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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na Mar 22. 2021

김말순 여사의 장례식 -14-

먹구름도 뒤쪽은 은빛으로 빛난다


온 몸이 찌뿌둥했다. 발인날이다. 다들 꼴이 말이 아니었다. 큰아버지의 눈 근처에는 멍이 들어 있었고, 다른 형제들 얼굴도 온전치는 않았다.

발인예배를 아침 일찍부터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말없이 저마다 꾸역꾸역 식사를 했다.


어젯밤의 사건에 대해 궁금해하는 나에게 아빠는 넌지시 장례식 다 끝나고 나머지 돈을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하기로 했다고 알려주었다. 이럴거면 대체 어젯밤 내내 왜 싸운 것인가.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았단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발인예배가 시작되었다. 입관예배와 비슷하게 진행되었다. 관을 앞에 두고 사도신경으로 예배를 시작하여 찬송가를 불렀다. 

목사님이 짤막하게 성경 몇 구절을 읽어주고 다같이 기도를 했다. 찬송가를 부르는데 가락이 특히 구슬퍼서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다른 가족들도 어젯밤에 온갖 쌍소리를 하며 서로를 헐뜯고 때리던 것은 모두 잊은건지, 여기저기서 훌쩍이며 할머니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노래하고 기도했다. 빠른 태세전환이었다.


영구차에 관을 모시고, 장남과 장손을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은 모두 버스에 우르르 올라탔다.

버스에서 자리를 서로 널찍널찍하게 거리를 두고 앉은 우리들은 저마다 말도 걸지 않은 채 조용히 울거나 멍을 때리고 있었다. 

버스는 할머니가 머물렀던 큰집을 지나 마을 한바퀴를 돌고 미리 봐둔 장지로 향하였다.

할아버지 이 땅을 사기 위해서 밤이고 낮이고 아빠를 못살게 들들 볶았다. 장지로 사용할 땅을 구매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누구도 자신의 영역 근처에 무덤이 생기는 일을 바라지 않았다.

놀리는 땅이였으나 무덤이 들어서는 일은 달랐다. 주위 땅 주인들이 암묵적으로 동의도 해줘야 했다.

그렇지 않고 함부러 사들여서 무덤가로 사용한다면 장지로 들어가는 입구를 다른 땅 주인들이 메꿔버리는 일도 가능하다고 했다.


대체 요즘 세상에 왜 화장하지 않고 굳이 장지에 모시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굳이 땅에 그 모든 절차를 담아 시체를 묻어야 할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기독교는 영혼이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고 믿는 종교 아닌가? 볼 일 다 본 육신에 무슨 한이 남았다고 땅에 파묻기까지 하는 것인가.

할아버지는 일렬로 모든 자손이 대대손손 묻히도록 넉넉히 땅을 사둔 상태였다. 평소에도 친하지 않은데 죽어서까지 같이 저들과 묻혀야 한다니, 귀신이 통곡할 노릇이다.


노인네가 죽을 때가 되자 판단력이 흐려진 게지, 엄마는 대수롭지 않은 듯 툭 내뱉었다. 며느리로서 시건방진 발언이었으나 그 말이 들린 사람들은 모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다행히 귀가 먹은 할아버지는 그 말을 듣지 못했다. 그 말을 들으셨다면 할머니보다 엄마가 먼저 장지에 묻혔을 것이다.


운구하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애초에 인도로 닦여진 길이 아니고 온통 진창밭이었다. 땅은 고르게 파여있지 않았고 차가 진입할 수 있는 길목도 아니었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햇빛에 어설프게 녹아 신발에 푹푹 엉겨붙는 진흙밭이 되어 걷는 것도 힘들었다. 그 땅에 더 이상 차가 진입할 수가 없었다. 다들 차에서 내려서 관을 들고 걷기로 했다.


운구하는 사람들의 나이대는 이미 다 늙은 형제들 뿐이었고 그나마도 어젯밤에 있는 감정 없는 감정 모두 상한 상태였다. 어제 서로의 멱살을 움켜잡던 손으로 형제들은 저마다 관에 묶인 줄을 휘어잡았다.


한 줌도 되지 않는 할머니만 들어있는 관을 남자 여섯이서 끙끙대며 겨우 들고 운반했다. 겨우 관을 장지에 내려놓은 이들은 한숨 돌렸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적 장지에서는 이른 새벽부터 인부들이 굴삭기를 동원하여 부지런히 땅을 파고 있었으나 곳곳에 땅이 얼어 있어 아직 관이 들어갈 만큼 충분히 파지 못했다.


한쪽에서는 천막을 치고 상조업체에서 식사준비를 하고 있었다. 날이 춥다고 어묵탕을 끓이고 있었다. 저마다 어묵국물을 한 잔씩 마시며 묵묵히 땅을 파는 것을 보거나 주변 밭을 살폈다.


과연 저들은 슬픔을 몸 속 깊숙히 느끼고 있는 것인가. 온 머릿속이 부조금으로 꽉 차있는 것 같은데.


아빠는 장례식 내내 단 한번도 눈물 흘리지 않았다. 형제들 중 가장 무너질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이 바로 아빠였다. 아빠는 보기 드문 효자로 틈만 나면 할머니가 계신 큰 집에 내려갔다. 이미 살아계실 적 후회 없이 부모를 돌본 탓인지, 아빠는 그렇게 슬퍼하는 기색도 아니었다.


땅에 관을 넣은 후 다시 예배가 이어졌다. 최근 20년 동안 드린 예배보다 요 사흘간 드린 예배 횟수가 월등히 많았다. 고인 가시는 마지막 길에 뭔 찬송을 그리 부르고 뭔 기도를 그리 드리는지 모를 일이다. 지겨운 절차의 연속이었다.


장례지도사는 가족들이 할머니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며 한 명씩 삽으로 관에 흙을 뿌리게 했다.

그놈의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도 이렇게 그녀에게 말을 많이 건넨 적은 없었다. 정말 지겹고 지겨운 일이었는데, 막상 내 차례가 되자 또 치밀어오르는 서글픔을 참을 수가 없었다. 친분이 강하든 약하든 누군가를 곁에서 잃는 일이란 참 슬픈 일이다.


나는 삽으로 흙을 잔뜩 떠서 그녀의 영원한 평안과 안녕을 기원했다. 흙 알갱이들이 관 위에 오도도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이것이 그녀가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내게 고하는 작별인사라고 상상했다.

내 손녀, 내 손주. 잘 있거라.


그녀가 살면서 한 번이라도 진정으로 행복해 본 일이 있었을까?

그녀는 그녀의 인생에서 치렀던 모든 행사들, 결혼이나 임신 출산 육아 등 그 모든 관례들이 아무렇지도 않았을까? 그녀에게 한으로 맺힌 한 생이 아니었을까?

그녀가 젊은 날 두 번의 자살 시도를 했고 모두 미수로 끝났다고 들었다. 신이 존재한다면 어째서 그녀가 감당하기 힘든 생을 스스로 끝내도록 허락하지 않은 채 이 긴 세월을 살게 하신 것인가.


나는 한껏 치밀어 오르는 설움을 눈으로 흘려내며 그녀에게 빌었다.


할머니, 저도 대체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들죠. 이제까지도 너무 외로웠는데 앞으로 남은 제 생들을 어떻게 버텨내나요.

제 남은 생이 부디 외로움 보다는 상생으로 가득찰 수 있도록 부디 좀 도와달라고, 나는 마지막으로 그녀를 떠나보내는 자리에서 그녀의 천국행이나 또는 윤생을 기원하는 대신 이기적이게도 나의 남은 생을 위해서 빌었다.

그것이 내가 그녀에게 행한 최초의 불효였다.


- 14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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