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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na Mar 22. 2021

김말순 여사의 장례식 -11-

환장즉흥곡

- 넷째네 딸이 결혼을 했대.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장례식 둘째 날, 입관예배를 앞두고 아빠와 잠시 장례식장 앞 마당을 거닐던 도중이었다. 하도 절을 했더니 도가니가 쑤신다는 아빠를 모시고 짧게 산보라도 할 참이었다.

기독교식 장례여서 절을 굳이 할 필요가 없었지만 대부분의 조문객들은 눈치를 보다가 절을 했다. 정말로 절을 안해도 되는지 잘 모르는 눈치였다. 교회에서 온 사람들이나 기독교식 장례식을 다녀본 사람들은 태가 났다. 그들은 익숙하게 절 대신 목례를 짤막하게 했다. 하지만 극히 일부였다.

지금 쉬지 않으면 오늘은 정말로 힘든 날이 될 터였다. 보통 조문객들은 첫 날보다 둘째 날에 더 몰리기 마련이니까.


- 뭐? 무슨 결혼? 언제 식을 올렸어? 걔가 몇 살인데?

- 스물 두 살이지. 그게 문제가 아니고.....


아빠는 주위에 아무도 없는데도 굳이 내 귀에 대고 소근거렸다.


- 만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부모도 모르게 혼인신고를 하고 나서 넷째한테 고백했대. 결혼식도 아예 안 올렸나봐.


정말 기가 막힌 일이었다. 넷째 작은어머니가 그래서 내 얼굴을 보자마자 굳이 결혼 결혼 노래를 부른건가. 주위를 보면 유독 자식을 결혼시킨 부모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결혼을 강요한다. 자신의 딸이 시집을 갔으니 온 세상에 현존하는 모든 딸과 아들 들도 결혼이라는 제도에 갇히길 바라는 것인가.


넷째네 딸 선미는 언제나 넷째 작은어머니의 자랑거리였다.

넷째 작은아버지의 외도에 작은어머니는 더욱 자식들에게 집착했고, 자식의 성공과 자신의 성공을 동일시하게 생각했다. 전업주부에게서 나타나는 흔한 현상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집안일 외에 없다는 현실에 계속 부딪히며 차츰 일상에서 성취욕을 찾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무리 집안일을 해도 그게 곧 밥벌이가 되지 못한다는 생각에 한없이 자존감이 나약해지는 과정이 반복된다. 그러면서 자신만의 목표는 희미해지고, 오직 자식에게 자신이 이루지 못한 모든 것을 투영하는 현상 말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선미는 엄마의 기대만큼 잘 자라주었다. 그런 면이 특출나지 않은 둘째 선아와 더욱 비교되기도 했다.


그녀가 버클리 음대를 붙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는 믿지 않았다. 평소 농담과 진담의 구분이 어려운 넷째 작은어머니의 허풍이라고 생각했다. 선미가 작곡한 곡 몇 개와 포트폴리오를 제출해서 합격했다고 했다. 이것은 마치 나 원서 열심히 써서 하버드 붙었어, 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선미의 작곡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명절 때마다 사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항상 구석에서 책을 읽었다. 가끔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말을 걸면 애써 웃어보이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귀찮음이 역력했다. 그녀는 선아와도 어울리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또 가졌다. 대체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어떻게 지내는 거지, 라고 궁금해진 내게 사실 선미는 학교에서도 마땅한 친구가 없더라고 작은어머니는 고백했다. 하지만 사촌의 외로움을 품을 만큼 나의 그릇은 크지 않았다. 나 또한 외로움으로 따지자면 평생 외로웠으니.


우리들은 모두 예술 쪽으로 재능이 있었다. 그림을 좋아하고 책이나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은 나와 내 사촌들의 내력이었기에 우리는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다만 한 번도 그녀가 음악에 대해 작업하는 것을 보지 못했기에, 차라리 글을 써서 대학에 붙었다고 하면 믿었지 음악으로 붙었다는 이야기는 믿지 못하였다.


우리가 믿든지 말든지 어쨌든 그녀는 학비를 이유로 버클리 음대를 포기했다고 했다. 대신 캐나다의 한 대학으로 진학했다고. 유학에 대해 아예 감이 없는 나는 과연 캐나다의 한 대학의 학비와 버클리의 학비가 그렇게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장학금을 받고 간 것도 아니고, 똑같이 자취를 하며 대학에 다녀야 한다면 더 좋은 대학으로 진학하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닌가? 우리 선미는 버클리 음대에 합격해 본 것만으로도 충분하대, 라며 넷째 작은어머니는 자부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대화를 종료했고 우리는 차마 의심을 드러낼 수가 없어서 더 이상 캐물어보지 못했다. 저렇게 확신에 차서 말하는데, 거기다 대고 의심하듯 캐물으면 마치 우리가 하찮은 질투라도 해서 못 믿는다는 것을 드러내는 꼴이니까. 한동안 그 사건은 우리에게 출구 없는 의문을 주었다.


상대는 선미가 캐나다에서 지내며 만난 흑인 남성이라고 했다. 문제는 그 남성도 선미와 같은 스물 두 살이고, 직업 없이 노래나 만들어 부르며 사는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것이다.

왜 그들은 서로의 밥벌이를 전혀 걱정하지 않고 사랑이라는 감정만으로 결혼을 결심했는지.

왜 그들은 미래에 대한 비전도 명확한 확신도 없는 서로에게, 무엇 때문에 그렇게 끌려서 평생 서로를 얽매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승낙했는지.

왜 그들은 단 한 명의 어른의 허락도 없이 그들만의 세계에 사로잡혀 한 때의 찰나에 해당할 수도 있는 감정을 사랑이라고 굳건히 믿게 되었는지.

왜 그들은 흔히들 그러듯 서로의 학력도, 재산도, 건강조차도 신경쓰지 않고 그렇게 큰 일을 강행했는지.

왜 선미는 평생 제 엄마 아빠의 뜻을 거스른 적도 없이 잘 자라오다가, 아무도 없는 외국에서 그런 결단을 했는지.


하지만 답은 간단하다. 예로부터 맘 속 깊이 쌓인 감정을 나눌 제대로 된 친구가 없었고, 엄마는 자신의 말을 듣기보다는 자신의 성적이나 품행 만을 바라보고, 아빠는 엄마와 자신이 아닌 자신과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다른 여자에게 더 빠져 있었다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상황이다. 그녀는 아마 평생 외롭게 살아왔을 것이다. 마음 기댈 곳 없는 외국에서 자신과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찾았고, 처음 느껴보는 풍부한 감정을 평생의 사랑이라고 깨닫는 과정은 아마 채 며칠이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지금은 아니지만 한 때 교수로 지내던 넷째 작은아버지의 마음에 그 남자가 들 리가 없는데, 무슨 애가 간도 크게 혼인신고부터 했는지. 하긴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더라면 부모가 그 결혼을 절대 찬성할 리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현명한 처사였다. 정말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말이다. 물론 그런 일생일대의 사람이라는 것을 그 어린 나이에 평가할 수 있다고 믿지는 않지만.


넷째 작은어머니는 항상 자신의 삶보다 자식의 삶이 더 평안하길 빌었다. 그렇게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놈에게 주려고 곱게 키운 자식이 아닐 텐데. 작은어머니의 속이 많이 문드러졌을 것이다.

장례식 끝나면 한번 한국에 들어오려나 봐, 라며 씁쓸하게 내뱉는 아빠의 눈빛은 넌 제발 그러지 마라, 라는 속내 또한 담고 있었으나 나는 모른체 했다. 어쩌면 아빠 입장에서는 내가 차라리 얼굴도 모르는 남자랑 결혼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영원히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난 쓰게 웃으며 시선을 떨구었다. 묻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아빠는 기어이 내게 한 마디를 던지고 만다.


- 넌 만나는 놈은 없냐?

전혀 없다.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예정이다. 왜 자꾸 이런 질문이 내게 돌아오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럴 때면 그냥 커밍아웃을 하고 싶어진다. 커밍아웃을 했을 때 경악하는 아빠의 얼굴이 그려진다. 그것은 내가 지금까지 작고 크게 일탈을 해 올때 겉으로는 이해하는 척 하던 아빠의 모습이 더이상 아닐 것이다. 아빠는 어렸을 때 부터 언제나 내 편이었다. 나는 내 또래가 그러하듯 엄마에게 기대지 않고 항상 아빠에게 기댔다. 아빠는 단 한번도 나를 엄하게 벌한 적이 없었다. 잘못을 하면 항상 엄마가 엄하게 다스렸고 아빠는 뒤에서 마음을 달래주는 역할을 하였다. 그렇게 언제나 확고히 내 편이던 아빠가 내게서 등을 돌리는 모습은 감히 상상하기조차 두려웠다. 또 목 깊은 곳이 막히는 갑갑함이 일었다.


지잉, 아빠의 핸드폰이 다급하게 울렸다. 입관예배가 곧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으며, 한결 무거워진 발걸음을 다시 장례식장으로 돌렸다. 부디 남은 일정 동안 그 누구도 내게 남자 친구나 결혼에 대해 일언반구도 꺼내지 않길 신께 기도하며.


-11편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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