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오후
To. 조팝나무
오월의 어느 날 집을 나선 길이었어.
충전을 위해 계단을 오르고 싶단 이유였지.
얼마큼 지났을까.
갈림길에서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나도 모르게 멈칫했어.
그때 하얀 꽃잎이 나를 반기는 거 같더라고.
나쁘지 않았어.
한 계단 오를 때마다 나의 등 뒤에서 꽃잎이 동행하는 거 같았어.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나를 보았던지 누구나 처음 가는 길은 멀게만 느껴질 거래.
지금 눈앞에 보인 길이 가장 안전한 길이라며 조바심일랑 일찌감치 버려두고 가래.
그리고 눈을 들어 산을 보고 구름을 보라고 하더라고.
어젯밤 걱정 따윈 푸르름이 말갛게 씻어줄 거라면서.
혹여 여유가 생기거든 귀를 열고 사방으로 흩어진 신음 소릴 들어보라더군.
못 살겠다는 아우성이 들리지 않은지.
알게 모르게 가까이 와 있는 하소연을 정말로 외면할 것인지.
그런데 모르겠어.
한 계단 더 올라와 보니 조금 알 것 같기도 하고.
상담사의 길이 나의 길이 아닌 것 같기도 했어.
나의 눈빛이 애매하게 흔들릴 때 꽃잎이 훅 들어와 말하는 거 같았어.
누구나 알 수 있는 표면에 드러난 것만 보지 말고.
그 이면에 숨겨진 것을 볼 줄 알아야 한대.
천천히 가더라도 충분히 안아주고 공감해 주라는 당부도 했어.
이제 한눈팔지 말고 좀 더 올라가 보려고 해.
곧 만나게 될 행복을 기대하면서 말이야.
하마터면 깜박 잊을 뻔했네.
작년에 심어놓은 조팝나무야, 꽃을 피워줘서 고마워.
너의 꽃말처럼 희망을 갖고 다시 시작해보려고 해.
응원을 부탁해.
From. 이엔에프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