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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방관아빠 무스 Nov 30. 2024

블랙아이스

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66)

(사진출처 - 중앙일보)


며칠 전부터 윗지방(?)에는 큰 눈이 와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보도가 뉴스를 뒤덮고 있다. 114년 만의 11월 최대 폭설이라고 하니 말 다한 것 같다. 그리고 그제는 원주에서 차량 50여 대가 뒤엉킨 교통사고가 있었다. 눈 내린 뒤에 노면이 얼어붙은 '블랙아이스'때문이었다. 


https://youtu.be/T-JG5GTs3XY?si=5m-qibY3UPOxzIdn

(강원도 원주의 '블랙아이스' 교통사고)


눈 내린 도로에서 살짝 얼어붙은 '블랙아이스'를 감안해서 운전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50여 대의 연쇄 충돌로 이어졌다는 내용이었다. 이 뉴스를 보니 십여 년 전, 내가 근무했던 부산 강서구 E대교에서 일어났던 블랙아이스 교통사고가 떠 올랐다. 


(부산 강서구 E대교-카카오 맵 캡처)


부산 강서구에 있는 E대교는 낙동강 하구에 있다. 낙동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 그 위를 E대교가 가로지른다. 그래서 낮에 찍은 위 사진에서는 평온하기 그지없는 절경이지만 사고가 나던 날은 그렇지 않았다. 


그때는 요즘처럼 겨울의 초입으로 들어가려는 때였다. 그리고 평일, 오전 8시쯤이었다. 심지어 눈도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안개가 잔뜩 낀 날씨였다. 겨울의 초입 부분에 안개가 잔뜩 낀 날씨에 강과 바다가 맞닿는 지점에 놓인 교량의 도로라... 뭔가 떠오르지 않는가? 그래, 바로 서리, 서리다. 그때 저 도로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밤에서 아침으로 넘어가는 시점의 기온차에, 그것도 바다와 강이 맞닿는 지점에서 만들어지는 수증기 때문에 서리가 끼었다가 녹으면서 생성된 블랙아이스가 얼어붙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에 강서구에서 부산 시내로 들어오는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저 출근시간에 맞춰 가느라 엑셀을 정신없이 밟았을 뿐이었다. 먼저 차 두 대(아마 화물차와 승용차의 추돌이었던  것 같다.)의 사고로 관할 구조대가 먼저 출동했었다. -나는 이 사고에 출동하지 않았다. 다만 관할 소방서에 있던 동료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일 뿐이다.- 소방관들은 사고 현장을 목격하고 소방차를 사고현장에서 후방 50~100m 사이에 세우고 안전 표지판을 설치한 후, 사고 수습을 하러 두 대의 차가 엉켜있는 사고장소로 걸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차량 내부에 사람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구조작업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사고가 난 줄도 모르고 저 도로를 엑셀을 힘껏 밟으며 달려오는 승용차가 있었던 것이다!, 그 승용차는 도로 우측에 경광등을 켜고 있는 소방차를 보고도 아무 생각이 없었던 걸까? 소방차가 그렇게 도로에 서 있으면 일단정지를 하거나 서행을 해야 하는 것이 우선일 텐데, 이 승용차의 운전자는 출근시간에 무척 쫓기었나 보다. 소방차가 있는 3차선을 피해서 2차선으로 접어들었다가 다시 3차선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좌-1차 사고, 우-2차 사고(그림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음))


위 그림에서 검은색 승용차로 표시된 2차 사고의 운전자는 왜 다시 3차선으로 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전방 100미터쯤에 다대포로 빠지는 나들목이 있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3차선으로 빠진 후 눈앞의 사고 현장을 목격하고 다시 방향을 틀어 2차선이나 1차선으로 가려 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고 난 장소에는 이미 블랙아이스가 얼어 있어서 브레이크와 핸들이 말을 듣지 않았을 테니까...


결과는 참혹했다. 검은 승용차는 사고 현장을 수습하고 있던 소방관을 그대로 치고 연이어 빨간색 승용차를 추돌하며 멈췄다. 앞에 있던 소방관은 가까스로 2차 사고를 피할 수 있었지만 빨간 승용차 뒤에 있던 소방관은 중상을 입었다. 처음에는 하반신 마비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심각한 부상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많이 회복되어 소방관 생활을 잘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동안의 재활 과정에서 겪은 심적 트라우마와 육체적 고통은 본인과 곁에 있는 가족이 아니라면 아마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렇듯 이름조차 무시무시한 '블랙아이스'는 대형 교통사고의 원인이 된다. 하지만 이 또한 운전자들의 관심과 주의로서 예방할 수 있다. 겨울철, 기온차가 심하게 나는 새벽이나 아침 시간에 서리나 눈이 내리거나 안개가 끼어 있다면, 그리고 그늘진 응달이나 교량등의 도로를 운행한다면, 블랙아이스가 얼어있다고 생각하고 안전운전을 해야 한다. 스노우 체인이나 그밖에 장비를 구비하면 좋겠지만 그것이 없더라도 속도를 늦추고 전방주시를 철저히 해서 만약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위험지역에 들어서기 전에 언제라도 대응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전방에 교통사고가 났는지 소방차와 경찰차 등이 서 있다면 서행을 하면서 언제라도 정지할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블랙아이스가 얼어 있는 도로에서 2차 사고의 가능성은 언제라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본인을 비롯한 다른 운전자들의 생명과 안위를 지키는 일이며, 또한 그곳에서 여러 작업을 하고 있을 소방관과 경찰관등 다른 사고 관계자들의 생명과 안위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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