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아름다움을 위해
To. 장미
안녕 장미야.
나는 가끔 실내에서 죽은 듯한 작은 화분을 보며 무언의 대화를 해.
바쁘다는 이유로 무관심했던 시간이 미안했거든.
그런데 겨우내 힘겹게 버티던 보랏빛 수국이 봄을 맞이하여 싹이 나고 잎이 나며 꽃망울을 터트릴 준비를 하는 거야.
어쩌면 나의 삶도 그러한 듯, 지난겨울 위태위태하던 불안한 감정들이 봄을 배신하지 않은 듯하여 내심 마음이 놓였어.
움츠러든 삶의 시간이 향기로운 봄꽃들을 만나면서 작은 변화의 움직임까지도 수용하기를 기대하게 되더라고.
매일 듣던 음악을 오늘은 좀 경쾌한 음악으로 바꾸면 어떨까 싶어.
내면으로 뻗어 간 의기소침한 영역에도 전달되길 바라며 진한 커피 한 잔을 마셨어.
이렇게 좋은 걸.
비록 혼자일지라도 활동적인 에너지가 비워져 간 커피잔에 채워질 것만 같아.
그런데 커피를 마시는 동안 헝클어진 머리가 계속 신경이 쓰이더라고.
이러다가 아예 꾸미고 싶은 의욕마저 사라져 버린 건 아닌지 모르겠어.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
그래도 다행인 것은 시들어간 꽃잎 닮은 얼굴 위에 화장을 하고 싶단 생각이 드는 거야.
황사를 걷어낸 봄바람이 가슴으로 불어오는 거 같아.
무감각해진 감정들이 살아나 살포시 입맞춤하고 보드라운 봄바람의 전율이 나를 감싸온 느낌이 좋아서.
그 모습 그대로 봄의 정원에 앉아 있고 싶어.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본 황홀한 바람이 가슴을 만지는 듯했어.
해넘이에 걸터앉은 시간, 오래된 거울 속에 머물러 있던 나를 끌어내 마침내 화장을 했지.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립스틱을 바르고 마지막으로 마스카라를 올렸어.
뭔가 새로운 희망이 생길 것 같은지 마음이 앞서가더라.
좀 어색하긴 해도 이만하면 나의 우울한 감정변화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거 같았어.
용기를 내어 가장 친하다고 생각된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어.
“나야, 시간 되면 우리 만날까?”
“미안, 하필이면 오늘 선약이 있어서.”
“내일은 어때?”
“아니야, 괜찮아 내일은.”
남산만큼 부푼 나의 기대는 선약이 있단 지인의 말을 듣자마자 와르르 무너지더라.
내일은 중요하지 않아.
나조차도 내일의 감정을 알 수 없기 때문이지.
화장을 고친 보람도 없이 다시 혼자의 시간에 갇힌 셈이었어.
왠지 나를 위한 나만을 위한 그 한자리.
정원에서 나와 동네 작은 카페에서 카페라테 한 잔을 주문했어.
어느새 어두워진 늦은 밤.
가로등 불빛을 따라 뚜벅뚜벅 골목길을 걷던 중.
나의 지친 하루가 안쓰러워 작은 꽃집으로 들어갔어.
꽃향기에 취하고 싶은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통한 것일까.
내 나이만큼의 장미꽃을 샀어.
그 밤.
화장을 지우고 꽃병이 제집인 양 우아하게 서 있는 장미와 마주 앉았어.
앞으로 너의 꽃말처럼 나의 내면을 아름답게 꾸미는 시간을 더 많이 확보해야겠어.
고마워 장미 친구.
나의 내면을 웃게 해 줘서.
From. 이엔에프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