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

6화

by 노이망



여섯 시 반에 엘리베이터 앞에 모인 직원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개인 차로 이동했다. 나는 동기의 차를 탔다. 우리는 식당까지 가는 길 내내 회장과 그 똘마니들의 도주 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치사하다느니, 무책임하다느니, 콱 코가 깨졌으면 좋겠다느니.


식당 앞마당에 주차를 하고 회사 이름으로 예약되어 있는 어느 방에 들어가니 도착한 사람은 나와 동기뿐이었다. 급격히 기분이 좋아진 우리는 가로로 길게 놓여있는 테이블 중 제일 끝자리에 서로 마주 보고 앉았다. 직원들이 오는 순서대로 끝자리부터 동이 나기 시작했고, 마침내 가운데 테이블을 중심으로 몇 자리가 남지 않았을 때 뒤늦게 도착한 직원들은 아예 앉기를 포기하고 멀뚱히 서 있었다. 곧 회장과 사장이 수행비서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왔고 그들은 가운데 테이블에 서로 마주 보고 앉았다.


“왜들 그러고 서 있어? 얼른 앉아.”


사장이 사람 좋은 목소리로 직원들에게 말하자 반대편 끝에 앉아 있던 마 대리가 큰 소리로 떽떽거리며 내게 말했다.


“비서는 사장님 옆에 앉아야지. 왜 끝에 앉아있어? 얼른 가!”


나쁜 년.

사장이 호탕하게 웃으며 나에게 손짓했다.


“유진 씨. 이리 와.”


가방을 주섬주섬 집어 들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마냥 슬픈 마음으로 사장 옆으로 가서 앉았다.


“마 대리도 이리 와. 자네도 비서였잖아. 이리 와서 회장님 옆에 앉아.”


“아! 저는 끝 자리 앉아도 괜찮아요!”


“뭐가 괜찮아. 토 달지 말고 와. 이 사람아.”


밉상. 쌤통이다. 그러게 자기가 싫은 건 남에게도 시키지 말았어야지.


자리가 정돈되자 회장과 사장은 본인들이 다녔었던 대기업의 술 문화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자네, 양말 좀 벗어봐.”


사장이 내게 말했다.


“스타킹이에요.”


내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눈으로 확인한 사장은 마 대리에게 양말을 요구했다.


“안 돼요!”


“안되긴 뭐가 안돼. 벗어, 얼른.”


“냄새날지도 몰라요.”


마 대리가 계속해서 본인의 양말을 사수하자 회장이 짜증스럽게 말했다.


“양말 좋은 거로 하나 사줄게. 그냥 벗지.”


“저 양말 많은데...”


마 대리가 마지못해 양말 한 짝을 벗었다. 사장은 마 대리의 발 모양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구부렁한 양말의 입구를 벌려 각종 음식물을 집어넣었다. 빵빵해진 양말을 술잔에 끼워놓고 마치 한약을 달이듯이 소주를 부어 정성스럽게 짜냈다. 우웩. 사장이 회장에게 달인 술잔을 건네주자 회장은 소매를 걷고는 축축한 양말 주머니를 꺼내어 두 손으로 마저 꼭꼭 짰다. 그리고 그것을 마 대리에게 건넸다.


“한 모금 마시고 옆 사람한테 건네. 맛있다고 다 마시면 안 된다.”


마 대리는 망설이다가 술을 할짝거렸다.


“제대로 마셔야지. 장난치는 거야? 마 대리 술 못해?”


회장의 핀잔에 마 대리는 거의 울기 직전의 표정이 되었다. 마 대리에서부터 시작된 잔은 여러 직원을 구역질하게 만든 후 어느새 맞은편에 앉아있던 나에게까지 왔다. 잔을 든 두 손을 달달 떨며 사장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술을 못해서 조금만 마시겠습니다.”


“입만 대고 나 줘. 못 마시는 사람은 억지로 마시면 안 돼. 회장님. 유진 씨는 가족 대대로 술을 못하는 체질이랍니다. 하하.”


그 말을 듣는 회장의 표정이 썩 좋지 못했다. 민망한 마음으로 입만 갖다 대고 사장에게 술잔을 넘겼다.

못된 사람이 한번 잘해주면 큰 감격이 된다는 게 맞는 말이긴 한가 보다. 내가 지금 그와 비슷한 감동을 받았으니까. 게다가 회식 자리에서 술 못 마신다는 나의 말을 군말 없이 포용해 준 상사 또한 사장이 처음이었기에 그를 향한 미움이 가득했던 나는 잠시동안 당황했다.




가식적인 웃음소리와 의미 없는 대화가 오갔다. 취기가 오른 사장이 고기만 냅다 집어 먹고 있는 내게 말을 걸었다.


“자네, 남자친구는 있어?”


“네.”


“그래? 얼마나 됐어?”


“4년 됐어요.”


“오래됐네? 직장인?”


“네.”


“남자는 말이야.”


어떤 말이 나올지 뻔했다. 여기저기서 귀가 따갑도록 들었으니까. 남자는 얼마 정도 벌어야 한다느니. 집안은 어째야 한다느니. 직장은 어디 이상이어야 한다느니. 나는 이미 들었던 수많은 이야기와 비슷할 사장의 말을 예상하며 잠자코 있었다.


“남자는 성실해야 해. 아니, 성실하기만 하면 돼. 꿈이 있고, 목표가 있고, 성실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 믿어도 돼. 자네 남자친구 성실해? 오래 사귀었으니 알 거 아니야.”


“네. 착하고 성실해요.”


“그래. 그럼 됐어. 성실한 사람이 성공도 할 수 있는 거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사장의 말속에 나처럼 이라는 단어가 생략되었다는 걸 바로 알았다. 대기업에서 대리로 퇴사하여 받은 퇴직금으로 곧바로 창업 후 승승장구한 자기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한 말이었을테니. 그러나 따뜻한 말도 건넬 줄 아는 사람인지는 전혀 몰랐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맞는지 혼란스러웠다. 어떤 모습이 진짜 사장의 본성이고 또 본심인지 헷갈렸다. 그래도 사장이 오늘 이 시간처럼만 내게 잘 대해준다면 그에게 아주 작은 존경심 정도는 가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알고보면 고도의 자기 자랑일지도? 아니면 만취라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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