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나도 이름이 있다.

by 팔이년생청자켓

내 핸드폰에 있는 100명도 되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실명으로 저장되어 있다. 동명이인이 아닌 이상 부가적인 설명은 없다. 이는 부모님도 예외가 아니다. 내 전화번호부를 보고, 특히나 부모님 마저도 아버지, 어머니가 아닌 이름으로 저장해두는 것을 보고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너무 정이 없는 것 아닌가. 낯설고 이상하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전화번호를 저장하기 시작한데는 나름의 계기가 있다. 아버지의 남매들은 우애가 아주 돈독하다. 명절이면 동네의 어느 집보다 왁자지껄한 축제의 장이 펼쳐지곤 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런 가족의 유대감과 유쾌함이 느껴지는 명절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코로나가 창궐하고 한 해 두 해 모이지 않게 되었고 명절에 아버지의 남매들과 그들의 자식들이 한 자리에 모두 모인 풍경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그러다 나는 문득 내가 큰 엄마, 작은 엄마라고 부르며 인사했던 분들의 이름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너무나 오랫동안 나에게 그들은 이름이 없이 그저 큰 엄마, 작은 엄마들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늘 이름으로 불렸는데도 말이다. 남성중심의 세상 속에서 그들은 누군가에게 이름이 없는 채로 존재해왔다는 사실에 큰 결례를 범한 것 같았고, 또한 큰 빚을 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전화번호를 저장할 때 반드시 실명으로 저장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가끔씩 전화번호부를 들여다보며 이 사람이 누구였는지, 나와는 어떤 관계인지를 복기한다. 우리는 누구나 이름이 있다. 그 이름이라는 것이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개개인을 관리하는 행정시스템의 편의를 위해 필요한 것만은 분명 아닐 것이다. 이름은 한 인간의 존재의 시작을 알리고, 살아있는 동안 그리고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순간에도 여전히 그들의 존재를 기억하게 해주는 유일하고 가장 중요한 가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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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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