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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na Mar 22. 2021

김말순 여사의 장례식 -10-

루시퍼 가라사대

조문객들이 단체로 들이닥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막내 작은아버지 회사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원을 나왔으나 정신없는 건 매한가지였다. 사람들을 도와 장례음식들을 서빙하고, 아는 조문객이 오면 맞은 편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다 먹은 자리를 치우고, 신발을 정리하는 등등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어느덧 늦은 밤이었다. 우르르 몰려왔던 조문객들은 다같이 대절해 온 버스를 타고 사라졌고, 순식간에 빈 자리들이 덩그러니 남아 허전함을 더했다. 막내 작은아버지쪽을 빼면 거의 조문객이 없었다. 사회 부적응자들.


자리를 슬슬 정리하고 할아버지를 큰 집에 모셔다 드린 후 식구들이 다 같이 모여서 영양가 없는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저 그런 근황들, 나보다 타인이 얼마나 더 잘 먹고 잘 살고 있는지에 대한 원초적인 의문들. 근황을 나눈다기 보다는 서로 자신에 대해 자랑을 하기 바빴다. 자신의 남편과 아내와 자식이 너보다 더 잘 먹고 잘 산다는 이야기들을 그들은 시덥잖은 소리들로 풀어내기 바빴다.


 조문객들의 발걸음이 한결 뜸해진 밤 10시 반, 멀리서 찾아온 먼 친척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몇몇을 제외하고 우리는 함을 열어 봉투와 금액을 세기 시작했다.

봉투의 대부분은 막내 작은아버지의 몫이었다. 셈이 서투른 사람들끼리 돈을 세다보니 몇 번을 세어봐도 틀렸다. 보다 못한 나는 현금 계수기를 빌려왔다.

촤르륵, 돈이 저절로 세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막연하게 저 모든 돈이 나의 것이었으면, 하는 바람 또한 들었다. 약 5천만원 정도의 돈이 모였다.

하지만 돈을 아무리 세어 보아도 봉투에 적힌 것과 실물은 몇십만원 정도 차이가 났다. 원래 장례식 때는 이렇게 돈이 차이가 나는 것인가?


- 됐어, 맞지 않은 금액은 우리 몫에서 제외할게.

막내 작은아버지는 쿨하게 말했다. 역시 가진 자가 최고인 사회인건가. 꼰대라고 욕할 땐 언제고 그가 오늘따라 멋있어 보였다.


- 뭐, 우리 몫?

큰아버지가 미간을 찡그리고 물었다. 순간 주위가 고요해졌다. 원래 장례식 때는 모인 돈으로 장례 비용을 지불한 뒤 남은 금액을 가족들끼리 똑같이 분배하는 게 원칙이긴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경우일 뿐.

이렇게 한 가족에게 대부분의 돈이 몰렸을 때는 경우가 많이 다르다. 넷째 작은어머니의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렸다. 폭풍 전야처럼 공기의 흐름이 터질 듯이 팽팽해졌다. 


- 막내 쪽이 양보를 어느 정도 해야 하지 않겠어?

- 아니요, 저희 솔직히 이 돈 욕심 나요. 아시잖아요, 저희 아직 대출 남아있다는 거.


막내 작은어머니가 재빠르게 나섰다. 그녀는 평소와 달리 격앙되어 있었다. 이런 사태를 예상이라도 한 듯 빠른 목소리로 다다다 쏟아냈다.


- 저희가 잘 사는것 처럼 보여도 다 겉에서 보기에나 잘 살아보이지, 실속 따져 보면 아무것도 없어요. 아시죠, 민아 아빠 회사에서 사고쳐서 5억 빚진 거. 그 빚 갚느라고 저희 고생 많이 했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직도 다 갚지 못했어요. 이 돈으로 다 갚지도 못할 만큼 남았지만 그래도 저희가 그동안 부조한 것들도 많고, 욕심 나는게 사실이예요.


쉽게 말해 내 앞으로 들어온 돈 건드릴 생각 하지 말란 뜻이었다.

아빠가 언젠가 막내 네는 집이 다섯 채라고 했던 게 생각났다. 보대출도 아니고 회사에서 사고쳐서 빚졌다는 5억은 대체 무슨 소리인가. 보통 사고를 쳐도 회사에서 막아주지 않나?

기회가 되면 꼭 아빠에게 물어봐야 겠다는 다짐을 하며 조용히 분위기만 살폈다. 큰아버지는 꿋꿋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 그래도, 경우라는 게 있는데. 이건 좀 아니지 않아?

- 이번 한 번만 이해해 주세요, 아주버님. 저희도 먹고 살기가 녹록치 않아서 그래요.

- 그럼 이렇게 하는게 어때요?


새로 끼어든 넷째 작은어머니의 등장에 모두가 귀를 쫑긋 세웠다.


- 막내네는 내일까지 생각해보는 걸로 하고, 일단 막내네의 결정에 최대한 따르는 걸로 해요. 어쨌든 막내네가 가장 지분이 크긴 하잖아요.


더 이상 자리를 지키고 있기가 뻘쭘해진 나는 슬쩍 빠져나왔다. 나 따위가 낄 자리도 아니고, 내가 챙길 내 몫 또한 없었다. 꼭 이런 자리에서까지 서로의 계산적인 면모를 봐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렇게까지 민낯을 보여줄 필요가 있나 싶고. 돈 한푼이 아쉬운 상황이니 그러겠지만 말이다. 곱씹을수록 씁쓸해졌다.


이미 늦은 밤이라 로비도 다 불이 꺼져 있었다. 밖은 춥고 마땅히 앉아서 쉴 곳도 없어서 주차장으로 향하던 찰나, 어둠 속에서 수상한 그림자가 보였다. 이 시간에 주차장에 있을 만한 사람이 없는데. 밤 늦게 조문객이라도 왔나?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수상한 현금 뭉치를 잔뜩 쥔 정호 오빠와 눈이 딱 마주쳤다. 내가 현금뭉치를 바라보자 오빠는 티나게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 아, 아니, 이건 그런게 아니고. 이건 원래 내가 가져온 돈인데, 그게....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다. 오빠가 그렇게 당황하며 먼저 주절대지 않았다면 신경쓰지 않았을 텐데,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오빠는 너무 티가 나게 당황해 하며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았다. 진땀을 빼는 오빠의 모습과 아까 장례식장에서의 오빠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다같이 모여서 돈을 셀 때 정호 오빠는 가장 열심히 구석에서 돈을 세었다. 각자 센 돈을 합치고 현금 계수기를 가져오고 계산 착오가 생기고 등등 주한 일들이 겹치며 개개인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할머니 부조금을 빼돌리는 도둑이 있을 거란 사실은. 그 도둑이 바로 이씨 집안의 장손이라는 사실도.


오빠는 내가 말이 없자 숨을 후 내쉬더니 머리를 벅벅 긁었다.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에게 이빨을 들이밀듯 오빠는 갑자기 차갑게 돌변했다.


-그래, 뭐 누구한테 말하기라도 하려고? 내가 돈 좀 빼돌렸다 이렇게? 작은 아버지한테 이르기라도 할거야? 야, 나도 하루하루 너무 힘들어서 그랬다. 응? 어차피 이거 다 나눠 가질 거 아냐. 할머니 할아버지 돌아가실 때까지 모신 값좀 받자고.


극단적 뻔뻔함에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아까처럼 당황하며 말을 늘어놓는 오빠보다는 뻔뻔한 오빠가 좀 더 봐줄만 했다. 어쩌면 얼마나 먹고 살기 힘들었으면, 하는 어느 정도의 동정도 한몫 했고. 어머니 없이 자란 오빠의 고달픔 또한 어느정도 이해가 갔다.

그는 작년 여름 때쯤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왔다. 당시 나는 회사 공장 파업으로 인한 재고 부족 이슈가 터져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연락을 받지 못했다. 연락을 받지 않는 나에게 오빠는 그 날 여덟 통의 전화를 했고,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콜백을 한 내게 다짜고짜 돈을 좀 빌려달라고 했다.


우리가 평소에 서로 연락하는 사이도 아니었거니와, 마치 맡겨놓은 곶감 찾듯이 너무 자연스럽게 빌려달라고 해서 벙찐 내가 선뜻 대답하지 못하자 오빠는 갑자기 내게 애원하기 시작했다. 카드값이 이번달에 빵꾸가 나서 그래, 일한 대금이 제 때 들어오지 않아서 그래, 일주일만 쓰고 바로 돌려 주겠다며 그가 내게 빌려달라고 한 금액은 칠십이었다. 칠십은 커녕 단 돈 칠만원도 통장에 없던 나는 정말로 현금이 없고, 차라리 필요한 물건이 있는거면 내가 카드로 사주겠노라고 말했다. 오빠는 한참 말이 없더니 그래, 내가 전화한 건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라고 말하고 끊었다. 물론 끊자마자 나는 쪼르르 아빠에게 일러바쳤다.

일러바친 후에야 나는 통장에 칠십 만원이 없어서 평소 연락도 주고 받지 않는 아홉살 아래 동생에게 손을 벌리는 오빠의 마음을 헤아려 보았다. 주위에 그렇게 기댈 사람이 없는가라는 질문에도 곰곰히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금방 잊어버렸다. 어차피 내 일이 아니었기에.


나는 내게 침이라도 뱉을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오빠를 지나쳐 걸었다. 뒤에서 오빠가 내게 뭐라고 소리치며 말을 걸었지만 명확히 들리지 않았다. 장례식장을 끼고 있는 병원 부지를 거닐며 가로등 조차 많지 않아 칠흑같은 어둠이 자리잡고 있는 나무 사이 사이를 시큰한 눈으로 훑었다. 바람이 불어 흔들리는 가지 사이로 차라리 괴물이라도 튀어 나오길 바랐다. 이 정체 모를 서글픔이 쉽사리 지워지도록.   


- 10편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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