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로 살아간다는 것(13)
중 3인 첫째가 지금 20개월인 셋째만 할 때의 일이다. 세 식구가 함께 저녁밥을 먹고 있었는데 첫째가 무언가를 잘못 먹고 사레가 들렸는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집사람이 등을 몇 번 쳐주었지만 첫째는 계속 기침을 하더니 나중에는 숨을 못 쉬겠는지 입술이 파래지며 버둥대기 시작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첫째의 기도가 뭔가에 막힌 걸 알아채고 식탁에서 일어나 첫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영아 마네킹으로 수십 번이나 연습한 영아 하임리히법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왼손으로는 첫째의 턱을 사뿐히 받치고 엎드린 자세로 내 허벅지 위에 올렸다. 그리고는 오른손으로 5회 등 두드리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5회를 두드리기도 전에(아마 4번쯤 두드렸을 것이다.) 첫째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물질이 나온 것을 확신하고 첫째를 안아 올렸다. 녀석은 침을 흘리며 울고 있었다. 울 수 있다는 말은 결국 기도가 개방되었다는 것이므로 그제서야 난 안심할 수 있었다. 울고 있는 첫째를 엄마품에 토스하고 나서 나는 식탁의자 위에 침으로 범벅이 된 떡 조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거였네, 떡!"
난 그 떡 조각을 첫째를 안고 달래고 있는 와이프에게 보여주었다. 와이프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떡 조각을 바라보았다. 그제서야 자기가 소방관과 결혼한 것이 실감이 나는지 한 손으론 울고 있는 아이를 토닥거리고 한 손으론 나를 보고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렸다. 그리고 한동안 그때의 일이 생각나는지 본가에 가든, 친정에 가든 이렇게 이야기를 하곤 했다.
"어머니, 글쎄, 아범이 아니었으면 수진이가 그날 어떻게 됐을지도 몰라요, 119를 부르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우리 신랑이 119지 뭐예요~호호호!"
둘째 또한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때도 둘째가 지금의 셋째만 할 때였다. 어느 더운 여름날이었는데 우리 부부는 첫째와 둘째, 그리고 부모님을 모시고 집 근처에 있는 해수욕장에 갔었다. 그 해수욕장은 수심이 앝아 아이들도 놀기가 좋아 자주 놀러 가는 해수욕장이었다. 게다가 바다로 지는 낙조가 유명해서 여름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기도 했다.
해질 무렵에 우리는 바닷가에 꼬맹이들을 데리고 들어갔다. 첫째는 물놀이에 한창이었고 어른들은 바다를 향해 붉은 노을을 물들이며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갓 걸음마를 뗀 둘째는 와이프 옆에 서서 제 엉덩이 정도에서 찰랑대는 바닷물이 신기한지 한참을 들여다 보나 싶었는데...
'퐁당~슈욱!'
둘째의 몸이 갑자기 바닷물 속으로 꼬꾸라진 건 순식간이었다. 2~3미터 옆에서 지켜보던 내가 얼른 달려와 둘째의 허리를 감싸 안고 들어 올렸지만 둘째는 반응이 없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난 다시 영아 심폐소생술로 들어갔다. 첫째 때와 마찬가지로 왼손으로 둘째의 턱을 살며시 받치고 내 무릎에 엎드리게 한 뒤, 오른손으로 등 두드리기 5회 실시!, 첫째 때와는 달리 한 7회 정도 두드렸을 때 둘째의 울음소리가 들렸던 것 같다.(아이의 심장은 뛰고 있었기 때문에 가슴압박은 하지 않았다.)
내가 아이의 등을 두드리고 아이가 울자, 그제서야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처음 보는 사람은 저게 뭐 하는 거지? 하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무슨 일 났냐고, 난 아무 일 아니라고 하면서 울고 있는 아이를 아내에게 안겨주었다. 아내는 이번에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기의 입과 코로 바닷물이 들어가 숨을 쉬지 않을 때, 아기를 머리를 위로 추켜올리고 얼러준다고 흔들기라도 했다면 그 물이 기도로 들어가 더 큰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고 냅다 안고 뛰기라도 했으면 결과는 더 안 좋았을 것이다.
그날 이후로 난 우리 집의 히어로가 되었다. 아내도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소방관과 결혼한 것을 뿌듯해하는 눈치였다. 뭐든지 나보고 해달라는 것이 많았다. 소방관은 뭐든지 잘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이 커서 제 엄마와 함께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다니게 되자 아이들의 히어로는 엄마가 되어버렸다.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에서 선생님으로 일하는 엄마가 아이들의 눈에는 대단해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나는 아이들을 어딘가에서 구할 일은 딱히 없었다. 가끔씩 아이들에게 꼬맹이 적에 아빠가 너희들을 구했다고 말을 해주었지만 자기들은 기억이 안 난다고 하니 이런 게 히어로의 비애일까?
셋째를 어딘가에서 구해본 적은 아직 없다. 이제는 와이프도 직장에서 영아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았다며 그런 일이 또 생기면 셋째는 자기가 구할 거라고 자신만만해한다. 이제는 우리 집의 히어로 자리를 집사람에게 물려줘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첫째와 둘째는 이제 아빠보단 엄마의 손길이 더 필요한 나이가 된 것이다. 사춘기에 들어선 첫째와 둘째는 엄마와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저녁에 방문을 닫고 자기네들끼리 방에서 몇 시간을 소곤거린다. (그래서 세 여자들의 세계가 가끔 궁금할 때도 있다.) 주말이면 셋이서 노트북으로 자기들이 좋아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도 있다. (난 안 끼워 준다ㅠㅠ) 그럴 때면 조금 서운한 맘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남은 셋째와 놀면서 위안을 삼아 본다.
'이 녀석의 히어로는 아직까진 나겠지...'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