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주말 아침, 부산에 있는 절친 H로부터 전화다. 사전 약속이 없이 주말에 오는 전화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가족, 친구, 동료 구분 없다. 마음의 준비, 1, 2초 길게 호흡을 했다.
덤덤하게 해고 통지를 받았다 쏟아내고 하소연이란다. 역시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전번 주에도 만나 1년 정도는 더 다닐 수 있겠다 안심했는데 급작스레 해고 통보를 받았다 했다. 요즈음 해고, 정년에 대하는 나의 자세가 축하인지 위로 인지 헷갈리기만 하다.
늦은 주말 저녁, 제주도에서 친구 L의 전화다. 긴 5초간의 호흡이다. 해군에서 ROTC 출신으로 별 달아보겠다 수료한 라떼 시대의 SSU 훈련 이야기를 인별스타 만화 글을 올리는 게 유일한 낙인 친구로 전역 후 암투병 중인 친구다. 만화가 안 올라와서 걱정하던 중이었다. 다행스럽게 공짜 귤 한 박스 보내겠다 한다. 귤 한박의 고마움에 안도의 긴 한숨을 토했다.
F인 사람이 가을을 보내는, 대하는 방법은 힘이 좀 든다. 어쨌든 말 못 할 사연에 나의 일 있은 듯 걱정해주어야 할 사람들도 있고, 그러다 보면 이런저런 오지랖 우울 속으로 빠지기 마련이고 해결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자책에 무기력함만 쌓여 간다할까. 11월이 되어 점점 길어지는 밤, 점점 짧아지는 낮의 대비가 그러한 F의 혼돈 스런 감성이란 생각이 든다.
오늘아침, 동향 창문으로 비추어드는 가을볕처럼 스며 들어오는 F감성에 뒤적이다 눈에 걸려든 LP 하나, 추억팔이 턴 테이블에 걸었다. 예전부터 감성소환으로 적합한 KBS 명화극장표 고전 영화다. "The sound of music". Do Re Mi, Edelweiss의 여주 줄리 앤드류스 목소리와 튀는 LP의 감성, 추억팔이로 잠시 이른 아침의 마음속 평온함과 위로를 받으려 해 본다.
어디 찬장 깊이 챙겨둔 말린 국화를 뜨거운 물로 깊이 우려야겠다. 모락모락 차증기와 함께, 향기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