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로 살아간다는 것(16)
며칠 전, 우리 둘째가 중학교를 배정받았다. 호그와트 마법학교에 들어간 해리포터가 마법의 모자를 쓰고 그리핀도르 기숙사를 배정받듯이 우리 둘째도 배정 인생(?)의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인생의 모든 과정을 '배정'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넣어 정리해 보면 중학교를 배정받고, 고등학교를 배정받고, 그 안에서 문과와 이과를 배정받고(요즘은 통합됐는지 모르겠다.), 다음으로 대학을...(이건 배정이라기 보단 자기의 노력으로 성취하는 것일까?), 군대를 배정...(우리 애는 여자니까 이건 배정받지 않을 듯...), 직장을 배정...(이것도 배정은 아닌 것 같다. 선택이다.), 마지막으로 배우자를 배정...(이건 배정이라기보단 운명에 가깝지 않을까?) 받게 된다. 이건 한 인생의 최소한의 배정만 언급한 것이지만 그 사이사이에도 수많은 선택과 배정이 놓여있다. 난 50년간의 배정 인생을 살아오면서 호그와트의 마법모자처럼 나의 적성과 특기를 알아서 딱 적당한 곳에 배정해 주는 모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배정이란 게, 인생의 갈림길에서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바를 나의 선택을 통해, 혹은 권한을 가진 누군가, 또는 운명이나 신으로 대별되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정에 따라 앞으로의 인생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옳고 만족스러운 배정을 받았으면 발걸음도 가볍게 그 길을 걸어가면 된다. 하지만 100% 만족스러운 배정은 없기에 배정을 받고 난 후에도 '과연 내가 나의 길을 선택해서 그 길을 잘 걸어가고 있을까?'를 계속 반문하게 된다. 난 내 젊은 시절, 내가 선택하고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이 과연 내 길인가?,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난 웃을 수 있을까를 반문하면서 수많은 불면의 밤을 이 노래와 함께 지새웠었다.
그래서 누군가는 한참을 걸어온 길을 선택의 시점까지 되돌아가 다시 출발하는 경우도 보게 된다. 하지만 우리 인생은 그렇게 길지 않기에 한번 선택한 길을 다시 되돌아가기는 너무 어렵다. 일단 자신이 선택한 길, 배정받은 길에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일단 우리 둘째는 배정받은 학교가 자기가 가고 싶어 했던 학교라고 좋아했다. 집에서 건널목 두 개만 건너면 되기 때문에 가까워서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친했던 친구랑 헤어져서 슬프지는 않아?"하고 물어봤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딱히 그런 친구 없어, 그리고 담에 또 만날 때가 있겠지"라는 쿨한 대답이었다. 그 대답을 들으니 내 초등학교 6학년 때가 생각났다.
나의 초등학교-우리 땐 국민학교였다.- 6학년 때를 떠올려 보면 참 바쁘게 지나갔던 것 같다. 그래도 초등학교에선 가장 어른? 이랍시고 나름 목에 힘을 주고 다녔고 운동장을 전세 내서 축구를 하고 야구를 했던 것 같다. 우리 학교 운동장 양 옆에 축구 골대가 있었는데 6학년 교실이 있는 건물 쪽 축구골대 부근이 우리 자리였다. 다른 말로 하면 다른 학년 애들이 그곳에서 놀면 쫓아내고 우리가 차지했다는 뜻이다. 운동장은 아이들이 뛰어노느라 온종일 뿌연 흙먼지를 휘날리고 있었는데 다른 학년들은 그 명당자리에서 감히 놀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하루 종일 놀다가 집으로 바로 가면 좋은데 결코 그러지 않았다. 나는 뭉쳐 다니던 삼총사가 있었는데 그중 한 애의 집이 돼지갈비집을 하고 있었다. 그 친구 집은 음식점에 딸린 가정집이었는데 낮에는 어른들이 음식점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가정집은 우리 차지였다. 게다가 그 녀석은 형이 둘이나 있어 웬만한 장난감은 다 구비하고 있었다. 우리는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다 지치면 그 집으로 가서 밥을 얻어먹고 한숨 잤다. -재수가 좋으면 돼지갈비를 얻어먹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일어나선 그때 유행하던 '부루마블'을 시작했다. 너무 오래 앉아있어서 다리에 쥐가 내리기 시작하면 바둑판과 바둑돌-그 친구 아버지의 것인 듯- 을 가지고 와서 '알까기'로 다시 승부를 가렸다. 보통 10승을 누가 먼저 하느냐로 결판을 냈는데 어느 날, 그 집에 있던 낡은 스케이트 보드 -아마도 그 친구 형의 것인 듯- 를 마루 밑에서 발견하곤 그것을 가지고 나가서 길거리에서 타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주택가 골목은 차가 그리 많이 다니지 않았고 차선도 그으져 있지 않아서 개구쟁이들의 놀이터였다. 우리는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아도 그걸 가지고 나가 길에서 무작정 타기 시작했다. TV에서 본 대로 멋지게 타고 싶었지만 평평한 길에서는 잘 굴러가지 않았다. 우린 좀 더 큰길로 나가 내리막을 찾았다. 하지만 약간 경사진 길은 없고 경사가 가파른 길만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엔 차가 쌩쌩 달리는 제대로 된 '도로'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 무슨 배짱이었는지 그 내리막 길에서 보드를 타기 시작했다. 차가 많이 다니는 도로로 나가기 전에 보드를 돌려세우면 된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는 갈비집 녀석이 나섰다. 그 녀석은 형에게서 스케이트 보드를 배웠는지 내리막 길을 멋지게 내려가서 도로로 접어들기 전에 보드를 돌려세웠다. 두 번째 녀석은 신나게 타고 도로까지 접어들었지만 다행히도 그때 마침 도로에 지나가는 차가 없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바로 나였다. 나는 가파른 아래쪽 도로를 보고 있노라니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앞에 두 녀석이 했기 때문에 안 할 수가 없었다. 나도 도로까지 무사히 타고 내려가서 차가 없는 도로를 멋지게 건너보고 싶었다.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스케이트 보드에 두 발을 실었다. 보드는 순식간에 내리막을 내려갔다. 난 넘어지진 않았지만, 그 순간 도로 옆에서 나오는 차를 보고 말았다. 계속 내려가다간 차 옆구리를 박을 것 같았다. 난 나도 모르게 보드에서 옆으로 미끄러졌다. 내 몸은 길 옆으로 미끄러져 나무 덤불 속으로 들어갔다. 보드는 계속 혼자 내려가 차 옆면을 '쾅'하고 들이받았다. 운전자가 차를 세우고 나와서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난 위에 있던 두 녀석을 보았다. 녀석들은 벌써 도망치고 없었다. 나도 일어나 도망치려 했는데 바지 옆면이 찢어져 있고 그 사이로 다리가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돌부리에 까이고 흙바닥에 쓸린 모양이었다. 아픔을 참고 일어나 도망쳤다. 운전자 아저씨에게 잡히면 끝장이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 아저씨에게 너무 미안하다. 그 때는 블랙박스나 CCTV도 없어 잡을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아저씨 죄송합니다.~ㅠㅠ)
다음날, 녀석들과 학교에서 만났다. 두 녀석은 날 보고 괜찮냐고 물었다. 난 바지를 내려서 엄마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찢겨진 바지는 몰래 버렸다.- 시퍼렇고 시뻘건 오른쪽 엉덩이와 허벅지의 상처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갈비집 아들 녀석에게 스케이트 보드는 어떻게 됐냐고 물었다.
"괜찮아, 우리 형은 그거 어딨는지도 몰라, 고등학생이라 바쁘거든..."
하고 말했다. 그때 나는 고등학생이 되면 그 재밌는 것도 못 탈 정도로 빠쁘다는 것을 알았다. 녀석은 그날 학교를 마치고 우리 둘을 자기 집으로 데려가 냉장고에 있던 돼지갈비를 꺼내서 구워주었다.
그게 내 기억 속의 6학년 때 우리 삼인방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 이후론 녀석도 웬일인지 우릴 자기 집에 잘 데려가지 않았고 우리도 그 집에 가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혹시나 그 스케이트 보드 주인과 마주치면 어떡할까 걱정도 했던 것 같다.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초등학교 6학년을 마치고 각기 중학교를 배정받았는데 난 산 중턱에 있는 중학교였고 갈비집 아들 녀석은 아랫동네에 명문으로 소문난 중학교였다. 그리고 나머지 한 녀석도 우리 동네에서 좀 먼, 중학교로 제각기 다른 중학교로 배정을 받게 되었다. 중학교를 배정받은 날, 녀석들과 함께 만났는지, 뭘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언젠간 다시 만날 테지'하면서 남자답게 쿨하게? 헤어졌던 것 같다. -어른이 돼서 다시 만나보니 그 갈비집 아들 녀석은 모 대학의 대학교수가 되어 있었고, 나머지 한 녀석은 무슨 무역회사의 사장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었다. 자식들,그때의 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걸까?
우리 둘째도 친구들과 다른 중학교에 간다고 슬퍼하지 않았다. 그저 집 가까운 학교에 간다고 좋아했을 뿐이다. 하기야 몇 년 동안의 코로나 시절을 거치면서 제대로 된 친구 한 명 사궜을지 의문이다. 학교를 마치고 하루 종일 운동장에서 놀고 친구 집에 놀러 가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만드는 것도 '우리 때'였으니까 가능했다고 생각하니 좀 서글퍼진다. 둘째는 학교를 마치면 학원에 가고 학원에서 집에 오면 자기 방에서 핸드폰만 만지고 있다. -물론 나 안 볼 때 공부는 하겠지?- 요즘은 운동장에서 누구랑 노는 것도, 누구 집으로 놀러 가는 것도 어려운 걸 떠나서 불가능한 게 사실이다. 그러니 혼자서 자기 방에서 핸드폰과 노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데... 나의 초등학교 6학년 그 시절이 너무나 그리워진다. 누구네 집에 놀러 가서 자기 집처럼 밥을 얻어먹고 저녁까지 놀던 그때가 너무나 그리워진다.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 동안 제대로 된 친구 하나 사귈 수 없었던 우리 둘째에게 너무나 미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