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로 살아간다는 것(12)
코로나 시절인 요즘도 학부모 재능기부가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는데 우리 첫째 -위의 사진에서 CPR마네킹을 만지고 있는 아이- 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나, 그 때는 정말 학부모 재능기부로 일일교사를 나가는 일이 많았었다. 그 때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안에 초등학교가 있다 보니, 누구네 아빠는 무슨 일을 하고, 누구네 아빠는 어디서 근무하고... 하는 정보들이 아파트 아줌마들 사이에서 모두 공유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였는지 첫째가 어느 날 학교에 다녀오더니 가방을 던지면서 대뜸 한다는 말이
"아빠, 다음주에 우리학교에 일일교사로 와 주면 안 돼?"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같은 반 친구 경찰관 아빠가 오늘 일일교사로 경찰관 복장을 멋지게 입고 와서 경찰관 직업에 대해서 이야기 해줬는데 너무 멋있어서 그 아저씨가 가고 난 후에도 그 친구의 인기가 올라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마침 담임선생님이
"오늘은 경찰관 아저씨가 왔는데, 담 주엔 누가 오실까?, 혹시 소방관 아빠 있는 사람?~"
하고 말씀하셨는데 친구들이 모두 자기를 가리키면서
"수진이 아빠 소방관이래요!"
하고 말했다는 것이다. 얘기를 들어보니 나도 한번은 가줘야겠다 싶어서
"그래, 가지 뭐, 너희들 궁금해하는 심폐소생술 하는 방법도 가르쳐 주고 말이야..."
하고 첫쨰를 안심시켰다. 그 때만 해도 심폐소생술 교육이 요즘처럼 이렇게 활성화 되어 있지는 않았기 때문에 조금 알고 있는 사람은 많았지만 실제로 해 볼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익숙하게 할 수 있도록 요령을 좀 가르쳐 줘야 되겠다 생각하던 차에 오히려 잘 됐다 싶었다. 그 때만 해도 나는 소방서에서 구급대원 10년차로 한창 구급차를 타고 다니며 구급대원으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방서에서 교육용으로 쓰고 있는 CPR 실습용 마네킹도 2개 정도 빌리고 교육용 파워포인트도 작성해서 그날을 기다렸다. 실제로 현장에서도 CPR은 눈감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숙련이 되어 있었고 관공서나 학교등에 외부강의도 많이 나갔지만 막상 우리 딸이 다니는 학교에 가서 강의를 한다고 생각하니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옆에 있던 와이프가 나의 이런 마음을 알아챘는지 자기가 노트북으로 파워포인트 넘기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해서 얼떨결에 우리는 일일 부부 소방관 재능기부를 하게 되었다.
드디어 당일날, 학교 강당에 들어서는데 초롱초롱한 눈망울들 수백개가 전부 나를 -아니, 나와 아내와 우리 첫째를 번갈아가며-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몇 번이나 해봐서 이제는 거의 외울 지경이 된 교안이었지만 나는 마른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는 강의를 시작했다.
먼저 파워포인트로 심폐소생술에 대한 이론을 설명하고 나서 그 다음엔 실습용 마네킹을 활용해서 실습을 시켜볼 생각이었다. 그래서 심폐소생술 순서에 대해 막 설명하려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남학생 하나가 손을 번쩍 들더니 내게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심폐소생술 하다가 뽀뽀를 하면 어떻게 되나요?"
그 말을 듣고 강당에 모였던 3학년 학생들 전체가 깔깔대기 시작했다. 흐음~, 정말 초3다운 질문이로군, 난 순간 당황했다. 이대로 가면 아이들의 집중력은 흐트러 질 것이고 그렇다고 내가 조용히 하라고 야단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당황했지만 당황한 기색을 보일 순 없었다.
"여러분이 잘 아는 동화 백설공주에서는 왕자의 키스를 받고 공주가 깨어났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요, 그런 경우에 공주를 살리기 위해서는 일단 가슴을 누르기 전에 먼저 목에 걸린 사과를 꺼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이렇게 엄지와 검지로 살짝 입을 벌리고 입 안의 이물질을 꺼내야 해요, 자, 보세요, 이렇게요~"
난 그렇게 말하며 엄지와 검지 양손가락을 가위처럼 만들어서 마네킹의 입을 살짝 벌리고 이물질을 꺼내는 시늉을 했다. 이것은 CPR을 하기 전 예비동작으로 CPR순서에도 나와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네킹의 코와 턱을 살짝 잡고 입에다 두번, 숨을 불어넣었다. 아이들은 다시 조용해져 있었고 그 남학생의 질문이 오히려 나의 시범을 도와주는 결과를 가져온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나서 다시 마네킹의 가슴께로 가서 30회 흉부압박을 시행했다. 아이들은 내가 하는 심폐소생술 시범을 끝까지 쥐죽은 듯이 지켜보고 있었다. 시범이 끝나고 나서
"누가 먼저 해 볼까?"
하고 물으니 여기저기서 손을 드는 학생들이 보였다. 난 제일 먼저 아까 질문한 남학생을 불러냈다.
그 아이는 마네킹이 신기한지 이리저리 만져 보다가 아까 내가 시범을 보여준대로 심폐소생술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처음이다 보니 약간 서툰 면이 있었지만 내가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나중에 딸에게 들어보니 그 애는 꿈이 소방관이라서 항상 소방관이 하는 일을 궁금해했고 내가 온 그 날도 소방관 아저씨가 온다고 설레발을 치고 다녔다는 것이다. 처음 만나본 소방관 아저씨 눈에 띄고 싶었을까?, 뜬금없는 질문으로 3학년 전체 학생들과 소방관 아저씨의 이목을 끌었으니 녀석, 그날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듯하다.
그렇게 아내와 그 개구장이의 도움(?)으로 학부모 재능기부는 무사히 마칠 수가 있었고 우리 첫째도 그 날 학교에서 돌아오더니 친구들이 모두들 심폐소생술을 직접 해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고 이야기해서 자기도 으쓱했다고 말했다.(아빠 멋있었다는 말은 안해?~^^;;)
이제는 첫째와 둘째가 모두 고등학생과 중학생이 되는 나이인데다 요즘은 심폐소생술 교육장이 많이 생겨 서 그런지 학부모 재능기부 가는 일은 거의 없어졌지만 가끔씩 그 때 처음으로 아이의 학교에 일일교사로 갔던 일이 생각나곤 한다. 아빠가 어떤 노하우를 가지고 있어서 아이에게, 또 그 아이의 친구들에게 가르쳐 주는 일은 참 보람있고도 근사한 것 같다. 그걸 통해서 아이가 '아빠가 하는 일이 이런 거구나' 하고 알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 또 다른 한편으론 이제 두살배기 막내가 초등학교 들어가서 혹시나 재능기부 와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할까 가끔 걱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걱정은 접어놓고 앞으로도 계속 자기 관리를 열심히 하고 현장의 감각을 되살려서 그 때도 막내의 친구들로부터 멋진 소방관 아빠라는 얘기를 듣게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