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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함 May 14. 2024

소울메이트를 더 빨리 찾는 방법

[제16편] 시몬 두 번째 이야기


그날 시몬과 함께 나눈 3초 미만의 가볍지만 보드랍고 밀도 있는 입맞춤은 내가 그에게 막무가내로 빠져들기에 충분한 키스였다. 그럼에도 그 이후로 거의 반년이 넘어가도록 그와의 관계는 진전되지 못했다. 


우선 온라인 대화가 자주 끊겼다. 본인이 먼저 연락해놓고 내가 답하고 나면 갑자기 씹는(?) 일관성 없고 책임감 없는 모습을 계속 보였다. 그럼에도 에밀리와 나는 그 이후로 주말마다 바나나 마마에 가서 그와 다른 바텐더 직원 친구들과 친분을 쌓아가게 됐고, 결국 우리는 남녀간의 사이보다는 바나나 마마 써클의 친구 사이가 되어 버렸다. 매주 그를 조금씩 더 알아가게 되면서 나는 그에게만 갖고 있던 콩깍지를 슬슬 벗겨갈 수 있었다. 







시몬이 빨간 깃발인 이유


시몬은 23살로 나와 무려 10살 차이가 났었다. 외관상으로는 그렇게까지 어릴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하는 행동을 보니 갈수록 그 나이의 전형적인 유러피안 정키(junkie, 일종의 마약중독자) 같이 느껴졌다. 알고 보니 프랑스에서 살았을 때는 작은 지방에서 친구들과 같이 마약 밀매를 도와주기까지 했다고.. 그러던 중 그 무리의 한 친구가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나 그 친구를 기리는 타투를 팔뚝에 했댄다. 가관이다 정말. 근무시간도 자기 멋대로 출퇴근 하고, 다른 직원들이 안쓰러워 보일만큼 일을 게을리 했으며, 자기 필요에 따라 엄청나게 달콤하기도 퉁명스럽거나 무례하기도 했다.



꽤 잘 알려진 영화 <One Day> 의 Dexter Mayhew 같았달까. 누가 봐도 잘생긴 얼굴에 그가 한 번 작정하고 눈웃음을 날리면 그 애교 섞인 모습에 녹아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본인도 자기가 잘생긴 것을 알고 있어서 평상시에는 자기 멋대로 굴다가도 잘 보여야 하는 상황에는 자신의 가장 강한 무기를 이용해 구슬리는 것 같았다. 그는 누가 봐도 걸어다니는 레드 플래그(red flag, 연애에 있어서 엮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류의 사람을 일컫는다)였다. 결국 그런 그의 모습에 진절머리가 났던 나는 그와 인스타 친구관계도 끊고, 그가 내게 애교 섞인 모습으로 다가올 때는 대놓고 냉랭하게 대했으며, 둘이 있을만한 상황은 필사적으로 계속 피해왔다. 







모성애가 문제지, 그래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에는 내가 더이상 그에게 이성적 감성을 느끼지 않고 그저 어린 아이로 여기게 되었다. 그래서 어쩌다가 그와 둘이 얘기를 하게 되는 자리가 있을 때 굳이 피하지 않기로 했다. 그날 그는 본인이 여태껏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랑 잠자리를 가졌는지 이제는 아무도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느니 어떻게 해야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느니 뭐니 내게 토로했었다. 그는 이렇듯 상 술을 마시면 삶과 연애관에 대해서 이야기해왔다. 다른 이들은 그냥 술주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게 그와 내가 유일하게 통하는 점이었다. 그도 나도 세속적인 기준의 것들, 예컨대 국내에 있었을 때는 흔하디 흔한 대화 소재였던 어디에서 일하고 어느 땅을 사야 하고 어떻게 살을 빼야 하고 등등의 자잘자잘한 것이 아닌 좀더 깊이 있는 마음 속 질문과 고질적인 마음의 병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고찰, 그와 나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즐겼다. 



필자는 아동 인권을 위한 기관에서 일하고 있는데 그를 보고 있으면 우리가 아이일 때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서 어떻게 삶이 변할 수 있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그가 내게 구체적으로 그의 어린 시절을 얘기해주지는 않았지만, 그의 눈동자를 마주할 때면 짐작할 수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자리잡은 상처가 현재의 그의 생활에도 지장을 주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그가 술에 취해 평상시 그의 무기인 귀염 떠는 모습을 벗어내고 내게 솔직하게 자기 감정과 생각을 편하게 토로할 때, 그런 때에 그의 푸른 눈동자의 깊은 곳까지 바라보고 있을 때면.. 나는 항상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휘말려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 이상의 친절은 베풀지 않았다. 그날 다른 친구들이 자리를 뜨자 나도 우리 대화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그냥 말없이 떠나버렸다 (그도 여러 번 그러했으니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거리를 두고 차갑게 대하면서도 그는 필자의 마음 속에 아픈 손가락으로 자리를 잡았나보다. 







소울메이트를 더 빨리 찾는 방법

AI한테 견우와 직녀가 까마귀 다리 위에서 만나는 모습을 그려달라고 했는데 까마귀를 밟는 모습을 도무지 못그리던 동물권리에 양심적인 AI..


음력 7월 7일. 우리나라에서는 견우와 직녀가 까치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다리로 인해 눈물 겨운 상봉을 하기로 알려진 날이다. 베트남에서도 견우와 직녀의 이야기와 비슷한 설화를 갖고 있는 듯한데 주변 사람들에 의하면 이 날 팥을 먹으면 영원의 소울메이트를 조금 더 빨리 만날 수 있다고 믿는가보다. 하여간 베트남 사람들 참 연애 이야기 좋아해. 



소울메이트가 있다고 믿는 풍속도, 소울메이트를 더 빨리 만나면 좋다고 믿는 풍속도 우습게 느껴졌다. 


영혼의 단짝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신께서 필요한 때에 그를 나에게 보내주겠지. 인연에는 타이밍이 불가피한 요소니까.
그걸 앞당기고 자시고 할 수가 있나..!
앞당기면 소울메이트로서의 역할이 유효할 수 있는건가?
그리고 말야! 나는 나만의 시간대와 신념으로 내 인생을 정복해야지,
나는 나로서 완전하니까!
소울메이트가 없다고 불완전한 삶도,
소울메이트가 있다고 완전한 삶도 아니니까!


라고 굳건히 생각하며 이곳의 로컬문화를 외면했다.


그러나 일터에서는 직장동료들이, 학원에서는 학원선생님이 하나 같이 다들 꼭 팥을 먹어야 한다고 난리이지 않은가! 으휴 정말 베트남 사랑쟁이들 못말려.. 결국 사회적 압박에 굴복해 밤 10시쯤 그랩으로 팥이 들어간 밀크티를 배달주문했다. 그렇게 팥을 한 입 먹으려는데 시몬이 떠올랐다. 그는 나의 소울메이트는 아니지만 .. 사실 마음 깊은 곳 본인만의 소울메이트가 나타나기를 몹시 갈구하는 나의 모습과 유사한 모습을 갖고 있으니까. 



역시나 AI로 제작해 어색한 팥 밀크티 이미지


그래서 그동안 그에게 차갑게 굴고 떽떽댔으면서도 그에게 연락해 7월 7일 팥을 먹는 베트남 민속 전통에 장문의 DM으로 설명해주었다. 그는 나의 DM을 보더니, 


"Girl, you always make me speechless. (넌 항상 말문을 막히게 해)" 라고 대답했다.

그러더니 30분 뒤, 다소 실망스러운 DM을 보냈다.

"근데 이거 그냥 마케팅 수법인거 아니야?"


... 나는 그가 좀더 말랑말랑하고 낭만적일 줄 알았나보다. 그래서 사랑에 갈구하는 우리가 서로의 인연은 아니더라도, 그가 그의 사랑의 갈증을 충족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나의 예쁜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아주기를 바랐나보다. 그러나 역시나 실망스러웠다. 언제든 그에게 어떠한 기대감을 갖고 다가가면 항상 실망하기 일수였다. 필자는 나날이 실망이 더해질수록 더는 그를 처음 봤을 때처럼 그와 이상적인 남녀관계로 발전할 것을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바텐더를 그만둔다고..?


그날도 그런 취지로 만난거였다. 그가 더이상 바나나 마마에서 일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더는 내가 그를 보고 싶을 때 마음대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와닿았다. 그렇게 수차례 그에게 실망해놓고도 그게 슬펐다. 또 한 편으로는 매춘부라는 말까지 들어가며 일해야 했던 그 삶에서 그가 벗어날 수 있음에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그랬더니  그가 고맙다며 맥주라도 한 잔 하자고 제안했다. 


우리가 처음 만난 바나나 마마에서 만나 술을 마시다보니 어느새 새벽 3시가 넘어가고 우리 또 TNR에 있네.. (역시나 루틴). 그러나 그날은 처음으로 그와 단둘이서 몇 시간이고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그는 고해성사 하듯 내게 그가 어려서부터 자라온 환경이 얼마나 불우했는지 알려주었다. 알제리 출신의 어머니가 프랑스 아버지와 임신하기 위해 콘돔에 구멍을 냈는데 그렇게 해서 자기를 임신하게 된 것이었으며, Accidental Baby(사고에 의한 아이)로서 얼마나 그의 아버지가 그를 함부로 대했는지, 자라면서 얼마나 많이 맞았는지, 그럼에도 그가 얼마나 그의 가족과 동생들을 사랑하는지, 여전히 찢어지게 가난한 가족을 위해 지금도 베트남에서 번 돈을 보낸다는 얘기까지, 쉽게 꺼낼 수 없는 이야기를 나에게 봇물 터지듯이 늘어놓았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에게서 작은 아이를 보았다. 시몬이 어떻게 지금의 시몬이 되었는지 그 성장 스토리가 눈에 그려졌다. 나는 그 작은 아이를 꼬옥 안아주고 토닥여주고 싶었다. 


가족과 가정환경에 대해서 다 말하고 난 뒤, 그는 심지어 지난 몇 개월간 나에 대해 느꼈던 마음을 이야기했다. 처음 본 순간부터 내게 이끌렸고 지금도 이끌리고 있다고, 우리의 대화로 인해 내가 그의 'the one'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그런데 바텐더인 자기의 상황이 나와 너무 달라서 겁이 났었다고.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마음이 몽글몽글해졌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땡! 시몬은 이미 나의 신뢰를 산산조각 냈기 때문에 gral 똥싸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저 그냥 작은 아이를 상대로 누나 같이 들어주고 누나 같이 따뜻한 말로 대응해주고 싶었을뿐, 그를 이성적으로 볼 수는 없었다. 








비쥬냐 키스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래서 TNR이 닫히고 문 밖을 나와 길에서 그가 "Can I give you a kiss?" 라고 물었을 때 이게 무슨 말인지 일해를 못할 정도였다. 이게 뭔 소리지? 비쥬(인사)하겠다는 소리인가? 싶어서 몸의 방향은 여전히 그의 방향에서 90도로 돌려진 채로 "A kiss?! Umm....? Like.. where???" 라고 당황스러운 말투로 말하며 눈알을 굴렸는데.. 그가 오른속으로 내 턱을 살포시 잡고 내 몸을 그의 방향으로 돌려 입술에 키스했다. 



...



키스는 상상했던 것 그 이상으로 감미로웠다.


최근에 한 키스 중에 역.대.급.


하............



이미 이전에 3초 비쥬했을 때도 분명히 키스를 기가 막히게 할 녀석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더 길어지니까 더 농도있고 진한 감정의 교류가 이어졌다. 그와 나의 들숨과 날숨이 페이즐리 문양으로 그려지며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런 밀도, 박자와 압력의 키스.. 단순히 입술만 사용하는 키스가 아니라 그의 상체와 나의 상체가 밀착한 채 감겨 가는 것을 느꼈다. 마치 내면 깊은 곳 영혼이 숨겨져 있는 곳에 빨대를 꽂아 들숨으로 빨아들이고, 뜨거운 영혼의 온기에 날숨에서 김이 나는 것만 같은.. 그런 키스였다. 이건 애정 없이 할 수 있는 키스가 아니었다. 서로의 눈을 마주하고, 동공 깊은 곳까지 투영해 흔들림 없이 직면하고 집중해야만 나올 수 있는 키스였다.



마지막으로 이 또한 AI로 만든 이미지이만 실제 상황과 매우 유사하게 잘 나왔음!! 대만족!!


TNR 사이공에 남은 손님들이 우루루 문 밖으로 나올 때 내가 멋쩍어 하며 "아, 사람들 나오는데"하고 속삭였는데도 그는 "내가 알 바 아니야"라며 나에게만 집중해 키스를 이어했다. 그렇게 환상적인 키스를 하면서도 나는 절대 이 분위기에 취해 그와 잠자리를 가지면 안 된다고 생각을 했다. 그는 꿈같이 몽실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다음주에 언제 시간 돼? 정식으로 데이트 신청하고 싶어. 저녁 같이 먹자" 라고 말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만 그동안에 해온 냉전이 무의미해질만큼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동안 호치민에서 만난 다른 남자들은 이 분위기에서 "너희 집으로 가고 싶어" 또는 "우리집에 가자" 대사가 나올 차례였다. 그런데 그는.. 모든 것을 바로잡고 싶다는 듯 정식으로 저녁식사를 같이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게 엄청나게 신사적이고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감격에 벅차 싱긋 웃으며 "주말에 가능해" 라고 대답했다. 그러고 그는 나를 휙 돌리더니 그랩 택시 운전자 왔다며 가랜다. 하씨.. 매력 넘치는 녀석.. 아니 운전자가 온거 이미 알면서도 키스했었던거야?..



그렇게 나는 집에 무사히 돌아갔고 그날 이후로 그가 내게 이전과는 다른 태도로 DM을 보내는 것을 느꼈다. 일 하던 중에 셀카를 찍어서 보내주고, 내가 리액션만 보이니까 왜 내 사진은 안 찍어 주나며 칭얼대고.. 그렇게 나름대로 꽁냥거리면서 주말약속에 대한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핑크색 구름 위를 둥둥 떠다녔다. 







그러나.. 일요일 저녁 5시가 되도록 그의 연락이 없자 화가 났다. 그에 대한 신뢰는 이미 한 번 바닥이 났었고, 그걸 다시 생성한 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었는데 그는 다시 한 번 나의 신뢰를 져버린 것이다. 그래서 먼저 연락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으아!!! 내 자존심!!) 



다음 편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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