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새로 구한 오피스텔이 퍽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보증금은 얼마고, 월세는 얼마고, 평수는 어떻고...그동안 미팅 때문에 강남으로 가는 날이면 족히 왕복 4시간 남짓한 시간을 지하철에서 보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아서 편하다고 했다. 나는 학교는 신촌에, 작업실은 상수에 있어 그래도 비교적 가까운 거리라 그럭저럭 우리집이 살만했다. 그러나 엄마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아 참, 무슨 작업실이냐고?
평생 음악이란걸 할 줄 몰랐던 나는 음악 작업실에 출근을 하고 있다. 그것도 한 작곡팀의 크루의 일원으로. 사실 곡을 쓴다는 일이야, 누구나 맘만 먹으면 으레 하는 일이듯 나에게도 그저 취미처럼 흘러가는 행위였다. 가끔 스트레스가 쌓이면 좋아하는 노래를 카피해보고, 그러다 곡도 잠깐씩 써보고... 그렇게 간헐적이지만 꾸준히 한 것이 햇수로 7년 정도 되었다.
할머니는 그런 나를 내심 걱정하셨다. "너 학교는 졸업 할거지? 그 좋은 학교 들어갔는데 전공 살려서 취업해야지." 할머니는 엄한 데 기웃거리며 겉도는 내가 못마땅하셨는지 이따금씩 전화해서 잔소리를 쏘아 붙이시고는, "밥은 잘 먹고 다녀? 엄마가 반찬은 해놓니?"하고는 착잡인지 모를 걱정을 끝으로 전화를 끊으신다.
'응, 나 잘 먹고 다녀, 엄마가 매일 밥도 해주고'
사실 이건 거짓말이다. 우리 엄마는 나에게 매일 밥을 해 줄 만큼 한가한 사람이 아니다. 요즘에야 먼지 쌓인 고리타분한 고정관념들이 하나씩 없어지는 시대라지만, 우리 엄마는 그렇지 못한 시대에 이미 저 멀리 앞서 나가는 하드워커(Hard-worker) 혹은 워커홀릭 쯤 되었다. 스무 살에 대학교에 들어가 1년만에 휴학을 때리고 학원을 내서 잘 나가는 학원원장으로 이름을 날린, 그렇게 그당시 학원강사였던 우리 아빠랑 만나 결혼했던 사람이 우리 엄마였다.
그래서인지 우리 엄마는 집에서 따분하게 밥을 해주고 살림을 챙기는 것이 적성이 아닌 것처럼 여겼다. 어렸을 때 기억에 주말에 아빠가 구석구석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런 내막은 나와 그리고 우리 엄마와 다른 시대를 살아왔던 할머니에게는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아들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 먹여야 하는 것이 응당 모성을 가진 엄마들의 책임이라는게 할머니의 지론. 뭐 어쨌거나, 나는 엄마와 할머니의 생각에 딱히 반박하고픈 마음이 없어 내가 떠올린 최선의 방법은 그냥 거짓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 편이 일일이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보다 두 사람의 기분에 상처를 내지 않고 서로 껄끄러워지는 것을 막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 날도 어김없이 작업실에 갔다. 곡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아 정신없는 하루를 보낼 예정이다. 적어도 저녁 먹기 전까진 모니터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완성을 해놓고, 저녁을 먹고는 피드백을, 그 후엔 무한 수정, 수정, 수정... 으악! 할 게 너무나도 많다. 그렇게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는 와중, 작업실 사람들과 저녁을 먹고 할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또 여느 때와 다름없는 잔소리와 걱정을 늘어놓으신다. 그러다가 '엄마는 집에 잘 있어?'라는 할머니의 물음에 나는 멈칫했다. '우리 엄마, 나가서 산대요. (정확히 말하면 임시방편으로, 그러나 무기한)' 아니, 이 말을 하면 아마 난리가 나겠지. 그래서 난 또 거짓말을 하기로 결심했다.
'응.'
작업을 끝마치고 집에 오면 대충 밤 12시 반쯤이다. 보통 그 때쯤이면 엄만 자고 있거나 혹은 워드로 문서 작업을 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 날 만큼은 엄마가 주방에서 열심히 뭘 만들고 있었다. 난 의외의 광경에 놀라 엄마에게 '뭐 하고 있어?'하고 물었다. '엄마 이제 자주 집에 못 올텐데, 너 반찬이라도 해놓고 나가야지.' 엄마는 열심히 후라이팬 불길 앞에서 땀을 흘리며 어묵과 멸치 등등 갖가지 볶음류 반찬들을 요리하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엄마 반찬이 어묵볶음이었지. 엄마 옆에서 몇 가지 반찬을 손으로 집어먹고는 이내 맛있다고 탄성을 내질렀다. 엄마는 그렇게 서너 개의 락앤락 뚜껑을 닫으면서 나보고 '김치랑 같이 꺼내서 먹어, 라면 많이 먹지 말고'라 말했다. 평소였으면 그냥 잔소리였을텐데. 그 날따라 기분이 좀 묘했다.
그렇게 일주일, 난 여전히 작업실로 출근을 하고, 남는 시간엔 대학 과제를 하며 정신없는 하루를 살고 있었다. 엄마는 짐 정리 때문에 집에 한 두번 더 오고는 아직까지 온 적이 없다. 그래도 매일 전화를 걸어 천호동이 얼마나 살기 좋은 동네인지, 새로 구한 집이 얼마나 편한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집에 있었던 그 때와 마찬가지로 나에게 수다를 늘어놓곤 한다.
오늘 원래 있던 비대면 강의 하나가 휴강을 해서 얼떨결에 공강이 생겼다. 그래서 간만에 작업실에 가기 전까지 여유로운 식사를 할 수 있어 기뻤다. 직접 지은 따끈한 밥에, 락앤락 통 두 어개를 집어들고 밥상 위로 향했다. 뜨거운 밥 위에 차가운 어묵볶음을 올려 한 입. 아! 이것이 엄마의 어묵볶음이었지! 그러다 문득 할머니의 말이 생각났다. 맛있는 밥을 지어 먹이는 것이 응당 모성을 가진 엄마들의 일이라는 것. 흠, 역시 우리 엄마도 엄마는 엄마라는 건가... 싶었다. 다만, 모성의 형태가 다를 뿐. 아마 우리 엄마의 모성의 형태는 이 어묵볶음이 아니었던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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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ipe #1. 어묵볶음
• 어묵볶음이란?
어렸을 때 외할머니가 어묵볶음을 덴뿌라라고 말하신 적이 있었는데, 사실 덴뿌라는 어묵과는 전혀 다른 음식이다. 덴뿌라는 우리가 흔히 아는 새우튀김처럼 튀김옷을 입혀 기름에 튀겨낸 음식이고, 어묵은 생선살과 뼈를 으깨 반죽으로 만들어 기름에 데친 요리이다. 즉, 재료의 본래 형태를 유지한 채로 반죽을 입혀 튀겨낸 것은 덴뿌라, 재료를 변형하여 반죽으로 만들어내 튀긴 것은 어묵인 셈이다. 또 흔히 오뎅과 어묵이란 단어를 혼동해서 사용하기도 하는데, 오뎅과 어묵도 서로 다른 음식이라고 한다. 오뎅은 어묵을 물에 삶은 것. 그러므로 백반집에서 주로 반찬으로 나오는 이것은 오뎅볶음이 아닌 어묵볶음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어묵볶음은 파기름에 어묵을 볶고 간장, 설탕, 미림, 굴소스 등을 넣어 양파, 청양고추 등과 볶아서 만든다. 갓 만든 어묵볶음은 정말 밥 두 공기는 거뜬하게 해치울 수 있는 엄청난 밥도둑이므로 공복과 다이어트 시에는 주의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