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오미크론 바이러스로 확진자가 처음으로 17만 명 이상으로 올라선 다음날, 이제 겨우 23개월인 우리 막둥이가 코로나 19에 감염됐다. 그날 아침, 아간 근무를 마치고 퇴근을 준비하고 있는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내도 직장에 다니기 때문에 내 야간근무 퇴근시간은 그녀의 출근시간이다. 웬만해선 전화가 오지 않을 시간인데 핸드폰에 찍힌 '여봉봉'이란 발신자 이름은 사태의 심각성을 예고해 주고 있었다.
"여보, 우리 막둥이 신속항원검사해봤는데 양성으로 나왔어, 빨리 와줘야겠어!"
"응?, 뭐라고!"
"어제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는데 같은 어린이집 친구가 확진이 됐다는 거야, 그래서 우리 막둥이도 일단 신속항원검사를 해보라고 해서 집에서 몇 번 해 봤는데 모두 음성이 나오더라구, 그래서 별일 아니겠거니 하고 있었는데 어제 저녁부터 열이 많이 나서 혹시나 하고 오늘 아침에 동네 이비인후과에 데리고 와서 다시 신속항원검사를 해 봤는데 여기서는 양성이 나오는 거야, 의사 선생님이 빨리 PCR 검사를 해보라고 해서 나는 애 데리고 선별 진료소 갈 테니까 당신도 퇴근하는 데로 그리로 오세요."
와이프의 음성은 흥분해서 그런지 빠르고 높았다. 하기야 며칠 전, 7개월짜리 유아가 코로나에 확진되어 재택치료를 받다가 상태가 안 좋아져 부모들은 119를 불렀고, 이송 중에 구급대원은 10개 병원에 연락을 했지만 근처에는 받아주는 병원이 없었고, 그래서 17km나 떨어진 타 시도의 병원으로 이송 중에 아기는 심정지를 일으켰고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DOA(도착 시 사망) 판정을 받은 사건이 있었던 것이다. 나도 그 사건이 뇌리를 스치면서 이거야말로 비상사태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내 머릿속에서 벌써 '삐용삐용'하는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경광등이 돌고 있었던 것이다.) 하기야 어린이집은 0세부터의 영유아들이 모여 있어 마스크 쓰기나 손 씻기 같은 방역활동도 잘 안될 것이고 아이들끼리 접촉은 많을 수밖에 없기에 코로나에 가장 취약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우리 막둥이가 우리 식구 중에서 코로나 확진 테이프를 가장 먼저 끊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퇴근을 하자마자 아내가 가 있는 선별 진료소로 차를 몰았다. PCR 검사를 하러 몇 번 와본 적이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길게 늘어서 있는 사람들의 줄이 코로나 환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날은 2월의 막바지답게 바람도 많이 불고 싸늘한 공기가 옷 속으로 파고드는 날이었다. 엄마와 함께 유모차 안에서 줄 서 있는 우리 막둥이가 얼마나 추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걸린 데다 찬바람까지 맞으면 상태가 더 심해질 것 같았다. 나는 차를 근처에 세우고 아이와 아내를 차에 있게 하고 내가 대신 줄을 서려했으나 이미 근처엔 차를 세울 만한 곳이 없었다. 안내하시는 분이 옆으로 가면 임시주차장이 있다고 해서 거기에 차를 몰고 가서 주차를 하고 다시 아내에게로 와서 막둥이와 함께 차로 가서 쉬겠냐고 물어봤지만 아내는 유모차를 밀고 다시 주차장으로 가느니 그냥 여기에 있겠다고 했다. 거리도 꽤 되는 데다약간 오르막이 있어 혼자서 유모차를 밀고 가기엔 힘들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 대신 나에게 자기가 급하게 오느라 병원에서 받아온 처방전으로 약을 짓지 못했으니 지금 가서 약을 지어오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도보로 약국을 찾아 걸어가기 시작했는데 한 30분을 걸어도 약국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순간, 차를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으나, 혹시 아내와 아이가 차가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계속 도보로 걷기로 했다. 겨우 약국 하나를 찾아서 안에 들어갔지만 약사는 내 처방전을 한번 슬쩍 보더니 자기네 약국에는 그 약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다른 약국을 찾아 걸었다. 두 번째 만난 약국에서 약을 다 짓고 아내에게 되돌아가고 있을 때 아내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혹시 모르니 애들과 우리 몫으로 감기약과 비타민 C를 사 오라는 것이었다. 아내 말대로 그것들을 사서 다시 선별 진료소로 가는데 또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집에서 좀 더 따뜻한 옷을 입고 올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 비상시국이란 게 이렇다. 평소에 잘 다니던 짜여진 길대로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비상시국은 항상 시행착오가 있는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퇴근하고 집에 가서 먼저 따뜻한 옷을 입고 차를 타고 아내에게 와서 처방전만 받아서 바로 차를 몰고 가서 약을 지어 가지고 와서 아내 대신 줄을 서고 그러면 아내는 내 차를 몰고 가서 주차장 안에서 아이와 함께 기다리다가 순서가 되면 아이에게 PCR 검사를 받게 하고 다 같이 차를 타고 집으로 오면 될 것이었다.(먼저 지도를 보고 전화를 해 봤다면 한 시간은 아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가 확진되었다는 생각 때문에 집사람도 나도 앞 뒤 재지 않고 설레발을 치다가 아이는 아이대로 춥고 시간은 시간대로 잡아먹는 불상사가 일어난 것이다.
코로나 환자도 17만 명 대로 늘었다. 전문가들의 예상에 따르면 3월 중순에 최대 27만 명까지 정점을 찍고 감소 추세로 갈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보다 하루에 약 10만 명이나 많은 확진자가 발생한다는 얘기인데 그렇게 되면 중증환자와 사망자도 증가할 것이다. 그리고 며칠 전 7세 유아처럼 재택치료를 하다가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길거리 혹은 구급차 안에서 죽어가는 환자도 늘어날 것이다. 왜냐하면 단군 이래로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 변이 바이러스 창궐이라는 이런 비상상황을 아직 제대로 한 번도 맞아보지 않았기 때문이다.(옛날에 비슷한 걸 맞았던 사람들은 이미 죽고 없다.) 그래서 막둥이 확진이라는 비상상황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멘붕이 와서 시행착오를 겪었던 우리 부부처럼 이나라는 또 한 번의 멘붕을 경험할 것이다, 아니, 이미 조금씩 경험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 멘붕을 재차, 삼차 경험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국민들 모두가, 아니 먼저, 관계부처 여러분과 의료 종사자분들이 의료 시스템과 보건행정 지원시스템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일단 먼저 코로나에 확진되면 어떻게 하고, 어디로 가고, 무엇을 먹고 하는 것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국민들에게 자세히 안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체계화된 시스템을 따라 병원과 관계당국이 확진자를 케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스템은 이렇게 만들어 놓았지만 실제로 시스템이 그렇게 굴러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요즘 그런 일들이 점점 더 많이 일어나고있다. 다 처음이라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더 많은 확진자가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 그래서 확진자가 정점에 이르기 전에 이 시스템들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잘 돌아가지 않는 것이 있으면 그 원인을 파악해서 잘 돌아가게끔 해야 하는 것이다. 시간이 없다. 이대로 정점을 맞으면 우리 사회는 또 한 번 큰 재앙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가게 될 것이다.
막둥이는 다음 날 PCR 검사 결과에서도 양성을 받아 최종 확진이 되었고 지금은 재택치료를 받고 있지만 다행히 집에서 잘 자고 잘 놀고 있다. 입맛이 없는지 밥을 잘 먹지 않고 자기 전에 칭얼거림이 심해지긴 했지만 아직은 이렇다 할 이상증세가 없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이대로 자가격리 기간 7일간이 지나고 PCR 검사에서도 음성이 나와 지긋지긋한 코로나로부터 해방되었으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우리 막둥이처럼 우리 대한민국도 전문가들의 예상과 같이 3월 중순의 27만 명에 이르는 정점을 잘 넘기고 다시 자유롭고 활기찬 대한민국으로 거듭나길 간절히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