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술은 나에게 유일한 낙이었다. 세상 시름 한 잔 두 잔 술잔에 담아 목구멍으로 털어 넘겨버리면 다 별일 아닌 듯 지나갔다. 헌데 문제는 술은 너무 중독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시름이 쌓여 견디기 힘들 때 술과 함께 흘려보내는 것이 음주의 원래 목적이었다면 이는 곧 변질되어 별일 아닌데도 술이 생각났고 이런저런 이유(‘핑계’가 더 어울리겠다.)로 술과의 연결고리를 이어갔다. 결국 나중엔 어떤 이유도 필요치 않게 된다. 거의 매일 같이 술을 하다 보면 기묘한 일이 벌어진다. 어쩌다 술을 마시지 않은 날 컨디션이 급격히 좋아지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이건 무슨 소린가 싶겠지만 술에 대한 의존성이 강한 사람들은 한 번쯤은 느껴봤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엔 몸과 마음이 모두 병들게 된다. 체중은 꾸준히 늘어났고 발톱 자르기가 이토록 숨가뿐 일이었나 생각하게 됐다. 잘생기진 않아도 동안이라는 말, 피부좋다는 말은 왕왕 들었는데 10년의 세월풍파를 한 방에 스트레이트로 맞은 느낌이었다. 내가 봐도 견디기 힘들 정도의 몰골이 되면 '그래. 결심했어! 술을 끊자! 이건 아니야.'하고 다짐하지만 그 결의에 찼던 마음은 채 이틀이 가지 않았다. 육신뿐만 아니라 마음도 그만큼 노화하고 병든 것이다. 그래도 이대로 죽을 순 없었나 보다. 95kg에 육박했던 몸무게를 85kg 정도까지 감량했고 이후 새벽일을 하면서 아주 오랜만에 통곡의 80kg를 지나쳐 70kg대에 진입했다.(79.8kg, 턱걸이지만 어쨌든 앞자리가 7자로 바뀌었다.) 나에게 닥쳤던 그리고 현재도 진행형인 위기는 아마도 나를 구하기 위함이었나보다. 새벽에 일을 하려면 술은 언감생신 꿈도 꿀 수 없다. 지난 주말 그런 내가 가여웠는지 아님 기특했는지 아님 둘 다였는지 모르지만 아내는 안주가 좋은 술집을 안다며 나를 데려갔다. 소주와 맥주 한 병씩을 시키고 아내 추천 골뱅이무침과 나의 최애 안주 어묵탕까지 시켰다. 이건 무조건 최소 소주 2병 각이었다. 한 시간 넘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행복한 기분을 가득 채우고, 술은 절반만 비우고 술집을 나섰다. 음주경력 23년 만에 제대로 술을 즐기는 방법을 터득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