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5화

by 노이망



대부분의 접대비는 출처가 불분명했다. 나눠 끊는 것도 많았다. 나는 영업팀이 올리는 사내 공지를 참조해 어떻게든 끼워 맞춰 입력해야 했다. 그건 정말 고역이었다. 공지에 적힌 바이어는 한정적인데 비해 술집 영수증은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사장이 언제나 그 내역을 정확하게 말해주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그는 언젠가 있을지도 모를 세무조사를 위해 어떻게든 내가 잘 입력해 주기만을 바랐다. 잘 입력하는 걸 바라기보다 애초부터 잘 쓰면 되는 게 아닌가. 순진한 소리란 건 안다.


잠시 후, 김 과장이 올라왔다.


“왜 찾으신대?”


내가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젓자 김 과장은 빠르고 단호한 걸음으로 회장실에 들어갔다.


롯데리아 6천 원 / 박 과장 / 야식대

횟집 40만 원 / 사장 / C거래처 접대비

싸롱 78만 원 / 사장 /


영수증의 출처를 쥐어짜다가 박 과장에게 물었다.


“어제 쓴 78만 원짜리 싸롱 영수증은 뭘까요. 평소보다 금액도 적고, 나눠 끊은 것도 아니고. 어젠 약속도 없으셨는데, 혹시 아세요?”


“아, 그건... 사장님 친구인 이 사장님 알죠?”


“네. 사모님끼리도 친하신.”


“요즘 그 사장님하고 둘이 자주 어울리시는데요. 그게 그거예요.”


“으음.”


“이건 정말 비밀인데.”


목을 쭉 빼서 주변을 살핀 박 과장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이렇게 소곤거렸다.


"주변 모텔 수색해서 사장님 찾는 게 요즘 제 주 업무예요.”


“소름.”


박 과장은 최초의 비밀 발설자가 가지는 묘한 뿌듯함을 즐기는 듯 야릇하게 웃었다. 싸롱 영수증을 D거래처 접대비로 입력하고 나자 김 과장이 회장실에서 나왔다.


“오늘 회장님, 사장님께서 여직원들이랑 회식할 거라고 하시네. 그린 CC 근처 초록 한우 집 있지? 거기 가실 거래. 내가 예약할 테니까 유진 씨가 여직원들한테 얘기 좀 해줘. 6시 반까지 엘리베이터 앞에 모이라고 해.”


당일 통보 회식? 미쳤네. 매일 영수증으로만 보던 초록 한우 집은 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식당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식의 갑작스러운 회식으로 가는 건 절대 원하지 않았다. 식당을 예약 중인 김 과장의 거슬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휴대폰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넓은 사무실을 한 바퀴 돌면서 몇 안 되는 여직원들에게 회식 소식을 알렸다. 내 말을 들은 직원들은 하나같이 표정이 일그러졌고, 그중 절반은 나에게 ‘왜?’라고 수차례 반복해 물었다. 기분 잡친 건 나도 마찬가지인데, 그들에게 미안해해야 하는 건 내 몫이라 좀 슬펐다.




비서실에 돌아와 힘없이 앉았다. 입력하던 영수증을 한 데로 모아서 서랍에 넣었다. 오늘은 파업이다.


“김 과장님. 갑자기 웬 여직원 회식이래요? 이런 거 한 번도 한 적 없잖아요.”


“응. 그래서 하신다고 그러셔. 이 얘기는 비밀인데.”


오늘따라 비밀이 많네.


“회장님 곧 다른 회사 가셔.”


“네?”


박 과장도 놀란 표정으로 김 과장을 보았다.


“다른 회사 인수하셨어. 거기 회장님으로 가셔. 아래층에 홍 대리 알지, 회장님 아들. 걔랑 나. 경영지원본부장, 인사총무팀장, 이렇게 같이 가기로 이야기가 됐어.”


“뭐라고요?”


날 비서 자리에 앉히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보직 이동 약속으로 날 구슬려 이 자리에 앉히고야 만 그 인간들이, 막상 제 살길 찾아 떠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예상을 했음에도, 어느 정도 포기를 했었음에도, 과히 충격적이라 순간적으로 머리가 핑 돌았다. 잠시만. 진짜?


“놀랬지? 다른 직원들한테는 말하지 마. 회장님께서 조용히 가길 원하셔.”


미.친. 하.하.하.


“그래서 언제 가세요?”


“다른 직원들은 올해까지 여기에서 근무하고, 나랑 회장님은 내년 3, 4월쯤 가지 싶어.”


정적이 흘렀다.

회장실 방문이 열림과 동시에 사장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 5분 후 긴장된 마음으로 사장실에 들어갔다. 사장실은 담배연기로 자욱했고 폰게임 속 무언가가 팡팡 터지는 소리만 애처롭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사장님. 아까 말씀하신 골프 건이요.”


“괜찮아. 그냥 놔둬. 없으면 안 치지 뭐.”


아까와는 전혀 다른 유쾌한 사장의 목소리에 마음이 놓였다. 이 정도 감정기복은 별 일이 아니다. 그의 기분이 괜찮아졌다면 일단 된 거다.


“네. 알겠습니다. 내일 부산 출장 비행기는 몇 시로 예약할까요?”


사장은 휴대폰에서 눈을 떼고 창가를 한참 바라보다가 말했다.


“가는 건 오전 10시, 돌아오는 건 저녁 8시.”


“돌아오는 8시 비행기는 에어부산인데 괜찮으세요?”


“대한항공은 몇 시야?”


“부산에서 출발하는 건 매 시각 40분에 있습니다. 저녁 7시 40분으로 예약할까요?”


“오케이. 그 시간이 나한테 더 낫겠어.”


“네.”


웃기는 게, 사장은 입에 원가절감을 달고 다니는 사람이다. 사장이 어떤 식으로 원가절감을 하라고 지시하는지 몇 가지의 경우만을 말해보자면, 200여 명이 있는 본사의 복합기를 두 대로 줄였다. 탕비실에 구비해 두는 믹스커피를 비롯한 서너 가지의 음료는 손님용으로만 쓸 수 있었고, 직원들에게 무한 제공 된 복지는 탕비실 정수기 한 대가 전부였다. 그렇다고 직원들이 진짜 맹물만 마시며 일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만큼 사장이 직원들에게 쓰는 땡전 한 푼도 상당히 아까워했다. 또한, 그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직원에게 대한항공 금지령을 내렸다. 대한항공이 타 항공사보다 비싸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방금 보았듯, 사장은 대한항공만 탔다. 사장이 직원들의 허리를 조르는 만큼 사장의 술집 영수증은 나날이 늘어갔다. 직원에게 투자되는 십만 원을 줄여 본인의 술값으로 백만 원 이상을 더 쓰는 게 과연 진정한 원가 절감인 걸까. 나 또 순진한 소리 하는 거?




“유진 씨.”


그는 휴대폰을 내려두고 담배연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말했다.


“여직원 회식하는 거 김 과장한테 들었지?”


“네.”


“자네 술은 좀 해?”


“집안 대대로 술 해독 능력이 없어서 전혀 마시질 못합니다.”


사장이 담배연기를 내 앞으로 한가득 뿜어냈다.


“안타깝구먼. 알았어. 가봐.”




한 시간이 지났을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회장과 미팅이 약속되어 있던 자회사 배 사장과 두 명의 팀장이 시끌벅적하게 들어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영업용 미소로 인사를 했다.


“배 사장님. 안녕하세요. 일찍 오셨네요.”


“유진 씨. 오늘도 참 예쁘네. 우리 유진 씨는 어떻게 갈수록 예뻐지지?”


영감탱이 오늘도 지랄이다, 생각하며 접견실로 안내 하기 위해 비서실 앞으로 나가자 배 사장이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이렇게 덧붙였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한번 꼬옥 안아보면 소원이 없겠어. 허허.”


나와 함께 인사하던 김 과장이 허둥지둥 비서실 앞으로 달려 나왔다.


“아휴. 사장님. 그런 말씀은 좀.”


“딸 같아서 그런 건데. 허허.”


“아이고. 그래도 안 돼요. 유진 씨. 커피 준비해 줘. 내가 회장님께 말씀드릴게.”


김 과장이 직접 배 사장 일행을 접견실로 안내하는 동안, 나는 탕비실에서 잠깐동안 부들부들 떨었다.

몇 번의 심호흡 후, 찻잔 네 개를 꺼내어 믹스커피 세 잔을 평범하게 타고, 마지막 한 잔에는 믹스커피 세 봉지를 한꺼번에 쏟아부었다. 저어도저어도 잘 녹지 않는 가루들을 우아하게 젓고 있으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맛있게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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