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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생일

아빠로 살아간다는 것(67)

by 소방관아빠 무스

어제는 내 생일이었다. 막둥이는 며칠 전부터 내 생일에는 쿠*쿠*에 갈 거라고 들떠 있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초코 분수에 마시멜로를 찍어 먹어보고(그게 초코 퐁듀?) 싶어서였다.


"막둥아, 아빠 생일엔 아빠가 먹고 싶은 걸 먹어야지, 왜 네가 먹고 싶을 걸 먹어?"


언니들이 그런 막둥이를 보고 이렇게 견제구(?)를 던졌지만 막둥이는 미동도 없었다.


"아빠는 딱히 먹고 싶은 게 없다고 했어, 그리고 아빠는 날 좋아하니까 내가 좋아하는 걸 먹는 게 맞거든~"


내가 언제 딱히 먹고 싶은 게 없다고?~ 이런 지극히 편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봤나~ 정말 참아줄래야 참아줄 수가 없지만 막둥이니까 너무 사랑스럽다~이건 뭥 미?~^^;;


그랬다, 난 언제라도 막둥이가 먹고 싶은 걸 먹으러 갈 준비가 돼 있었다. 그게 설사 햄버거 맥모닝 세트라 해도 말이다. 그런데 초밥 뷔페라니 이 얼마나 환상적인가 말이다. 막둥이는 초코 퐁듀를 먹고 난 초밥을 즐기고 말이다, 근데 막둥이의 이런 기대는 며칠 전에 깨졌다. 내 생일의 진짜? 주인공인 엄니를 함께 모시기로 했는데 요즘 엄니가 다리가 아프셔서 이리저리 음식을 가지러 다니는 초밥 뷔페에 모시고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우리가 가끔 가는 동네의 고깃집에서 하기로 했는데 막둥이의 반응은 예상보다 훨씬 긍정적이었다.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할머니가 그렇다면 내가 좀 양보해야지~'


이거하고 똑같이 말하진 않았는데 대충 이런 뉘앙스였다. 여섯 살짜리라 징징거리면서 고집을 피우면 어쩌나 했던 우리의 염려가 순식간에 기우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우리 막둥이 많이 컸네~'


내 마음속에서는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리는 걸 보니 다 키웠구나 하는 마음도 들고 뿌듯했다. 나는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역시 아내가 유아교육 전문가라 그런지 이렇게 애를 잘 키웠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처갓집 말뚝(?)에다 절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밥을 다 먹고 나서 와이프와 아이들이 내게 생일 선물을 줄 때 막둥이도 자기가 챙겨 온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것이 아닌가? 뭐지? 했는데 그것은 막둥이가 내게 직접 쓴 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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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둥이가 내게 쓴 편지의 겉봉투~수작업인 듯~ㅋ)


안에 있는 내용물을 꺼내 펼쳐 보았다. 삐뚤빼뚤 6살짜리가 쓴 글이라고 차마 믿겨지는? 그런 편지 한 장이 나왔다.


KakaoTalk_20250922_151012084.jpg (막둥이의 편지~ 제법 그럴 듯~ㅋ^^)


이 녀석 봐라~ 제법인데~ 하는 목소리가 마음속에서 흘러나왔다. 사랑한다는 말을 제일 먼저 쓰다니~ 역시 우리 때? 하곤 다르구나~ 뭐? 놀아주셔서 감사하다고? 아빠가 널 위해 하는 것이 많고 많은데 놀아주셔서 감사하다니~ 역시 여섯 살짜리 답구나. 오늘 할머니 데리고 와서 좋았다고, 응? 근데 너 이 편지 집에서 여기 오기 전에 쓴 거 아냐?, 너 혹시 시간 여행자니?~ㅋ 오늘 음식점에서 촛불 불자구? 이 문장을 보니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구나~ㅋ, 아빠 생신이라 편지를 쓴다고, 편지 쓰는 건 좋은데 생신이라니 좀 거북하구나, 이 아빠 아직 환갑도 안 됐어, 그냥 생일로 해 주면 안 되겠니? 뭐? 아빠 차에서 짜증내서 제송?하다구? 니 죄를 네가 알긴 아는 모양이구나~(유치원에서 막둥이를 데리고 올 때 내 차로 데려오는데 유치원과 집까지의 거리가 좀 멀기 때문에 막둥이는 심심하다고 내게 가끔 짜증은 내곤 했기 때문이다.) 아프지 말고 코로나 조심하라구? 이젠 이 아빠를 걱정도 다 해주는구나, 우리 막내딸 다 키웠다, 다 키웠어~ 진심으로 생일 축하하는 건 알겠는데 주은 울림이라고? 주은 올림이 아니고 울림이야? 내가 널 울렸어? 왜? 아빠가 넘 잘해줘서?~ㅋ^^;;


막둥이의 편지를 읽는 동안 내 입에선 흐뭇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늘상 아플까, 코로나에 걸릴까 걱정했던 막둥이가 이젠 나를 걱정해 주는 걸 보니 이제 슬슬 상황이 역전(?)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한 이십 년 더 키워야 되지만...ㅋ, 막둥이가 갓 태어났을 때 보자기에 싸서 집에 데려와 밤낮으로 보살피면서 밤에 울면 안고 거실을 몇백 바퀴씩 돌면서 재웠던 그때의 기억들이, 그때의 힘듦이 다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아빠 생일이라고 삐뚤빼뚤한 글씨로 편지까지 써 주니 정말 감동이었다.


부모는 아이를 키우면서 뭘 먹고 사는지 어제 알게 되었다. 아이가 자라면서 하는 한마디 한마디 말에 대한 감동으로 사는 것이란 걸 알게 되었다. 말도 못 하고 그저 울기만 하던 아이가 날이 가고 해가 가면서 말을 하고, 그 말이 부모의 가슴에 감동으로 다가오면서 부모들은 그 감동을 먹고사는 게 아니던가?, 어젠 막둥이의 편지로 그 감동을 씨게(?) 받은 날이었다. 그 감동을 잊지 말고 또 키워보자, 그래서 그 감동이 역전되는 그날이 오면 아빠는 할아버지가 되고 막둥이는 또 엄마가 되겠지, 그렇게 그렇게 또 살아가 보자, 그렇게 사는 것이 또한 사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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