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제법 변했다.

by 팔이년생청자켓

장모님께서는 시에서 운영하는 숙박시설 청소일을 하신다. 정직원으로 근무하신지가 벌써 4년이 넘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 바쁠 땐 알바를 고용하기도 하는데 아내를 비롯 동네 아주머니들도 종종 가서 일을 했다. 한번은 아내가 나에게도 알바있을 때 가서 일해보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칠색 팔색(질색팔색을 잘못쓴게 아니다. 이런 말이 있더라.)을 하며 “내가 그걸 왜 해! 난 못해.” 하지만 이후로 나의 수입은 점차 줄어갔고 그저 ‘나에게 맞는 일을 아직 찾지 못했을 뿐’이라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기에는 가장으로서 나의 모습은 너무 무책임해 보였다. 결국 처음으로 청소알바를 하러 갔다. 장모님은 내가 잘 못해도 서포트를 해줄테니 걱정말라고 하셨다. 하나씩 배워가며 일을 하는데 금방 땀이 뻘뻘 나고 허리는 아파오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에 장모님께서 싸 오신 도시락을 허겁지겁 먹고 다시 청소 시작! 하지만 이미 전완근은 다 털린 상태고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런 내 모습에 장모님은 이불세트와 베개피만 갈고 그만 들어가보라고 하셨다. 그럴 땐 당연히 “아니에요. 끝까지 해야죠.”라고 해야 했겠지만 그때의 나는 그 말씀이 그저 반갑기만 했다. 그렇게 첫 청소알바를 마치고(정확힌 중도하차하고) 집에 와서 가족단톡방에 다신 못하니 부르지 말아달라며 투정을 부렸다.(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나는 일당 10만원을 다 받을 자격이 없다며 5만원은 장모님께 나중에 보내드렸다.) 새삼 장모님과 아내 그리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란 인간이 참으로 나약하다는 생각과 더불어. 어쩌다 보니 두 번째 알바를 가게 되었는데 이땐 아내와 함께 했다. 여전히 힘들었지만 둘이 함께 하니 한결 수월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두 시간쯤 지나고 나니 체력은 급격히 떨어졌다. 그래도 이번엔 끝까지 버티긴 했다. 첫 알바 때 장모님이 처음이라 그런 거라고, 하다 보면 나아진다고 했던 말씀에 난 못한다고 나아질 생각이 없다고 생떼를 썼던 게 떠올랐다. 이후로 세 번째 알바는 다시 한번 장모님과 호흡을 맞췄다. 못한다고 나아지지 않을 거라고 했던 내 나약한 생각은 어느새 상당히 긍정적으로 바뀌어 있었다. 장모님도 이제는 잘한다며 다음엔 혼자서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데 기분이 좋아졌다. 얼마 전엔 장모님께서 일을 못 가신다고 해서 대타로 ‘긴급투입’되었다. 새벽일을 마치고 두 번째 일터로 향했다. 장모님의 부탁으로 청소반장님은 초짜인 나를 위해 작은 방 위주로 배정해 주셨다. 이번엔 오롯이 혼자서 방을 다 책임져야 했다. 빠르진 않지만 그래도 몇 번 해봤다고 제법 능숙하게 청소를 해나갔고 결국 처음으로 혼자서 끝까지 일을 했다. 이게 뭐라고 성취감과 뿌듯함을 느끼고 난리.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오늘도 새벽일을 끝내고 집에 왔는데 청소반장님께 전화가 왔다. 다음 주 평일에 알바 한 번 할 수 있겠냐고. 난 일말의 고민도 없이 “됩니다.”를 외쳤고 반장님은 나에게 고맙다고, 나도 반장님께 제가 고맙다며 전화를 끊었다. '포시랍게' 자라온 나, 이제 제법 변한걸까?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07화다만 술에서 구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