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일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1)
왜 일을 하시나요?
이 물음에 답을 해볼까요?
당장 흔하게 떠올릴 수 있는 답들이 있습니다.
그야 당연히, 돈을 벌어야 하니까, 나와 가족의 노후를 위해, 나만의 커리어를 만들기 위해, 전문가로 성장하기 위해서, 사회적 지위를 위해, 경제적 자유를 얻기 위해, 자아실현을 위해...
하지만 모든 이유에 우선되는 단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일이란 삶과 구분될 수 있는 개별적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런 까닭에 일의 의미를 정의하는 것은 삶의 의미를 정의하는 것과 같은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아직 제가 많은 인생을 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삶과 일을 뗄 수 없다는 사실은 할아버지를 통해 일찍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말씀하시던 본인의 삶에는 언제나 일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죠.
SK그룹의 전신인 선경그룹 최종현 회장님 밑에서 선경직물 무역팀 창립멤버로 일하며 뉴욕, 홍콩, 유럽 등 해외 출장을 다녔던 이야기, 글로벌 기업들을 상대로 프로젝트를 수주했던 이야기, 글로벌 기업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고 한국 지사장으로 일했던 시절, 마침내 본인의 사업으로 성공하기까지 겪었던 좌절과 기쁨의 시간들.
일은 단순 직업이나 업무가 아닌 할아버지의 인생이었습니다. 일을 위해 쏟았던 시간을 제외한다면 삶을 온전히 추억하기란 불가능하겠죠. 인생의 지난날들을 돌아봤을 때 떠오르는 즐겁고 괴로웠던 순간, 빛났던 또 어두웠던 순간들처럼, 일을 하며 보냈던 많은 시간들 역시 당신의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언제나 의미 있는 삶을 고민해 왔습니다. 할아버지처럼 월급쟁이에서 시작해 몇 백억 자산가로 성공한다면 그것만큼 의미 있는 삶이 있을까? 일은 결국 성공을 위한 수단에 불과한가? 여전히 답을 찾아가는 중이지만 지금의 저는 나름 만족스러운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의미 있는 삶을 위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직장에서의 시간, 업무를 하는 그 고된 시간조차 내게 소중한 시간, 내 한 번뿐인 삶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는 것입니다.
일이 지닌 본연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원인은 직업과 직무로, 나아가 연봉과 성과와 같은 어떤 조건으로 일의 가치를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네이버에서 일하는 UX 디자이너가 연봉 1억을 받는다면, 3억에 가까운 연봉을 받고 있는 넷플릭스의 경력 6년 차 UX 디자이너는 네이버 직원보다 3배나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을까요?
일을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 본다면 일의 가치 역시 그 기준으로 한정됩니다. 그럼 성장과 자아실현의 수단이라면 다를까요? 일을 통해 스스로 성장하고 남들에게 인정을 받고 자아실현을 한다는 점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도 있지만 그것 또한 일의 본질적 가치가 아닙니다.
대기업 사장과 운전기사. 그들이 하는 일을 비교하자면 사회적으로 더 높은 가치를 받는 쪽은 대기업 사장입니다. 기업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대한 업무와 단순 반복 업무, 사회적 인정과 성공, 성장과 자아실현, 일에 대한 보상, 주변의 시선, 전문성 등 많은 부분에서 이 둘은 극명히 비교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이 본질적으로 한 사람의 삶을 소진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대기업 사장의 일과 운전기사의 일은 모두 동등한 무게를 갖습니다. 어쩌면 일에서 더 충만한 의미를 느끼는 쪽은 운전기사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일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타인의 인정이나 사회적 성공, 연봉이나 성과와 같은 객관적인 지표들에 달린 문제가 아닙니다. 과연 일을 하는 동안 나는 내 삶에 얼마나 깊게 몰입했는가? 또 내게 주어진 삶과 시간, 에너지, 가능성을 어떤 일을 하면서 얼마나 알뜰하게 잘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결국 일의 의미는 금액과 같은 객관적 수치가 아니라 내 만족감과 몰입감, 삶의 충만감으로 오는 지극히 주관적 지표입니다. 아무리 많은 재산이 있더라도 그것은 삶의 의미를 만드는 필수 조건이 아닙니다. 삶의 의미란 동일한 상황을 두고도 자신의 관점과 주체적인 해석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동등한 수준의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을 하면서 내 삶을 소진해도 좋을 정도의 의미를 얻고 있는가? 업무를 하는 동안 어떤 충만감을 얻을 수 있는가? 삶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가? 그 몰입의 정도가 바로 삶의 수준을 좌우합니다. 어떤 시간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지닐 때, 질적으로 훨씬 깊이 있고 밀도 높은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 시간들은 객관적 수치로 값을 매길 수 없는 주관적 성질을 지니고 있지만 훗날 인생을 돌아보았을 때 본인의 인생을 빛나게 만드는 결정적 순간이 됩니다.
일에서 느끼는 충만한 의미는 곧 삶의 충만감으로 연결됩니다. 그런 점에서 일은 삶을 살아내기 위한 의미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에 있어 답을 구해야 하는 첫 번째 문제는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성입니다. 자신만의 방향성을 지닌 사람들은 일에서도 분명한 의미를 만들고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든, 성공을 하든, 남에게 존경을 받든 말든 결국 죽음이라는 거울 앞에 진실하게 서야 되는 사람은 본인입니다. 거울에 비추어진 모습은 내가 주어진 삶 동안에 획득한 밀도 높은 의미들 뿐입니다. 그것은 남들이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또한 그리 대단하지 않은 지극히 사소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 인생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그 사소한 순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나 자신에게만 진실로 의미 있는 그런 시간들로 삶은 정의됩니다.
-스티브 잡스 (Steven Paul Jobs, 1955년 2월 24일 ~ 2011년 10월 5일)
어떤 일이 아무리 사소하고 단순할지라도 일에는 중요한 효능이 있습니다. 바로 인생 그 자체만 본다면 매일 덧없이 무너져 내리는 삶을 지탱하는 기둥의 역할입니다. 운전기사의 일이나 대기업 사장의 일이 한 인생에 있어 동등한 가치를 지닌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처럼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꼭 해야 하는 행위가 바로 일입니다.
돈이 넘치도록 충분하다면 굳이 일을 하지 않아도 행복하지 않을까요?
시간과 돈이 충분한 여유가 있어서 굳이 일을 할 필요가 없어 보이는 사람도 일을 하지 않고는 제대로 살고 있다는 충만감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매일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가고 맛있는 음식을 매 끼니마다 즐기는 것도 하루 이틀의 즐거움이며, 그것이 일상처럼 반복되는 순간 그 특별함을 상실합니다.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미식 문화를 소개했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직업을 가진 남자, 앤서니 보데인(Anthony Bourdain)의 자살이 그 사실을 반증합니다. 인생이란 아무리 원하는 바를 성취하더라도 여전히 공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모든 성취가 죽음 앞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것입니다. 이는 많은 것을 성취하고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일수록 피부로 느끼게 되는 현상입니다. 만약 삶에 대한 성찰 없이 더 큰 성공만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욕구에 충실한 동물의 삶과 다를 바 없습니다.
사업가로 자아실현과 경제적 성공을 이뤄내고, 사회적 존경을 받고, 매 분기마다 휴양지로 해외여행을 다니고 몇 백억 빌딩을 몇 채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그 인생이 지닌 허무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매 순간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존재이기에 필연적으로 공허함을 마주하게 됩니다. 욕구를 충족하며 만족을 느끼는 동물과 다를 바 없는 삶으로는 매일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공허함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그런 즐거운 시간 또한 매일 반복된다면 출근과 퇴근으로 반복되는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직장 생활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SK 최종현 회장이 폐암 투병으로 고통을 받는 중에 서울대 교수, 경제연구소장을 초빙해 한국 경제의 미래와 국가 경쟁력을 위한 전략에 대해 토의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주목할 점은 자신의 사업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고민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병상에서 말했던 '남은 삶을 보람된 일에 몰두하며 쓰고 싶다'는 소원은 다름 아닌 의미 있는 삶에 대한 의지였습니다. 그렇게 죽음의 고통 속에서도 그분은 일을 하며 기쁜 표정을 지으셨다죠. 그 보람된 일이 바로 삶의 고통을 견디게 하는 소중한 힘이자 삶의 의미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 자체로는 매일 무의미하게 사라져 가는 나날에 방향성을 부여하는 힘. 어쩌면 고통스러울 정도로 매일 반복되는 권태로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힘. 그것이 일이 지닌 진정한 가치입니다. 결국 인간이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일에서도 자신만의 의미를 발견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그저 본능대로 욕망하며 살더라도 충분한 동물의 삶과 구별되는 인간만의 특징이죠.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일을 그저 반복되는 업무,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을 하는 시간 또한 자신의 소중한 삶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자신에게 더 밀도 높은 의미를 만들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나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해서 남들이 보기에 근사하거나 자아를 실현하는 일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일을 하는 동안에 내게 진실로 보람된 무엇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종현 회장이 죽음의 고통 속에서도 몰두했던 보람된 업무처럼 누군가에게는 사소해 보일지라도 오직 나에게는 더없이 중요한 무엇 말입니다. 어떤 일을 하건 그 일을 하면서 내 삶을 모두 소진해도 좋을 나만의 의미를 발견한다면 그보다 더 값진 일이 있을까요?
-장 그르니에 Jean Grenier, 프랑스 철학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