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
To. 분홍 백합
마침내 분홍 백합이 위풍당당하게 피었구나.
죽은 줄 알았던 뿌리에서 싹이 나고 단단한 꽃대 위에 도도한 몸짓으로 향기를 풍기는 너.
너의 끈질긴 생명력을 내 친구에게도 줄 순 없을까.
넌 한여름 땡볕에서 울어본 적 있니.
키를 훌쩍 뛰어넘은 나무가 그늘이 되어주며, 바람 길을 열어 서늘한 바람을 보내주는데도 눈물이 나.
얼마 전부터 배가 조금씩 아프다는 친구가 있거든.
다이어트하지 않았는데도 살이 빠졌다며 썩 반가워하지 않더라고.
다시 살찌는 운동을 해야겠다고 다짐하던 맑은 눈동자가 심하게 떨리는 걸 보았어.
내 몸에 주사액이 퍼진 것처럼 마음이 아파.
애써 괜찮은 척 말하던 친구의 표정이 안쓰러워 미칠 거 같아.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몰려오듯 무서웠을 거야.
생각만으로도 싸늘한 기운이 느껴지는데.
할 수만 있다면 영원히 피하고 싶은 그 길이 아닐까 싶어.
친구의 통증, 무엇으로 바꿀 수 있을까.
병명은 말이 없더라. 나쁜 놈.
외로운 싸움이 시작되어도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어.
친구가 꿋꿋하게 잘 견뎌내길 바라며 기도할 거야.
그리고 나.
살 빠졌다는 말, 이젠 듣고 싶지 않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좋은 거 같아.
분홍 백합 너의 향기가 친구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어.
활짝 피어난 너처럼 친구도 나도 활짝 웃는 삶이기를 바라.
그리고 내 마음 좀 전해주렴.
참으로 많이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한다고.
그러니까 꼭 힘내야 한다고.
부탁해.
From. 이엔에프제이