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72)
우리 관내에는 재개발 구역이 한 군데 있다. 아파트를 짓기 위해 산등성이에 있는 집들을 철거하고 있는 곳인데 요즘 부동산 경기 때문인지 재개발 진척이 하세월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재개발 지역에서 요즘 연쇄 방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위 사진은 그 연쇄방화가 일어난 산등성이의 빈집들 사진이다.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노란색으로 '켁'이라고 되어 있는 곳이 올해 연쇄방화가 일어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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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작년에 쓴 글 중에서 '불을 끄다'라는 제목으로 쓴 위 글도 사실 제일 위 사진에 나오는 동네에서 한 50미터 정도만 내려가면 있는 빈집에서 난 불을 끈 내용이었다. 같은 재개발 구역에서 일어난 화재였던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인사이동으로 우리 센터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우리 관내에 그런 재개발 구역이 있는 줄도 몰랐고 거기서 연쇄방화가 일어나리란 생각도 못했었다. 그런데 올해 들어 그 지역에서만 4번의 연쇄방화가 일어난 것이다. 1월부터 4월까지 빠짐없이 한 번씩, 그것도 낮에만 난 것이었다.
1월에 처음 화재가 났을 때부터 우리 119 안전센터 직원들은 그 일대를 순찰하며 지도를 작성했다. 위에서 보듯이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화재발생 현황도'라고 할 수 있겠다. 붉은색으로 X표시를 한 곳이 화재가 난 곳이다. 오른쪽 위에 붉은 글씨로 적힌 대로 화재가 발생한 날짜는 1차는 1월 22일, 2차는 2월 20일, 3차는 3월 20일, 4차는 4월 30일이었다. 그것도 시간은 11시에서 15시쯤으로 일정하고 불이 삽시간에 건물을 완전히 태운 것으로 봐서 방화로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단 화재가 나면 소방관들은 고생할 수밖에 없다. 밖에서 화재를 다 진압해도 안에는 아직 잔불이 남아있어 화재를 완전히 진화하려면 적어도 2~3시간은 걸린다. 거기다 그 재개발지역은 언덕 위에 있기 때문에 소방차가 진입하기 어렵다. 진입로 중간쯤까지 소방차가 진입하고 그 나머지 거리는 소방관이 직접 소방호스를 깔면서 가야 하는데 방수복에다 공기호흡기를 차고 언덕배기를 따라 50~100미터를 호스를 깔면서 화점으로 진입해 2~3시간 동안 화재를 진압하다 보면 온몸이 녹초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올해 들어 벌써 4번째, 지난해까지 합쳐 5번째 연쇄방화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조치가 없다는 것이다. 부산의 번화가인 서면이나 해운대에서 이런 연쇄방화가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아마 지역 뉴스에 날마다 1면 톱으로 나오고 벌써 범인이 붙잡혔을지 모른다. 하지만 여기는 노인과 바다만 남은 부산의 외곽, 영도라서 그럴까? 경찰이나 구청에서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우리가 때때로 순찰하러 가서도 경찰이라든가 구청의 담당자를 만난 적이 없다. 그냥 불이 나면 소방서에서 와서 끄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하도 답답해서 그랬는지 얼마 전 우리 소방서에서 구청에 공문을 보내 그 일대에 CCTV라도 설치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기야 거기 CCTV를 설치한다고 범인이 잡히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런데, 이곳에 불은 왜 나는 걸까, 누가 이곳의 빈집에 불을 지르는 걸까?, 이런 의문이 항상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불이 난 다음 날, 이 일대를 순찰을 하고 오는 길에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한 아주머니를 만났다. 그 아주머니의 말에 따르면 이랬다. 몇 년 전, 재개발에 들어간 이곳의 주민들은 얼마간의 보상을 해 주겠다는 재개발 조합의 말을 믿고 동의서에 사인을 해 줬단다. 그런데 그 재개발 조합에서 보상금의 10%의 금액만 주고 차일피일 미루면서 재개발이 지지부진해지자 전기와 물이 끊긴 그곳에 계속 살기 어려워진 주민들이 얼마간의 짐을 놔두고 떠난 사람도 있고, 아직도 계속 살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누군가가 짐을 놔두고 떠난 사람들의 빈집만 골라 불을 지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이 난 집의 옆집은 무려 5인 가족이 살고 있고 3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가정이라고 했다. 만약 그 집으로 불이 번져 혹시라도 인명피해가 났으면 어쩔 뻔했냐고 우리를 보며 하소연을 하는 것이었다. 그 아주머니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녀의 말이 맞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당장이라도 그 재개발 조합으로 달려가서 거기 있는 사람들을 조사해 보고 싶었지만 수사권이 없는 우리로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 아주머니에게 혹시나 수상한 사람이 보이면 112로 신고하고 불이 난 것을 보면 신속하게 119로 신고하라는 말만 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 불이 어떻게 났는지는 우리로서는 알 수 없다, 그리고 그 불을 누가 질렀는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아주머니의 말처럼 재개발 문제로 갈등을 빚는 측에서 고의로 지른 것이라면 그것은 소방법에도 저촉되는 중대범죄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불로 인해 주위에 있는 누군가가 피해를 입는다면 그것 역시 소방관인 우리가 막아야 할 우리의 업무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만으로서는 그것을 막기 힘들 수도 있다. 일단 불이 나고 나서 그 골든타임을 놓치고 현장에 도착한다면 그 피해를 막기가 어려울 것이니까. 불이 나기 전에 경찰에서 범인을 잡거나 구청에서 나서서 재개발조합과 원주민들의 갈등을 중재해 준다면 훨씬 막기가 쉽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아직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각 기관끼리 협력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소방은 소방의 업무를, 경찰은 경찰의 업무를, 구청은 구청의 업무를 하면서 말이다.
오늘 밤도 그곳에 불이 나지 않기를, 그곳에 있는 빈집에서 난 불로 애꿎게 그 부근에서 사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나는 이 밤을 지키며 이 글을 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