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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함 Sep 11. 2023

직진남의 집념과 그 결과

[제11편] 베트남 옥택연 오빠 마지막 이야기


오랜만에 블로그를 이어쓰네요. 매주 쓰는게 목표인데 요즘 좀 나태해져서..! 혹시나 기다려주신 분이 있다면 감사합니다!


지난 번, 베트남 옥택연 오빠가 길 건널 때 덥석 내 손을 잡아버렸다는 얘기로 글을 마쳤는데..





너에게로 직-진

(YG 트레저 노래 후렴구임)

필자와 너무 귀여운 베트남 친구 하나


이전에 문체부에서 일하면서 알고 지낸 베트남 친구가 한 명 있다. '하나'라고, 엄청 귀엽고 힘줘서 안으면 바스러질 것 같이 여리여리하고 웃는 모습이 상큼한 친구다. 몇 개월 전 하나를 호치민에서도 만났다. 그러나 만남의 장소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이는 하나뿐이 아니었다. 하나는 사전에 말도 없이 다른 남자를 같이 데리고 왔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워낙 내 성격이 극에 달하는 E 성향이라 새로운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고, 이전에 다른 베트남 친구도 말없이 다른 친구를 데리고 온 뒤 아직 친하지도 않은 그와 나를 두고 일찍 자리를 뜨는 ...?... 상당히 곤혹스러운 상황을 여러 차례 경험한 적이 있으므로.. 그냥 이곳에서는 좀더 통용되는 문화이겠거니 했다.


문화를 설명하려다보니 딴길로 빠지게 됐군. 그날 하나가 데리고 온 남자는 하나를 짝사랑하는 남자로서, 한국에 거주하고 호치민에는 명절을 맞이해 며칠 방문하는 하나를 거의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리 에스코트 하고 있었다. 영어도 잘 하지 못했고, 당연히 한국어도 못했는데 하나는 괘념치 않고 내게 한국말로 이야기를 했다. 나는 제3자가 너무 마음이 쓰여 종종 눈도 마주치고 영어로 얘기도 했지만 하나는 그를 거의 투명인간 취급하듯이 했다. 그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하나가 말하길, 그는 의사이고 하나와 결혼하고 싶어한다. (실제로 하나는 말할 때 자기 자신을 제3인칭으로 쓴다.)



하나는 언니처럼 돈 안 많아. 그래서 하나 결혼 빨리 해야 돼. 이 오빠 집안 의사고, 우리 부모님이 이 오빠 좋아해.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의사 그렇게 부자 아니야. 하나 좋아하는 비즈니스맨 오빠도 있어. 하나 고민하고 있어.



하나와 하나를 졸졸 따라다니던 남자


하나와의 대화는 여러모로 나에게 신선한 문화충격을 주었다. 우선 한국에서는 '-사' 자가 들어간 직업을 굉장히 높이 평가하는 데에 반해 (하나의 개인적 취향일 수도 있겠지만) 이곳에서는 비즈니스맨이 더 좋은 '결혼 대상'으로 여겨진다는 것이 놀라웠다.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1986년 '도이 모이 (Doi moi)' 경제 개혁 이후로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했다. 베트남 사회문화의 유니크함이 바로 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합산에서 온다고 볼 수 있는데, 하노이 수도가 있는 북부에는 사회주의 정부 관계자 및 학문 쪽 - 우리말로 하자면 선비계열 - 사람들이 많아 비교적 보수적, 전통적인 반면 남부의 호치민/사이공은 예로부터 프랑스, 러시아, 미국 등의 영향을 받은 지역이고 북부와의 지형적 거리 때문인지 더욱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예술적인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해외 자본 투자, 부동산 매매 등 (문대졸업생으로서 숫자와 거리가 너무나도 먼.. 나에게는 다소 생소한 개념들) 거대한 스케일의 돈의 흐름이 있는 곳은 바로 남부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호치민 사람들은 의사보다는 비즈니스맨을 선호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이와 더불어 하나가 말해준 것:



베트남 남자는 열정이 많아. 좋아하는 여자가 생기면 공주님처럼 대해줘. 하나하나 다 해주고, 큰 꽃다발 선물해주고, 아프다고 하면 새벽에도 오토바이 몰고 와서 약 주고, 직진남이야. 엄청 열렬하게 대시해. 그런데 결혼하잖아? 결혼하고 나면 찬밥이야.



물론 한 사람의 의견에 불과하지만 이 이후로 나는 베트남 남자를 만나게 될 때마다 하나의 말이 자꾸 다시 떠오르게 됐다. 베트남 옥택연 오빠와의 상황이 그 첫 시작이었다.








거절하지 못하는 자의 결과

빈홈 센트럴 공원에서의 저녁 산책 (Photo credit: Dreamstime)


호치민 시내에는 운동 삼아 걸을 곳이 마땅치 않다. 피트니스장이 닫힌 늦은 저녁, 베트남 옥택연은 빈홈 센트럴 공원에라도 가서 걷자며 나를 데리고 갔다. 공원 쪽으로 길을 건너는데 그가 덥석 나의 손을 잡았다. 웃프게도 나는 그와 손을 잡기 싫어서 주먹을 쥐고 있었다. 그렇게 보자기에 주먹이 잡힌 상태로 길을 건너는 것도 한 두 어번 했을까..? 이쯤되면 위축돼서 손잡는 것을 포기할만도 하겠.... 다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그는 그 이후로는 아주 뻔뻔하게 내 주먹을 꼬장꼬장 펴서 깍지를 꼈다. 이런 반응은 전혀 예상하지 못해서 어이가 없었다.


나는 거절을 잘 못한다. 그래도 그에게 거절의 표시를 분명히 해야 할 것 같아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나는 그에게 직접적으로 남자친구를 원하지 않는다. 친구로서 지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를 소개시켜준 직원이모와 같이 그냥 좋은 사이로 지내고 싶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그의 얼굴을 보았는데.. 아니 세상에.. 가슴 아프도록 슬픈 강아지 얼굴을 하면서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는 되지도 않는 영어로 "I can't..! I can't..! You different!" 라고 말했고 잠시 머뭇거린 뒤 다시 내 손을 또 잡았다.


사람은 누구나 완벽하지 못하다. 독자들이여, 필자의 단호하지 못함을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겠습니까?.... 맞다. 정확하게 선을 긋지 못하는 것은 필자의 치명적이고도 치명적인 단점이다. 오픈마인드와 새로운 도전을 감사히 여기고 즐기는 장점과 항상 같이 따라오는 것은 잘라야 할 때 자르지 못하고, 매몰차야 할 때 매몰차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그 날 나는 그 강아지 얼굴을 보고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그렇게 그와 그런 관계가 지속돼다 보니 존버(=베트남 옥택연)는 성공했다. 그의 성공의 기준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와 나는 연인과 같은 관계를 2개월간 이어가게 됐다.







반짜이 (남자친구) ?


그놈의 반짜이. 호치민 사람들은 친절하다. 그리고 쉽게 말을 잘 건다. 종종 그랩 택시를 타면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꼭 내게 몇 가지 질문을 하는데 첫 번째가 어디에서 왔느냐, 베트남에 얼마나 오래 있었냐, 베트남에서 뭐하냐 그리고 결국은 남자친구가 있느냐다. 내 베트남어 실력이 몇개월 차 치고 이렇게까지 될 수 있던 것도 어떻게 보면 매번 같이 그랩 운전자들이 회화 연습을 시켜서이지 않을까 싶다.


베트남 옥택연은 거의 매일 같이 나를 찾고 만나고 싶어했다. 잘로 (베트남에서의 카톡) 메시지를 몇 번이고 씹어도 전혀 개의치 않고 또 보내고 또 보내고.. 마지못해 만날 때 내 얼굴에 짜증이 가득해도 나를 보면 바로 '히히'하고 웃으며 꿀떨어지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줬다. 툴툴거리거나 쌀쌀 맞게 대한 적도 많았는데 전혀 기분 상해보이는 일 없이 무조건 직진 구애활동을 펼쳤다.


베트남어 수업 후 오토바이랑 같이 대기하고 있는 베트남 옥택연 오빠


시간 내서 만나지 못하는 날에는 저녁 9시쯤 나의 베트남어 수업이 끝날 때 학교 문앞에서 나를 기다렸다. 저녁이 늦었으니 나를 집에 데려다주겠다며 오토바이 대기시키고 있었다. 그때만해도 내가 직접 운전을 하지 않았을 때였는데 그는 내가 그랩을 타고 그랩 운전자들이랑 대화하는 모습이 거슬렸나보다. 어느 날은 같이 베트남어 수업을 듣는 50대 홍콩 아저씨가 옥택연이 나를 오토바이에 태우는 모습을 봤나보다. 그 다음 수업 때 얼마나 나를 놀리던지.. 수업시간에 다른 50대 아저씨 아주머니들 다 있는데 나보러 쩌렁쩌렁 베트남어로 "엠어이! 반짜이/남자친구 있지?! (Em ơi, em có bạn trai không?)" 라며 두 눈 크게 뜨고 묻는 것이다. "아니라고 .. 그냥 친구라고.. 나는 남자친구를 원하지 않는다고 (Không. Anh ấy chỉ là một người bạn. Tôi không muốn có bạn trai.)" 베트남어로 대답했더니 급발진하시며 영어로 "엑!!! 떼끼!!! 헬멧 씌워주는 것도 내가 다 봤는데!! 눈에 하트 나오는 것도 내가 다 봤는데!!" 이러는 것이다. 하여간 마이클 아저씨 못말려... 수업 사람들 다 빵터져서 웃었고, 그 이후로 매 수업시간마다 선생님까지 포함해 "내 반짜이"에 대해서 물었다.


**궁금할까봐 덧붙이자면 여자친구는 "반까이(bạn gái)"다.








예견된 동상이몽


어느 날은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백화점에 놀러갔는데 1층에 진열된 쥬얼리대를 보더니 대놓고 다이아몬드 반지를 뚫어져라 보는 것이 아닌가. 나는 못본척 먼저 지나갔지만 그는 한참을 쥬얼리대에서 머물다가 나를 따라왔다. 이후에도 그는 자기가 얼마나 경제적으로 탄탄한지 내게 어필했다. 거금의 현금을 탑으로 쌓아놓고 사진을 찍어 보내기도 했고, 그가 갖고 있는 모든 전문기술 자격증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는 가정을 꾸리고 싶다고 말했고 프로필 사진마저도 화목한 가정 일러스트레이션으로 해놓았다. 이 모든 것이 놀랍게도 내가 그와의 미래를 전혀 생각할 수 없고, 이만 그만 만나고 싶다고 여러 차례 말한 이후에도 보이던 모습이다.


2개월간 그를 만나는 동안 나는 대놓고 그의 손을 거세게 뿌리친 적도 있고, 이제 부담스러우니 그만 만나고 싶다는 말도 최소 3번은 분명하게 말했다. 제발 집 앞에 와서 기다리지 말아달라는 말은 수도없이 많이 했다. 그러나 그는 집요했다. 나와 친한 영국친구 에밀리는 그와 나의 관계가 너무 톡식(toxic)하다고 말했다. 단순히 죄책감 때문에 만남을 유지하고, 그 죄책감을 이용해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억지로 하게끔 모는 상황은 레드 플래그(red flag)**이고 가스라이팅이라며 그와의 관계에서 불편함이 있다면 분명히 끝내야 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레드 플래그란 일반적으로 '위험의 신호'를 의미하며, 연애에 있어서는 관계를 지속시키지 말아야 할 요소를 의미하는 데에 쓰이곤 한다


굳은 결심 끝에 이별을 또 고했고, 이번에는 그 어떠한 여지조차 주지 않았다. 만나고 싶지 않다.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을 반복해서 베트남어로 말해야 했다. 그는 그 이후에도 내가 답장을 하지 않아도 혼잣말 하듯 힘든 마음을 고백하는 문자를 보냈다. 몇 번은 그냥 읽씹 상태로 두었지만 문자가 끊이질 않아 결국 차단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게 그와의 관계를 끝내면서 나도 꽤 오랜 기간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내게는 처음으로 많이 친해진 베트남 사람이었다. 나는 그를 사람으로서 정말 좋아했고 그의 순수하고 부지런한 영혼을 아름다워 했다. 그가 내게 혼잣말처럼 보낸 문자에는 그 어떠한 원망도 없없다. 따뜻한 기억을 남겨줘서 고맙다고, 오늘 하루 좋은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다고, 아프거나 속상한 일이 있으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알려달라고.






그와의 만남을 종료한 이후로 꽤 오랜기간을 우울함 속에서 보냈다. 그래도 그에게 연락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그렇게 호되게 베트남 남자와의 시간을 보내놓고도.. 몇 개월 뒤 또 다른 베트남 남자와 데이트를 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그보다 내가 더 그를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다음 편 기대해주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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