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로 살아간다는 것(65)
지난주 토요일에는 막둥이가 감자를 캐러 외할아버지가 계신 거제도에 갔다 왔다. 물론 엄마랑 함께였다. 나도 같이 가려 했는데 마침 그날이 출근날이라서 같이 가지 못했다. 장마철이라 감자가 물에 젖으면 안 되기 때문에 볕이 쨍한 토요일을 골랐는데 마침 그날이 내 출근날이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시원 섭섭(?)했다. 일을 핑계로 다른 일 하나를 제낀(?) 느낌이었으니까... 그런데
"아빠, 잘 갔다 와, 우린 거제도 가서 감자 많이 캐 올께~"
하고 막둥이가 신이 난 걸 보니 좀 서운하긴 했다. 사실
'아빠, 안 가면 안 돼?, 오늘 할아버지 감자 캐는 날이잖아, 아빠가 있어야 많이 캐는데...'
하고 서운해 주길 바랐고 작년까지만 해도 그랬었다, 그런 데 가면서 아빠가 없으면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아는 아이였으니까, 그랬는데 그날은 아빠가 오나 안 오나 하등 관계없다는 투로 말하는 것이었다.
'어이구, 이것 봐라, 이젠 혼자서도 잘 캘 수 있단 말이지?'
그랬다, 약간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막둥이는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야무지게 선크림을 바르고 모자와 장화를 챙기고 모기 패치를 붙이며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빠 없이도 혼자서...
이제 감자를 캐러 간지 어언 삼 년이니,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감자 캐기의 레퍼토리가 벌써 막둥이의 머릿속 안에 벌써 들어차 있는 것일 게다. 호미로 땅을 파고 그 누런 황금색(?) 감자가 땅에서 선물같이 나오면 통에 주워 담고, 그 통을 할아버지가 끄는 수레에 실어서 길가에 있는 차에까지 밀고 가고, 그 차에 다시 감자를 나눠 싣고 남은 감자는 구워서 먹고 강아지들한테도 주고 수탉도 쓰다듬고... 가는 길에 개구리도 잡고 옥수수도 따고, 그러다 외할아버지 집에 오면 할머니가 준비해 놓은 수박화채가 또 기다리고 있을 테지... 그런 일련의 레퍼토리 속에서 이젠 아빠가 없어도 된다는 걸 막둥이는 알아버린 것일까?
약간 서운하긴 해도 아빠가 없어도 된다는 건 내게 있어 아주 좋은 소식일 수도 있었다. 이젠 어딜 가나 '아빠, 이거 해 줘~, 아빠, 저거 해 줘~'하던 껌딱지가 떨어져 나간다는 얘기니까...
근데, 근데 왜 난 괜시리 서운할까, 그런 소리들이 좀 귀찮긴 하지만 한때는 음악같이, 잠을 깨우는 모닝콜처럼 아련하게 들렸었는데 이제는 그게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서운한 걸까, 아니면 그 녀석이 조금씩 나를 두고 세상 속으로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서운한 걸까?
다음날 퇴근해 보니 막둥이는 엄마가 만들어준 회오리 감자를 맛나게도 먹고 있었다. 벌써 세 개째라고 했다.
"아빠 이제 와? 감자 먹어 봐요, 진짜 맛있어~"
막둥이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래, 많이 먹어라 많이 많이 먹고 어서 커서 이 아빠 품을 떠나렴...
나는 감자를 하나 집어 입어 넣어 보었다. 막둥이의 살결처럼 부드러운 감자가 내 입에 녹아들어 갔다. 이런 짭짤한 감자를 먹을 수 있는 여름이 앞으로 내게 몇 번이나 남은 것일까?
마지막으로 북한의 명곡(?) 대홍단 감자를 올려본다~^^
https://youtu.be/HkWXp5jWTnY?si=iz-EEFGBVu_oAs_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