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날 점심 이후로는 첫째날과 비교도 되지 않게 사람들이 몰아닥쳤다.
할아버지는 불편한 다리 때문에 의자에 앉아 계시다가 빈소에 딸린 방에 들어가 누우셨다. 곧잘 눈물을 흘리셨는데 어디가 어떻게 슬픈 것인지 공감하진 못했다.
정말로 할머니를 잃은 슬픔에 우는 것인가, 아니면 그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일생의 사랑인 둘째 부인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몰라서 우는 것인가.
하긴 오랜 세월 같이 살았으니 슬프기야 하겠지만서도, 감히 그 감정의 깊이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선 옅을 거라고 착각하게 된다.
끊임없이 오고 나가는 조문객들은 언젠가 자신도 어머니를 보낼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을 품고 잠시 효도를 행할 것이다.
어머니라는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여인에게 큰 감사를 새삼스럽게 깨닫고 자식으로서의 본분을 다할 것을 다짐할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 스스로 경험하지 못한 일에 대해 막연하게 대비하는 것은 오래 가지 못한다.
어느덧 길었던 장례식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오늘이 지나면 발인이다. 노도처럼 몰리던 조문객들도 차츰 발길이 끊기는 밤 열시, 우린 다시 함을 열어 마지막 돈봉투를 쏟아냈다. 중간중간 함이 꽉 차서 몇 번이나 봉투를 쏟아냈었다.
세는 데도 한참이 걸린 돈은 7천만원, 이틀 사이에 1억이 넘는 돈이 걷혔다.
물론, 대부분이 막내 작은아버지 것이었지만. 첫째 날과는 달리 센 돈과 봉투에 적힌 돈의 차이가 거의 나지 않았다. 한 번 해 보았다고 그새 익숙해진 건가, 라고 다들 신기해 했지만 난 말없이 정호 오빠의 빈자리를 눈으로 훑었다. 그 날 이후 눈에 띄게 어색해진 그는 할아버지를 모셔다 드린다는 핑계로 돈을 세는 내내 봉투 근처에도 오지 않았다.
회사에서 보내준 각종 음료수들과 일회용 접시, 식기 등 상조용품들이 잔뜩 남았다. 구질구질한 우리들은 그걸 서로 챙기겠다고 몸싸움까지 해가며 난리법석을 부렸다.
나는 모르는 척 뒷짐 지고 멀찌감치 서 있다가 어서 잔뜩 챙기라는 엄마의 불호령을 받고 머리부터 발 끝까지 모멸감을 느끼며 느릿느릿 차에 실었다.
욕심 많은 엄마는 필요도 없는 종이컵에 일회용 젓가락들까지 챙기고 싶어했다. 필요한 물건이면 돈을 주고 사면 될 것을, 거지도 아니고 굳이 궁상맞게 이런 자리에서까지 탐욕을 부리는 게 맞나 싶었다.
하지만 진정한 탐욕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돈을 모두 헤아리고 자신의 지인이 낸 빈 봉투를 저마다 나눠가졌다. 막내 작은어머니가 흠흠, 헛기침을 하고 말을 시작했다.
- 장례식장 비용이 이천 만원 좀 넘게 나왔어요. 그 비용은 저희 쪽에서 전액 부담하는 걸로 할게요. 그리고 각자 봉투를 챙기셨으니, 그 봉투에 적혀 있는 돈들은 나눠 드릴게요. 그리고...
막내 작은어머니는 목을 험험, 다시 가다듬었다.
- ...그리고, 처음에 말씀드린 대로 저희에게 들어온 돈은 저희가 가질게요.
큰아버지가 버럭 화를 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원래는 고인을 모신 사람이 남은 돈을 다 가지는 게 맞아! 너희 쪽으로 부조가 들어왔다고 해도 어머니 살아계실 적 가장 고생한 사람에게 주는게 맞지 않겠냐!
막내 작은어머니도 지지 않았다.
-그건 아주버님이 사업하시다가 재산 다 날려먹고 당장 살 집이 없어서 눌러 앉으신 거잖아요?그건 모셨다고 볼 수 없죠. 아주버님 아니었더라도 누구든 충분히 모실 수 있었어요!
- 그럼 당장 아버님이라도 모셔가든가!
- 그럼 저희가 모실테니 아주버님이 그 집에서 나가세요!
큰아버지는 튀어나올 듯 눈을 부릅뜨고 노발대발 했다.
-이게 지금 뭐라는 거야! 이거 완전 미친년 아냐!
그 소리에 머리 끝까지 열이 받은 막내 작은아버지가 큰아버지 멱살을 잡았다.
-어디서 민아 엄마한테 이 년 저 년 상스러운 말을 하는거야? 내가 형 목사 협회에 고소할거야!
그런 협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회사 대표란 자가 저렇게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을 내뱉다니. 저 회사 주식은 언젠가 반드시 망할 것이다. 하긴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자가 고작 돈 몇 푼에 저렇게 눈이 돌아버리는 것도 신기하지만.
큰아버지는 억, 하며 눈이 돌아 자신의 멱살을 휘어잡은 막내 작은아버지를 힘껏 밀쳤다. 쿠당탕 소리와 함께 작은아버지가 넘어지자 막내 작은어머니가 비명을 질렀다. 눈 뜨고 볼 수 없는 이 개싸움에 느닷없이 고모가 참전했다.
-너는 맏이가 되어서 대체 동생들한테 해준 게 뭐냐? 이제까지 부모한테 혼자 혜택이란 혜택은 다 받고 그깟 부조돈까지 니가 다 처먹고 싶어? 이 정신 빠진 새끼야!
소리를 빽 지르며 고모가 큰아버지 머리끄덩이를 잡았다. 그 서슬에 큰아버지는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정호 오빠가 잽싸게 껴서 고모를 밀어버렸다.
-아버지한테서 손 떼세요!
고모는 쓰러지며 아이고 나 죽네, 소리소리를 질렀다. 아빠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아빠는 한걸음에 달려가서 큰아버지 뒷목을 잡고 흔들었다.
-누나랑 내가 죽을 힘 다해가며 애들 뒷바라지 할때 형은 대체 뭐 했어! 형 인생이나 살기 바빴지 집안 돌아가는데 도움이나 준 적이 있냐고!
보다 못한 셋째와 넷째도 난장판인 전쟁에 참전했다. 이제 넋놓고 구경하는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벤치 클리어링을 보는 듯 했다.
-누나 말이 다 맞아! 형은 어릴 때부터 형 노릇을 한 적이 없어!
-이름만 맏형이지 대체 동생들 일에 신경이나 써준적 있어? 형은 장남이라고 말할 자격도 없어!
서로가 오가는 고성 속에서 큰아버지의 편은 아무도 없었다. 넷째 작은아버지 밑에 깔린 큰아버지가 불리하다 싶었는지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야, 넷째 너는 교수 잘렸을 때 어머니가 땅 판 돈 다 너한테 줬다며!
고모와 아빠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넷째는 아뿔싸,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이 넷째를 더욱 불리하게 만들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넷째 너 뒷구멍으로 뭘 처 빼돌린거야!
넷째 작은어머니가 다급하게 소리질렀다.
-땅 판돈 얼마 되지도 않아요! 저희가 오랫동안 아버님 어머님 모신건 생각 안 하세요? 그냥 모셔서 수고했다고 주신 거예요!
-그건 니놈들이 돈이 없어서 붙어 산거잖아! 형님처럼!
-뭐 이놈아? 누굴 거지새끼 취급이나 하고 말야!
-우리 아버지한테 작작좀 하세요!
코너로 몰아붙여진 넷째 작은아버지도 급히 소리질렀다.
- 셋째형, 사기 치다 걸려서 합의 못받고 교도소 갔다 나오니까 어머니가 울면서 아파트 처분한 돈 줬다며! 그 얘기는 왜 쏙 빼?
- 뭐? 어머니한테 아파트가 있었어?
- 미친거 아냐? 그 돈을 홀랑 니가 다 처먹었냐?
- 그건 합의금으로 원래 엄마가 나 주려던 거였어! 그거랑은 상관없어!
- 상관이 왜 없냐 이 미친놈아! 그것도 공정하게 분배해!
개판이었다. 누구 하나 말리는 사람 없이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내던지고 닥치는 대로 주먹을 휘두르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을 내뱉었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어른들이,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오전 내내 입관식에서 처 울던 것은 모조리 잊은 건지 그깟 돈 때문에 우애고 나발이고 모두 잊고 서로를 탓하기 바빴다.
그 와중에 누군가가 던졌는지 뭉치가 풀린 지폐들이 사방으로 날아다녔다. 팔락거리며 돈이 나부끼는 가운데로 아빠와 큰아버지가 정호 오빠가 서로 엉겨붙어서 빈소에 엎치락 뒤치락 굴러다녔다.
정신없이 서로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 밀치는 그들을 각각 셋째와 막내가 잡고 말렸다. 그러는 그들 뒤에서는 고모와 넷째 작은아버지가 서로 멱살을 쥔 채 으르릉거리고 막내 작은어머니와 넷째 작은어머니가 그런 서로를 말리고 있었다.
아, 드라마에서 보면 이럴 때 누군가가 크게 그만들 좀 하세요! 라고 소리를 지르며 주위를 환기시키던데, 여긴 그런 역할을 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제정신인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차 키를 들고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실컷 싸우고 알아서들 제풀에 지쳐 그만두기를 바랄 수밖에.
결국엔 그들도 깨닫게 될 것이다.
죽은 자를 두고 서로들 얼마나 꼴사나운 짓을 하고 있는지.
내가 할머니라면 당장에라도 관짝을 뜯고 나와서 저 자식놈의 새끼들을 한 대씩 후려갈겨 줄 것인데.
난 진심으로 기도했다. 부디 사람의 영혼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기를. 그래서 할머니가 자신의 죽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고작 돈 몇 푼 때문에 이런 난리를 피우는 자식들의 모습을 영원히 볼 수 없기를.
-13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