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에게 마음을 나눈 편지를 쓸 거야
To. 꽃밭의 꽃들
꽃들아 안녕.
비 오던 날의 외출이었어.
청계산 자락의 작은 마을 옆.
자그마한 꽃밭을 향해 가는 길이 미끌거렸지.
황토색 흙길 위에서 바퀴가 헛돌더라고.
그래도 좋았어.
비옷을 입고 비를 맞았지.
투명한 빗소리를 귀에 달고 작은 정원으로 걸어갔어.
이윽고 도착한 촉촉하게 젖어든 황홀한 꽃밭.
작년에 심어 놓은 장미 매발톱에 꽃이 피었더라고.
핑크빛 클레마티스도 나를 반겨주었어.
어디 그뿐일까.
죽은 줄 알았던 배롱나무에 매혹적인 빨간 싹이 인기척을 하는 거야.
어머나 세상에 살아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지.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미스김 라일락의 향기가 훅 들어와 어젯밤 우울이 말끔해지더라고.
알 수 없는 통증으로 무기력한 삶에 활력소가 된 셈이었지.
복잡한 머릿속에 환기가 필요한 시점에 만난 싱그런 빗방울들.
그리고 아마추어 작가의 꽃밭 가꾸기 등등.
비록 작은 것들이지만 내가 살아갈 또 다른 이유임에 틀림이 없는 거 같아.
세상 어느 곳보다 이 작은 곳에 머무를 때 가장 평안함을 느껴.
봄 여름 가을 겨울 아름답게 변해가는 꽃밭의 모습을 담아 꽃들에게 마음을 나눈 편지를 쓰고 싶어.
함께 살자, 우리
자주 올게.
From. 이엔에프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