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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디 Dec 20. 2022

요즘 끼니 생활 1.

컨트라사이드 스토리

해먹을 결심

이번 겨울, 짝꿍과 나의 결심이다.


  책방카페 오픈과 결혼식을 동시에 준비하며 요리는 커녕 집 치울 시간도 없이 살던 9~10월. 우리는 구례의 몇 없는 식당에서 자주 외식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살면서 이렇게 외식을 많이 한 적은 처음이었다. 서울에서 자취할 때도 99% 집에서 만들어 먹었고 배달음식은 단 한번도 먹지 않았으니까. 바쁘다는 이유로 운동도 하지 않았으니 엎친 데 덮친 격, 몸에 염증이 늘고 우리의 사정에 맞지 않게 식비도 크게 늘어났다.


  적게 벌어 적게 쓰고, 핸드메이드 라이프로 살자고 시작한 생활인데 결혼식을 이유로 완전히 반대로 가고 있었다. 역시 인간은 바쁘면 안된다...! (?!) 결혼식을 끝내고 우린 한 달동안 삶을 재건했다. 구체적으로는 집을 한 달 걸려 대청소를 한 것인데 더 세부적으로는 밀린 설거지, 싱크대 물때 청소, 화장실 벽과 바닥 닦기, 집 군데군데 뭉쳐진 먼지구덩이들 치우기, 이불 세탁 후 말리기, 세탁 연속해서 돌리며 밀린 빨래 하기... 하여튼 엄청나게 미친듯이 청소를 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숙제가 바로 '직접 해먹기'다.

그를 위해 우리의 '먹고' 사는 이야기를 글로 남기기로 했다. 쓰기 위해 먹고, 먹기 위해 쓰는 인생이라. 내가 원했던 것 아닌가?! 아닌가?! 맞을거야.


  오늘은 우리의 '해먹을 결심'에서 제일 중요한 음식을 기록해보고 싶다. 그건 바로바로 샐러드. 

  요즘 우리 밥상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샐러드다. 우리가 만들어 먹는 샐러드의 특징이라면 한 대접으로 먹는다는 것이다. 브런치집에서 메인 메뉴에 곁들여 나오는 종지 만한 샐러드는 우리의 양을 채우지 못한다. 우린 먼저 양배추나 양상추를 집어 든다. 흐르는 물에 그것들을 씻고 물기를 없앤 다음 집에 있는 모든 생채소(토마토, 파프리카, 피망, 당근 등)를 들이 붓는다. 그리고 짝꿍이 꼭 샐러드에 추가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연시다. 구례는 감의 고장. 지금 시기까지 감이 넘쳐난다. 그중에 미처 다 먹지 못해 뭉글뭉글 물러 가는 감이 쌓이는데, 그 감을 샐러드에 넣으면 자연스럽고 깨끗한 단맛이 더해지며 풍미가 살아난다. 특히 내가 주로 만드는 드레싱 소스는 연시와 아주 잘 어울린다. 올리브유에 꿀을 섞고, 홀그레인머스타드(겨자씨), 레몬즙, 소금과 후추 약간을 더하면 심플하면서도 상큼한 드레싱이 된다. 이 무적조합으로 우리는 매일 코끼리처럼 채소를 먹어치운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그 씨앗의 결실을 확인한다. 


  샐러드를 한대접씩 먹고 나서부터 우리에겐 기이한 성취감이 생겼다. 몸에 건강의 씨앗을 심는 기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필수노동을 꾸준히 해나가는 기쁨 같은 것도 포함되는 것 같다. 짝꿍은 채소를, 나는 소스를 준비하며 식사 준비 팀워크도 좋아진다. 아삭아삭 채소를 씹으며 기분좋은 포만감을 느끼며 나는 짝꿍의 만족스러운 얼굴을 본다.

  기린처럼, 코끼리처럼 채소를 열심히 씹으며 별탈 없는 하루에 만족하는 그 얼굴을. 채식동물같은 바이브를 우리는 샐러드 있는 밥상에서 느낀다. 


마요네즈와 케첩을 섞은 케요네즈 스타일로 먹었던 샐러드 ^^ 이 정도의 양을 둘이 먹어치우는 대식가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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