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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아빠로 살아간다는 것(60)

by 소방관아빠 무스

지난주에는 첫째, 둘째의 고등학교, 중학교 졸업식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 주에는 막둥이의 유치원 수료식이 있었다. 세 딸이 며칠간의 간격을 두고 졸업과 수료를 하다 보니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나 힘든(?) 시기였다. 세 딸의 졸업식과 수료식에 참석하느라 피곤했고 천정부지로 오른 꽃다발과 끝난 뒤에 졸업 축하 파티(?)를 치르느라 지갑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넘 적나라했나?~ㅋ)


어쨌든 그런 힘든 졸업과 수료를 거치면서도 마음이 뿌듯했던 건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컸구나'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언제까지나 아이일 줄로만 알았던 첫째가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마찬가지로 아빠맘에는 영원한 아기일 줄로만 알았던 둘째도 중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정말 아기였던(?) 막둥이는 6살이 되어 엄마의 그림자를 벗어나 스스로의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니 지갑에 돈이 좀 나가는 게 대수랴 싶었다. 애들을 이젠 절반은 키워놓았으니 첫째는 어쨌든 몇 년 후면 제 앞가림을 하게 되겠고 둘째는 또 고등학교에서 힘든 입시의 시간들을 거치겠지만 몇 년 후면 어엿한 대학생이 될 터이고 막둥이 역시 몇 년 후엔 초등학교를 입학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아이들의 졸업식이 끝나고 막둥이가 젤 좋아하는 샤부샤부집에 가서 점심을 먹었는데 거기서 두 딸들이 살뜰히 챙겨주는 샤부샤부와 칼국수를 먹으면서 먼(?) 옛날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첫째가 태권도장에 다닐 때 줄넘기 대회에 나가서 금메달(?)을 몇 개나 따왔던 기억, 둘째가 초등학교 학예회에서 댄스부를 맡아 센터본능(?)을 발휘하며 멋지게 춤을 췄던 기억, 코로나 시국엔 막둥이가 코로나에 걸려 집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며칠이나 집에서 갇혀 지냈던 기억등...


그렇게 날 웃기고 울렸던 기억들이 모여 오늘과 같은 졸업식을 맞이하게 된 것이리라. 그러니 이렇게 내 앞에서 살뜰히 수저를 챙기고 쌀국수를 담아주는 두 딸들이 그렇게 대견할 수 없었다.


특히 첫째는 자기가 원했던 의대에 들어가지 못하고 올해는 재수를 하게 되었다. 다른 학교 다른 과에는 갈 수 있었지만 첫째가 한번 더 해 보겠다고 해서 그러면 한번 더 해 보라고 했다.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인데 자기가 해 보고 싶은 대로 한번 해보고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그렇지 않으면 첫째나 나나 계속 후회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하기야 100년에 못 미치는 인생이지만 기나긴 우리 인생에서 1년이란 기간은 길 수도 있지만 짧을 수도 있는 기간이 아니던가? 그 일 년을 써서라도 자기가 원하는 것은 한 번쯤 해 보아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 아내나 내가 첫째를 보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우리 세 딸들의 고등학교 중학교 졸업식이 끝이 났고 막둥이의 수료도 무사히 마쳤다. 이렇게 무사히 정규 졸업과정을 마친 세 딸들에게 다시 한번 축하를 보낸다. 그리고 우리 세 딸들을 지금까지 한결같이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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