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새끼는 어릴 때부터 독했어. 아빠는 그렇게 간략하게 막내 작은아버지를 평가했다.
그 새끼는 독종이야, 독종. 아빠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나랑은 진짜 안 맞아.
어릴 적부터 막내 작은아버지는 무엇 하나 허투루 넘기는 법이 없었다. 작은 실수 하나도 융통성 있게 용서하질 못했다.
그는 외국에 한 번도 나간 적이 없으나 4개 국어를 했다. 외국인 클라이언트와 비즈니스 회화가 되는 정도이니 능통하다고 볼 수 있겠다. 대학생 시절 틈만 나면 외국인들이 많이 모이는 거리에 나가 무작정 친구들을 사귀며 회화실력을 키웠다고 한다. 지금이야 이태원만 가도 외국인들이 넘쳐나는 시대지만, 그 시절은 사뭇 다른 이야기이다. 보통 용기와 결심으로는 다가설 수 없는 일이었다. 입사 후에도 자기 계발과 외국어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은 탓에 동기들 중 가장 먼저 승진에 승진을 거듭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앉히고 곧잘 연설을 펼쳤다. 지금부터 너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해내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살면 나중에 빌어먹기 딱 좋다. 네 커리어 패스를 항상 정해두고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방법을 그리면서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충분히 생각 없이 살고 있던 나는 당시 9살이었다. 알아듣지도 못할 말로 내게 진로를 정해야 한다고 잔뜩 설교를 하고 간 그는 매 명절 때마다 나를 앉혀놓고 괴롭혔다. 회사를 다닐 때, 문득 걸려온 그의 전화에 아파서 쉬고 있다고 하자 어떻게 회사원이 아플 수 있냐며 아픔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일을 열심히 해야지! 라고 다그쳤다. 난 그날 그가 다니던 회사 주식 보유량을 전부 처분했다. 저런 놈이 상사로 있으면 회사가 퍽이나 잘 굴러가겠다, 라는 생각으로.
독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했던가. 결국 막내 작은아버지는 형제들 중에서 가장 성공했다. 말단사원부터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간 그는 어느덧 대기업 계열사의 대표 자리를 맡게 되었다. 더불어 내가 처분한 그 회사 주식은 꾸준히 우상향했고, 나는 독한 상사가 끊임없이 직원들을 굴려야만 회사가 잘 굴러간다는 아픈 사실을 뼈저리게 통감했다.
- 어머, 내가 또 괜한 참견을 했나 봐.
넷째 작은어머니는 살짝 눈웃음을 치며 꼭 쥐었던 내 손을 놓아주었다. 꽉 막혔던 가슴이 점점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 저 많은 친척들이 내게 결혼 이야기를 적어도 한 번씩은 더 물어볼 텐데, 그때마다 이렇게 반응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왜 세상 사람들은 남의 연애, 결혼 이야기를 빼면 할 말이 없는 것인지. 왜 결혼이라는 제도를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전혀 예상하고 있지 않은지. 결혼 여부에 대해 묻지 않는 것을 헌법으로 정해놓아야 한다, 는 쓸데없는 생각까지 미칠 때 우르르 조문객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막내 작은아버지의 회사에서 버스를 대절한 사람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막내 작은아버지는 삶의 목표를 언제나 확고히 했다. 3년 후, 5년 후, 10년 후, 20년 후 등등. 물론 대부분의 목표는 회사와 관련된 것들이었고 가정의 화목이나 가족들의 안녕에 대한 목표는 당연히 없었다.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당신은 수많은 노력을 했고 물론 그 노력에는 가족의 희생이 불가피하게 포함되어 있었다.
결혼한 후에도 크게 가정을 등한시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매일 저녁 식사를 함께할 정도의 다정한 아버지도 되지 못했다. 성장 시기에 아버지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자식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막내 작은아버지와 멀어져 갔고, 연상의 아내는 큰 일을 하는 남편이 최대한 가정에서 신경 쓰는 일이 없도록 하였다.
가족들과의 만남보다 거래처와의 골프 약속이 더 편해질 무렵에는 집안에서 가족들을 만나도 다녀오셨어요, 오냐 정도의 인사 외엔 도통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알아서 잘 자랐겠거니, 아내가 도맡아서 잘 키웠겠거니 하고 넘어가는 정도였지 나의 자식이 반에서 어떤 성향의 친구를 사귀고 어떤 스타일의 옷을 좋아하고 어떤 음식을 잘 먹는지 등등 세부적인 것들은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가끔 자식들의 나이조차 가늠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 날 일은 마치 꿈의 한 순간과도 같았다.
그 날은 중요한 프로젝트 발표를 앞두고 팀 전체가 2주 동안 야근을 반복하며 매달려왔던 결과가 빛을 발하는 날이었다. 프로젝트는 성공적이었고, 본부장의 격려와 칭찬과 앞으로의 사업계획에 박차를 가할 부푼 기대와 희망만이 팀을 감싸고 있었다. 성취감에 짜릿함을 느끼며 당시 팀장이었던 막내 작은아버지는 오랜 시간 애써온 팀원들과 회식을 하려던 참이었다. 아내에게서 여러 차례 부재중 통화 목록이 찍혀있던 핸드폰 화면을 본 순간부터는 모든 장면이 슬로비디오처럼 뇌리에 박혀 지워지지 않았다.
유독 자신의 일을 알아서 다 해내던 큰 딸이었다. 어릴 적부터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손도 많이 가지 않았다. 속 한번 썩인 적이 없었다.
물론 가정의 일에 적극적으로 관여해 본 적 없는 막내 작은아버지의 입장에서 말이다.
유서도 없었다. 이유도 없었다. 원인도 없었다. 성적도 언제나 상위권이었고, 교우관계는 원만했다. 평소에 갖고 싶은 것이나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한 적도 없었다. 그나마 하고 싶어 했던 것이 무엇인지, 갖고 싶어 했던 것이 무엇인지 조차 그는 알지 못했지만 만약 있다고 해도 자신이 그 정도 해줄 능력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뉴스에서 항상 문제라고 떠들어대는 학교폭력의 흔적도 없었다. 그녀의 핸드폰 기록은 깨끗했고, 평범했다.
인근의 모든 CCTV를 조사했으나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혼자서 제 발로 강행했다.
큰 딸은 거주하던 아파트 근처 다른 단지의 15층에서 스스로 몸을 던졌다.
작은아버지는 그래도 자신의 딸이 아무런 원인 없이 그런 짓을 벌일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주위를 철저하게 조사하고, 주변인들을 조지고, 친구들을 한 명 한 명 만나고 나서 작은아버지의 분노는 작은어머니를 향했다. 당신은 집에서 대체 한 게 뭐야? 내가 바깥일을 할 동안 당신은 집에서 애한테 신경을 안 쓰고 대체 뭘 했어? 자식을 키우는 것에 있어 누구 한 명의 책임이 기울어지는 것은 터무니 없는 일이건만 작은아버지는 아무에게라도 이 사태의 책임을 전가하고 싶었다. 그들을 감싸고 있던 부부라는 이름도 개박살이 났다. 오랜 세월 전업주부로만 살아온 작은어머니는 할 줄 아는 일이 없어 자립이 불가해 쉽사리 이혼하지 못했고 쇼윈도 부부로 전락했다.
남은 자식은 딸 하나 아들 하나였다. 이제 세상에 내 자식이라고는 너희밖에 없는데, 그들은 누나의 죽음을 오로지 막내 작은아버지에게로 돌렸다. 가정에 지나치게 소홀해서, 자식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더 이상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아서, 큰 딸이 할 수 있는 선택이 그것밖에 없었다고 했다.
막내 작은아버지는 정말로 어이가 없었다. 왜 자신이 그토록 열심히 살아온 대가가 이런 식으로 돌아오는지.
그럴 때마다 그는 외치고 싶었다. 너희가 거주하는 그 넓은 집과 배가 채 고프기도 전에 먹는 따뜻한 음식들,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인데 나 이거 배우고 싶어, 라고 한 마디만 하면 과외며 학원이며 척척 갖다 대주는 나의 능력이. 너희가 항상 무의식적으로 누리는 그 모든 것들이 바로 내가 벌어 온 것으로 혜택 받고 있는 것이라고.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기 위하여 아주 어릴 적부터 삶의 목표를 정하고, 젊은 날부터 지금까지 항상 쉬지 않고 일해온 것이라고.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대화가 단절된 그들은 서로의 입장 차를 물론 이해하지 못했다. 천륜이라는 단어로 그들을 엮기에는 이미 시간이 한참 늦어버린 뒤였다.
그들은 이내 막내 작은아버지의 얼굴조차 보고 싶어 하지 않았고, 아내는 항상 이들의 편이었다. 교육을 핑계로 외국으로 나가버린 자식들은 그렇게 막내 작은아버지와 연락을 끊어버렸다.
그에게는 정말로 회사밖에 남지 않았다.
어차피 그의 삶의 목표는 온통 회사였으니 그로썬 크게 잘못된 일도 아니었다. 그는 그렇게 하던 대로 다시 업무에 임했고, 시간이 많이 흐르면서 곧 모든 것이 무덤덤해졌다. 가끔 직원들이 워커홀릭이라고 하는 말이 들으며 씁쓸하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물론 그 누구도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 9편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