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

3화

by 노이망



사장실에 들어가 결재서류들로 어지럽혀져 있는 책상 어느 귀퉁이에 커피잔과 재떨이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의자를 뒤로 한껏 젖혀 반쯤 누운 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아직도 날렵한 혀로 입안 탐험을 하고 계시는 사장을 보니 왜 들어온 거냐고, 그래서 다시 언제 나갈 거냐고 따져 묻고 싶은 마음이 치밀어 오른다.


“유진 씨.”


“네, 사장님.”


“내일모레, 토요일 말이야. 그린 CC 8시쯤에 한 팀 가능해?”


“예약해 둔 게 하나 있긴 한데 회장님께서 쓰신다고 말씀하셨어요.”


“하나 더 잡아봐.”


또 시작인 것인가.


업무 중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스트레스받는 두 가지를 꼽으라면 첫째는 골프부킹, 둘째는 내가 이 회사의 5분 대기조라는 것이다. 비서란 자고로 회장과 사장에게 365일 24시간 5분 대기조 아니겠는가? 그런데 나는 회장과 사장뿐만 아니라 그들의 수행비서 두 명을 포함한 회사 전 직원 그리고 타 회사 임원들의 연락까지 수시로 받아내야 하는 비서다. 그래서 내 휴대폰은 언제 어디서나 울리고, 무조건 받아야 하고, 누구의 어떠한 요청이든지 즉시 응해야 한다. 젊은 직원들은 덜하지만, 나이 50이 넘어가는 임직원들은 예외 없이 주말이고, 새벽이고, 아침이고, 밤이고 일의 중요도에 상관없이 내게 문자를 하고 전화를 해댄다. 그리고 그 연락들의 대부분은 골프에 관한 것이다.


골프 좀 즐긴다고 하는 임원들, 얼마나 나를 못살게 구는지. 4년 차에 접어든 내 비서 인생의 80%를 골프부킹에 하얗게 불태웠다고 해도 전혀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문자로 보내 준 골프 시간 다시 묻기부터 시작해서 변경 안 되는 골프 시간 변경 되게 하기, 지들이 챙기지 않은 회원권 카드 가져오라고 심부름시키기, 심지어는 없는 골프 시간 만들어내기 등 불편하고 불가능한 일 처리를 너무 쉽게 요구하곤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중 절반 이상은 업무 외 시간에 연락이 온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고 규칙이 있기 마련이다. 골프부킹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람이 임원 이상이 되면 순서라든지, 기준이라든지, 규칙 같은 건 안중에도 없어지게 되는 모양이다.


우리 회사는 그린 CC, 블루 CC, 골드 CC의 회원권을 소유하고 있다. 예약은 사용하고자 하는 날짜로부터 2주 전에 각 골프장의 홈페이지를 통해 할 수 있으나, 주말 황금시간대 예약을 일반인이 성공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도 같아서 골프회원권거래소의 최 사장에게 업무를 맡기고 있다.


회원권마다 사용가능한 횟수가 정해져 있지만, 소위 융통성이라는 이름으로 블루 CC 주말 예약만큼은 최 사장으로부터 원하는 만큼 아주 많이 제공받고 있다. 그 대신 우리는 최 사장이 우리 회원권으로 평일 부킹 장사 하는 것을 눈감아 준다. 이 사실은 회장과 사장도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로 내가 비서가 되기 전부터 암묵적으로 지속해 온 회사의 관행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 관행 때문에 난처해지는 사람은 언제나 실무자다. 그러니까 바로 나.



사장의 갑작스러운 예약 요구에 그동안 수도 없이 반복해서 말했던 골프장의 규칙을 다시 조심스럽게 상기시켰다.


“늘 말씀드렸던 것처럼 예약은 2주 전에 미리 말씀해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린 CC는 하루에 한 팀만 사용가능해서 추가 예약은 불가능합니다. 혹시 블루 CC는 어떠신가요? 블루 CC는 무조건 가능합니다.”


“거긴 너무 비싸. 그럼 골드 CC는?”


골드 CC는 다른 골프장보다 두 배 정도 저렴했기 때문에 주로 임원들이 접대용으로 사용하곤 했다. 물론 사장의 지시하에.


“조 전무가 접대로 쓴다고 했습니다.”


“뭔 소리야.”


뭔 소리긴. 당신이 지시한 대로 임원이 접대용으로 쓴다는 소리지. 사장이 전화기를 들고 조 전무의 내선번호를 눌렀다.


“아, 조 전무님. 납니다. 이번 주 토요일에 골드 CC 쓰신다고요. 혹시 누구랑 치십니까?”


사장보다 열 살은 더 먹은 조 전무의 긴장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어렴풋이 들렸다.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사장은 수화기를 내려놓고 인상을 쓰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유진 씨. 내가 그렇게 골프를 자주 쳐? 말해봐.”


“아닙니다.”


“나는 평소에 골프를 잘 치지도 않는데, 한번 쓰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이 다 갖다 써서 정작 나는 쓰질 못하네? 맞아, 아니야.”


“맞습니다.”


“앞으로 임원들 골프장 사용하는 거 나한테 다 보고하라고 해. 유진 씨는 올해 골프장 사용한 리스트 작성해서 가져와.”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사장님. 필요하신 골프 시간은 미리 말씀을 해주셔야 합니다.”


“아니, 이 사람아. 최 사장한테 전화해서 무조건 잡으라고 하란 말이야. 그 사람이 우리 회원권 가지고 장사하는 거 내가 몰라?”


“최 사장과 통화하겠습니다.”


“무조건 잡으라고 해. 아니면 골드 CC에 전화를 하란 말이야. 회원권을 내가 얼마에 샀는데, 어? 쓰고 싶을 때 못 쓰는 게 말이 돼? 유진 씨는 지금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압니다. 죄송합니다.”


“안다는 놈이 대답을 왜 그렇게 하지? 내가 뭘 지시하면 그냥 해내란 말이야. 그게 비서인 네가 가져야 할 능력 아니야?”


오늘도 기가 눌린 채 사장실을 나왔다. 아니 기어 나왔다고 해야 하나.


그래. 본인이 사장인데 자기가 원할 때 뭔가를 쓸 수 없으면 짜증이 나기도 하겠지. 그런데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아무리 보고를 받아도 쓰고 싶을 때 쓸 수 없을 거라는 반박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런 막무가내 같은 지시를 열 번 받으면 기적적으로 일이 잘 풀리는 경우가 한 번 정도는 있기도 했다. 사장은 그 한 번의 경우만 당연하게 여겼고, 그것만 기대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나는 늘 능력없는 비서였다. 도대체 안 되는 걸 어떻게 되게 하느냔 말이다. 밑도 끝도 없이 무조건 해내라고만 하니 이런 지시가 반복될 때마다 나는 답답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또한, 그는 “내가 지시했다고 말하란 말이야!”라는 말을 자주 했는데, 말할 것도 없이 사장의 이름 따위는 어디에서도 먹히지 않았다. 그는 본인의 사회적 위치를 언제나 과대평가 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내 몫이었기에 나는 늘 괴로웠다.


당신 그런 사람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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