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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방관아빠 무스 Dec 01. 2021

딸의 남자 친구

아빠로 살아간다는 것(14)

   오랜만에 가족들과 샤부샤부 집에 갔던 며칠 전 토요일이었다.(우리 두 딸과 와이프는 샤부샤부를 좋아한다. 특히나 찬바람 부는 요즘 같은 날씨엔 최애 음식이다, 셋째가 좋아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식사가 거의 끝나서 우리도 디저트를 가져오고 우리 옆 테이블에 있던 대가족(노부모님을 모셔온 형제들 가족으로 보였다, 아이들까지 한 열명쯤?)들도 떠나 주위가 조용해진 시간이었다.   


   "요새 나 좀 예뻐지지 않았어?"


   첫째가 뜬금없이 자기 미모 자랑을 하려나 했는데...


   "언니 요새 남친 생겼어?"


   둘째의 티키타카가 갑자기 치고 들어왔다.      


   '응!'


   쿨하게 인정하며 약간 부끄러운 듯 살짝 웃으며 머리를 쓸어 넘기는 우리 첫째... 그러고 보니 복숭아 빛으로 물든 첫째의 볼이 진짜로 좀 예뻐진 것 같기도 했다.


   "뭐라구?"


   일단 난 본능적으로 약간 오버액션을 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다음 말은 뭐라고 해야 할까? 내 머리에서 언어를 담당하는 전두엽 피질 부분이 흔들리고 있었다. 강력하게 '안돼'라고 해야 할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무슨 연애질이야!'하고 테이블을 내리쳐야 할지, -그렇게 되면 샤부샤부가 든 솥이 흔들리면서 국물이 튈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냥 '정말?'이라며 두 손을 들어 올리고 외국인처럼 놀라는 시늉을 해야 할지 머릿속의 여러 생각들이 컴퓨터 회로의 불빛 마냥 빠른 속도로 돌아가고 있었다.


   "언제부터?"


   내 머릿속의 언어중추는 수천번의 반짝임 끝에 이런 물음을 입 밖으로 내놓았다. 약간 화가 난 듯 목소리를 깔면서, 그렇다고 나무라는 투가 아닌, 자상한 아빠의 호기심 어린 목소리를 담아서였다.


   "몇 개월 됐어"


   '몇개월', '중3' '남친'등의 단어를 입력받은 내 머릿속 언어 회로는 또다시 빠른 속도로 깜빡거렸다. 그리고 내 입에서 나온 말은


   "그래도 중학생 때 연애는 너무 일러, 대학교 가서 해도 늦지 않으니 지금은 친구로 지내고..."


   였다. 하지만 첫째는 내 말꼬리를 자르고 치고 들어왔다.


   "그럼 헤어지라구?"


   뚱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모습이 십 년 이상 길러준 아빠보다 만난 지 몇 개월밖에 안 된 남친이 더 애틋한 모양이었다. 그리곤 둘째를 보고


   "넌 나중에 남친 생기더라도 아빠한테 절대 말하지 마라, 알았지?"


   하고 나를 째려보는 것이었다.


이렇게 천사 같은 녀석들이 언제 이렇게 커버렸을까?

 

   "아니, 그런 말이 아니구, 공부에 방해되니까, 지금은 연락만 하고 있다가 나중에 대학 가서 만나라고, 같은 대학에 입학해서 만나면 얼마나 좋아?"


   나의 대뇌 피질은 마음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남자 친구와 같은 대학에 진학하려면 너도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지?...'


   "아빠는 옛날 사람처럼... 요즘 초등학교 5학년만 되면 다 연애하는 거 몰라?, 이런 것도 미리 경험을 해놔야 나중에 잘 한다구!"


   '뭐라구?, 경험?, 나중에 잘 해?'


   내 머릿속의 언어 프로그램이 버그를 일으켰다. 이 녀석이 저런 단어들의 의미를 알고나 말하고 있는 것일까?, 뭐라고 대꾸해야 할 지 몰라 혼자서 얼굴이 달아오른 날 눈치챘는지 아내가 교통정리를 하고 나섰다.


   "자!, 자! 이제 그만!, 다 먹었으니 어서 나가자, 너 연애 얘기는 이따가 집에 가서 마저 하기로 하고..."


   난 그래도 테이블에서 일어서면서 첫째에게 마지막 비장의 히든카드를 날렸다.


   "잘해 봐~, 그래도 그거 알지? 첫사랑은 안 이뤄진다는 거~"


   하지만 돌아온 첫째의 대답은 날 다시 어이없게 만들었다.


   "첫사랑 아니거든요~"


   첫사랑이 아니라니, 그럼 벌써 한 번 이상 사랑을 해 봤다는 얘긴가?, 언제? 나도 모르게 어느 놈하고?, 머릿속의 언어 프로그램은 계속 버그를 일으켰지만 내 입에서는 아무 말도 튀어나오지 않았다.


   집에 가서 애들을 자기들 방에 재워놓고서 -셋째는 자는 걸 확인했지만 첫째와 둘째는 확인하지 못했다. 요즘은 확인불가다.- 난 와이프와 캔맥주를 한잔하면서 낮에 있었던 일들을 복기(?) 해 보았다.


   "당신 알고 있었어? 첫째가 남친 생긴 거?"


   "중학생 애들이 사귄다고 해 봐야 뭘 어쩌겠어요?, 카톡이나 주고받고 하는 거겠죠, 그리고 내년엔 고등학교 올라가니까 남녀공학에서 남고, 여고로 자연스럽게 멀어질 거예요, 당신 생각하는 것처럼 나쁜 쪽으로 흐를 애는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괜히 안된다고 하면 반항심에 더 안 좋아질 수 있어요."


   와이프는 캔을 슬쩍 부딪히면서 살짝 웃었다. 하기야 나도 중 3 때 교생 선생님으로 온 미술 선생님을 혼자서 짝사랑했던 일이 기억났다. 그때 미술 시간만 되면 어찌나 손에 땀이 나던지, 연필 데생 시간에 도화지를 얼룩지게 만들어서 본의 아니게 선생님을 당황시켰더랬다.(선생님, 죄송합니다~우뻑^^;;) 그런 것도 지나고 보면 내 기억 속에 좋은 추억으로 남았으니 첫째도 중3 시절의 남자 친구와 나중에 웃을 수 있는 좋은 추억을 만들고 있는 건지도...


한 때 유행하던 트릭아트 박물관에서 당시 초4, 초1인 딸들과 좋은 추억을~^^


  일단 첫째와 둘째가 사춘기라는 격랑의 파도를 스스로의 힘으로 무사히 뚫고 나오기를 기대하며...


  첫째와 둘째, 그리고 와이프를 믿고...


  난 모른 체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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