜여진 작업만을 하기 때문에 실수가 있을 수 없고 비록 그 작업의 결과가 잘못되었다 할지라도 압박감이나 죄책감은 가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은, 공무원인 사람은 실수가 있을 수 있고 또 그 결과에 대한 압박감이나 죄책감은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항상 그래야 미덕인 일본의 사무라이 시대가 아니다. 그런 실수로 인해 압박감을 가지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공무원이 나오는 우리 사회는 그 자체로 뭔가 문제가 있는 사회가 아닐까?
요즘 어디에다 전화를 걸면 '이 전화를 받고 있는 사람도 누군가의 아들, 딸, 엄마, 아빠일 수 있다'는 멘트가 나온다. 공무원의 과실로 국민들에게 중요한 데이터가 날아갔다고 불평하는 이들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 데이터를 관리하던 공무원도 당신들의 아들 딸, 부모 일수 있다고, 그리고 차가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달릴 때 옛날 어른들이 하시던 말씀이 떠오른다, 사람나고 차 났지, 차나고 사람 났나고, 날아간 데이터 보다 중요한 건 바로 사람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