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급 화장실

by 팔이년생청자켓

누군가 그랬다. 화장실 2개 딸린 집에서 살면 성공한 거라고.(그럼 난 이미 성공했다.) 얼마전 '성공의 상징'인 2개의 화장실 중 안방 화장실 전구 하나가 수명을 다했다. 인터넷으로 대량 구매한 형광램프를 써먹을 때가 됐다. '하얗게 불태운' 기존의 전구를 빼고 '하얗게 불태울' 새 전구를 끼웠다. 이제 점등할 차례. 이게 웬 주황빛? 분명 주광색 램프가 아닌 전구색 램프를 샀는데. 나중에 알았지만 주광색이 하얀 색이고 전구색이 주황빛이다.(당연히 '주광'색이 '주황'색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나만은 아닐거라 믿는다.) 그렇게 안방화장실 전구 2개는 각기 흰색과 주황색을 발하게 되었다. 남은 흰색 전구도 주황색으로 바꿀까 하다가 '그'는 아직 자신의 소명을 다하지 않았기에 그냥 두기로 했다. 그렇게 새 전구를 갈고도 찜찜한 기분에 사로 잡혀 있을 때 학원을 마치고 귀가한 딸아이가 안방 화장실에 가서 불을 켜더니 냅다 소리를 지른다.


"우와~~~이거 뭐야? 우리집 화장실 호텔 같아! 아빠가 갈았어?"

"그럼, 아빠가 갈았지. 예뻐?"

"응! 너무 마음에 들어."


그제서야 찜찜했던 기분은 사라지고 모든 것이 계획이었던냥 의기양양해 할 수 있었다. 내가 행복하지 않은 건(좀 더 정확히는 행복해하지 못하는 건) 그저 나이가 들어서, 풍족하지 않아서, 미래가 불안해서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계획에 어긋난 잘못된 일, 실패라고 여긴 일이 딸에게는 예상치 못한 서프라이즈 이벤트, 선물과도 같은 일이었다. 나는 안다. 이제는 딸아이와 같은 순수한 동심으로 행복을 느낄 수는 없다는 것을. 행복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하지만 그 사실을 씁쓸해하지 않기로 했다. 어른답게 겸허하게 받아드리고 노력하기로 했다. 그 누구도 아닌 나와 나의 가족의 행복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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