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로 살아간다는 것(57)
(사진-이미지 투데이)
지난주 목요일, 첫째가 수능을 쳤다. 초등 6년, 중등 3년, 고등 3년의 교육과정에 대한 평가와 함께 예비 사회인으로서 첫발을 디딘 것이다. 2006년에 태어난 첫째가 18년이란 세월이 지나 수능시험을 쳤다는 데 대해 아빠로서 정말 감격(?)스런 하루이기도 했지만 마냥 감격만 할 수만은 없는 하루이기도 했다.
아시다시피 수능은 이제 청소년의 티를 벗고 성인으로 나아가는, 대한민국의 마지막 성인식(?) 같은 통과의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시험으로 -물론 우리 세대가 치던 학력고사처럼 이 한 번의 시험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진 않지만- 그동안 교육받은 것에 대한 평가와 앞으로의 인생의 방향과 차원이 정해진다는 데 대해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모든 부모가 그러하듯이 나도 첫째가 시험을 잘 치기를 바랬다. 공부한 것 이상의 성적이 나온다면야 더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어처구니없는 실수는 하지 않고 첫째가 공부하고 노력했던 것만큼의 성적은 나와주기를, 자기가 공부한 것만큼은 잘 풀고 답안지에 잘 마킹하고 시험장을 나올 수 있기를...
그래서 요즘 그렇게 많은 수험생들의 로망인 의대나 서울의 sky까지는 가지 못하더라도 지방 명문대(?) 정도는 무난하게 갈 수 있기를, sky가 아니더라도 서울의 이런저런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그런 학교에 떡하니 붙어주기를 내심으로 기대했다. 그래서 좀 있다 망년회 혹은 송년회에 가서 친구나 지인이
"이번에 딸 시험 쳤죠, 어디 붙었어요?"
라고 다이렉트하게 물어봐도
"허허허, 서울에 있는 **대학에 붙었습니다. sky는 못 가고..."
라고 에둘러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그래도 서울의 **대학이라면 공부 잘했네요, 요즘은 서울에 있는 대학은 모두 서울대학이라잖아요."
라는 위로 혹은 덕담을 들으며 내심 뿌듯해 할 수 있기를 바랬다. 그랬는데...
첫째가 수능을 치고 와서 하는 말은
"아빠, 이번 시험 망쳤어, 내년에 재수해야 할까 봐"
라는 것이었다. 이런~~~~
갑자기 내 고3 시절에 학력고사를 쳤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는 12월쯤에 학력고사를 쳤는데 자기가 지망한 대학교에 가서 시험을 치는 구조였다. 그때는 매년 시험날마다 약속이나 한 듯 매우 추웠다. 날은 춥지, 처음 간 대학교 강의실은 난방이 안 돼있지, 오들오들 떨면서 시험을 쳤었다. 평생을 좌지우지하는 시험이니 안 그래도 떨리는데 말이다. 시험을 치고 와서 며칠 후에 나온 가답안으로 채점을 하는데 아무래도 이 성적으로 그 대학 그 과에는 붙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대학 떨어졌다고 생각하고 며칠간 두문불출했었다. 그래도 합격 결과는 봐야 하지 않느냐는 엄니의 말에 엄니의 손에 붙들려 함께 다시 그 대학교에 갔는데 -지금은 좀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그때는 대학 합격자 명단을 그 대학 벽에다 대문짝만 하게 붙여놓으면 사람들이 거기 와서 육안으로 보는 시스템이었다.- 예상밖으로(?) 그 벽에 붙여놓은 커다란 종이에 내 이름과 수험번호가 있었다. 엄니와 나는 서로를 부둥켜 안진 않았지만 서로 기뻐하면서 집으로 돌아온 기억이 생생하게 났다.
"**아, 아빠 대학 들어갈 때도 사실 점수가 낮아서 떨어진 줄 알았어, 그런데 나중에 보니 합격이더라구, 너도 그렇게 될지 모르니 성적표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조용히 기다려보자"
이렇게 도저히 첫째가 이해할 수 없는(?) 멘트를 날리면서 첫째를 위로해 보았다. 첫째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듣고 있더니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첫째는 아마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토록 수능시험에 낙관적인(?) 아빠의 태도와 앞으로 자신의 인생에 펼쳐질 많은 일들을... 나도 그랬으니까, 학력고사에 떨어졌다고 낙담했지만 사실은 합격이었고 그 대학입시와 상관없이 흘러갈 내 인생을 그땐 나도 몰랐으니까...
딸아, 수능은 인생의 5%에 불과하단다. 그 아래에 있는 95%의 인생과 비교하면 수능은 정말 물 위에 떠 있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단다. 그러니 거기에 너무 낙담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그리고 너의 인생도 앞으로 80%나 남아있잖니. 그 시간 동안 수능시험의 결과를 뒤바꿀 일들은 끊임없이 일어날 수 있단다. 그러니 다시 힘을 내자고, 다시 도전해 보자고 말하고 싶구나, 젊음의 특권은 누가 뭐래도 도전이니까 말이다.
2024년의 수능시험이 끝났다. 하지만 첫째의 인생이 끝난 것은 아니다. 더 많은 땀과 눈물, 그리고 열정을 바칠 도전 기회가 더 많이 열려 있다. 나는 우리 첫째를 믿는다. 한 번의 실패와 좌절로 낙담할 내 딸이 아니라는 것을 믿는다. 그래서 오늘밤엔 첫째에게 말해 주어야겠다. 아빠는 널 사랑한다고, 그리고 넌 할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